
2001년 나온 영화 '친구'는 참 대단한 작품이었다. 까까머리에 교복을 입었던 80년대 학창시절의 추억, 투박한 부산 사투리, 그리고 비열하고도 처참한 깡패들의 이야기. 영화는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이었음에도 무려 800만 관객을 모으며 크게 흥행했고, 장동건 유오성은 연기도 되고 흥행도 되는 배우로 부상했으며, 부산은 영화의 메카로 떠올랐다.
그리고 2013년 '친구2'가 나왔다. 동수가 죽고 준석이 감옥을 갔던 '친구' 이후 무려 12년이 지났다. 영화 속의 시간은 무려 17년이 흘러, 출소한 준석은 어른으로 성장한 동수의 아들과 '큰형님'으로 만났다. 원년멤버 유오성이 주축이 되고 젊은 피 김우빈이 가세한 '친구2'는 오는 14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친구' 이후 12년 만에 다시 '친구2'의 메가폰을 잡은 이는 역시나 곽경택 감독이다. '친구'라는 제목으로 드라마까지 연출했던 그가 '친구2'의 감독으로 돌아오기까지 고민과 걱정이 없었을 리 없다. 자신의 최고 흥행작이자 지금의 자신을 만든 영화 '친구'가 그의 상대다.
-'친구2', 왜 만들게 됐는지 먼저 여쭤봐야 할 것 같다.
▶2가지가 동시에 작용했다. 흥행에 대한 목마름. 그리고 할 이야기가 마침 생각이 났다. '친구2'를 해야지 하고 이야기를 짜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욱이 이건 소설이 아니다. 글은 혼자 쓰면 되지만 영화는 많은 사람의 동의가 필요한 일이다. 다행히 그 동의를 받을 수 있었던 건 모두 영화 '친구' 덕이다. 고맙다. 그 영화가 아직까지도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고, '친구2'를 만들어도 손해가 나지 않겠다는 투자하는 분들의 결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근간에 '친구'가 있었다.
-가장 동의를 구하기 어려웠던 사람은 누구였나.
유오성이다. 한다고 했다가, 안 한다고 했다가. 내가 도를 닦다 닦다 공중부양을 할 뻔 했다.(웃음) 거꾸로 생각하면 본인도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다. 얼마나 조심스러웠겠나. 물론 촬영하기 전 깔끔하게 정리를 하고 들어간 터라 이후에는 신나게 촬영했다.
-'친구'가 대단한 작품이기는 했다. 여전히 기억하고 기대하는 이들이 많다. 동시에 부담이기도 할 텐데.
▶저도 신기하다. 아이디어를 낼 때만 해도 나야 내 작품이니까 그렇다 치고 '일반 관객들이 궁금해 할까' 그런 의문이 상당히 컸다. 당연히 주저했고 걱정도 많았다. 괜히 욕이나 먹지, 드라마도 우려먹고 2편까지 만드냐는 소리나 들을까봐. 우리 딸부터 그랬다. 그거 만들지 말라고. 무조건 따뜻한 시선으로 봐 주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안다. 무조건 반가워해 주시지도 않을 것이다. '친구'란 영화를 본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본인의 추억 앨범을 뒤졌다. 그랬던 것처럼 '친구2'를 보면서 '친구' 1편을 생각할 것이다. 그보다 더 재밌는, 멋있는 장면을 만들어야지 하다가 결국 포기했다. '친구' 1의 뿌리가 내 추억이라면 이건 뿌리가 '친구' 자체다. 출발 지점이 다르다. 쓸데없는 욕심을 버리자 했다. 하지만 결국 이런 거다. 내가 이야기가 있으면 가는 거고, 없으면 '스톱'인 거다. 이야기가 있었다.
-출소한 준석을 시작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만약에 준석이가 2010년 쯤 출소하게 되면 계산상으로는 20년 좀 안 돼서 나오게 되는데 그런 애가 세상에 나오면 얼마나 황당할까. 여기에서 출발했다. 실제 그런 장기수의 모습을 봤다. 감옥에서 까 먹은 세월 동안 냉동인간이 됐던 거다. 그렇게 준석이 캐릭터를 분명히 살릴 수 있겠다 했다. 그런데 동수는 죽었고 어떻게 하지? 거기서 불장난 속에 태어난 아이가 있었다면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렇게 지금의 이야기가 나왔다.
-준석이 조직을 재건하는 과정이 '대부2'와 닮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친구2'는 '친구'의 현재의 이야기인데다 울산으로 영역을 넓히면서 옛 향수나 지역색이 많이 지워진 반면 느와르 성격이 짖어졌다.
▶그렇다고 밖에 말씀드릴 수밖에 없다. '대부'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다. 1, 2편 그 중에서도 1편. 몇 번을 봤는지 모른다. 제 머리 속에 있는 것이 오마주가 됐을 것이다. 향수나 지역색은 포기했다. '친구' 이후에 향수를 자극하는 영화들이 얼마나 많이 나왔나. 저 스스로도 이후 몇 작품을 부산에서 찍었고. 나름 비주얼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으로서 울산을 발견한 것은 기쁜 일이었다. 두 개의 축이 있다면 시작부터 한 축은 포기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김우빈의 존재가 색다르다. 젊은 배우지만 역할이나 다른 배우들 사이에 잘 녹아난 것 같고. 어떻게 캐스팅했나.
▶저도 그렇게 탁월할 줄 몰랐다. '학교2' 찍고 있을 때 현장에 갔다. 촬영 중이라 회의실에서 기달렸다. 한 키 큰 애가 '안녕하세요' 하고 오는데 한 눈에도 '주인공 포스구나' 하는 느낌이 오더라. 늦게 와서 죄송하다며 ''친구2' 한대서 종석이 형이랑 오디션 가자고 했었다' 하는데 기분이 좋더라. 낮게 깔린 저음도 마음에 들었고. 눈빛도 예쁘장한 스타일이 아니더라. 그 자리에서 '마음에 드는데 결정합시다. 이 시간 이후로 다른 사람 고민 안 합니다' 그랬다. 아직 시간 있으니 조급하게 생각 말고 다시 만나자고 했고.
-캐스팅 과정도 '친구'답다.
▶그런가. 그쪽 회사와도 물론 다 이야기를 마쳤다. 촬영하면서 나는 또 속으로 얼마나 기뻤겠나. 기본적으로 연기를 잘 한다. 연기를 잘 하려면 기본적인 필요충분조건이 있는데 1번, 머리가 좋아야 한다는 것이고 2번, 독하리만치 성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번째가 자기 관리. 이 셋 모두가 믿음이 가더라. '해낼 줄 알았어' 했다. 예상 밖으로 디렉션을 많이 하지 않았다. 알아서 잘 한다. 기특하고 신통방통했다.
-'친구2'는 청소년관람불가다. 흥행에야 부담이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친구' 이후에 다 15세 영화를 찍었다. 나도 모르게 타협을 했던 거다.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있으면 끝까지 밀어부쳤어야 하는데 관객의 폭을 넓힌다는 이유로 스스로 타협을 했던 거다. '사랑'도 그렇고, '똥개'도 그렇고, '태풍'도 그렇다. 제약 없이 '친구2'를 편하게 찍으니 마음이 편하더라.
-그래도 잔혹한 장면은 생각보다 조절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 사이 너무 잔혹한 작품을 많이 봐서 그런가.
▶편하게 했다. 현장에서 보면 젊은 애들이 더 잔인하다. 팔 자르는 장면이 있는데 처음부터 소리로만 들리고 보여주지는 않겠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스태프는 '잘린 손을 준비해야 한다'고 자꾸 설치는 거다. 관객들의 불편함을 고려해서 안한 건 아니고 필요 이상 잔혹해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거다. 감독마다 '극장에서 내 영화가 어떻게 보여질까' 고민하겠지만 나는 일단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보자는 편이다. 예전에 강우석, 강제규 감독과 3인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언제 감독으로서 가장 행복하냐'고 물으니 둘 모두 의도한 대로 관객이 반응해줄 때라고 하더라. 나는 아니다. 내가 모니터 앞에서 액션 사인을 불렀을 때 내 머리 속 그림과 똑같이 나오거나 그보다 더 잘 나오면 무한한 쾌감이 생긴다. 나는 현장이 행복이고 그 분들은 극장이 행복인 거다. 관객과의 행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두 분을 보면서 그래서 다 잘 되는 이유가 있구나 생각했었다. 반성도 좀 했다. 뭐 반성 한다고 해서 뭐하나.(웃음)
-함께 개봉하는 '더 파이브'의 정연식 감독과도 인연이 깊은데.
▶진인사필름에서 오래 함께 했다. '더 파이브'의 아이디어도 제일 먼저 들었다. '니가 한 이야기들 중에 제일 좋다'며 격려한 작품이다. 그래서 재밌다. 처음 전투에 참가하든 장수든 베테랑 장수든 다 진검승부가 아닌가.
-'친구'는 감독 본인에게도 특별한 프로젝트다. 흥행 목표가 있다면. 또 다음 계획이 있다면.
▶영화를 내놓은 지금은 후련함과 속상함이 공존한다. 영화에 객관적일 수도 없고. '친구2'란 내게도 특별한 프로젝트다. 동시에 한 번밖에 쓸 수 없는 카드이기도 했다. 관객이 '친구'의 3분의2가 들면 너무 감사할 것 같다. 이젠 안 놀고 빨리 빨리 다음 작품을 찍었으면 좋겠다. 준비하는 작품들도 있다.
김현록 기자roky@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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