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는 송새벽(35)을 감칠맛 나는 코미디배우라고 생각했다. 후반부의 주인공이나 다름없던 '방자전'의 변사또, 짧은 등장에도 시선을 집중시켰던 '시라노;연애조작단'의 의뢰인, 깜짝 흥행에 성공했던 '위험한 상견례'의 전라도 총각까지. 허를 찌르는 대사의 리듬, 능청이 몸에 밴 듯한 연기는 송새벽표라 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2014년의 송새벽은 달랐다. 특히 딸 김새론을 학대하는 의붓아버지였던 '도희야'에서 그는 무시무시한 다른 얼굴을 드러내며 관객들을 긴장시켰다.
오는 4일 개봉하는 영화 '덕수리 5형제'(감독 전형준)는 그런 송새벽의 코믹함과 수상한 기운을 절묘하게 버무렸다. 그가 맡은 인물은 입에 쫙 밴 살벌한 욕설에 완벽한 조폭 포스를 풍기지만 알고보면 잔정 많은 둘째 동수 역이다. 그는 무려 12kg을 찌우고 온몸을 시커먼 문신으로 뒤덮은 채 말 많고 에너지 넘치는 형제들과 어우러졌다. 송새벽은 "그 어느 현장과 비교해도 가장 시끄러운 현장이었다"며 왁자지껄했던 덕수리에서의 시간을 돌이켰다.
-올해 유난히 송새벽의 반전을 본 작품들이 많았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다. 하지만 다른 캐릭터에 갈망은 분명히 있었다.
-웃기기만 한 건 그만하겠다는 뜻?
▶그런 건 없다. 그 전에도 웃겨야겠다고 생각하고 작품에 임한 적은 없다. 웃기겠다고 작정하는 건 위험하다. 어쨌든 상황이 재밌으니까 웃기는 거지, 웃기겠다고 다가가면 와르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살도 찌운 것 같다. 달라 보인다.
▶일부러 12~13kg을 찌웠다. 절반 정도 뺐다가 이번에 '도리화가'에 들어가며 다시 조금 찌웠고. 제가 작은 키가 아닌데도 함께 하는 배우들이 다 크니 그림이 안 나오는 거다, 또 동수가 조폭처럼 보여야 하니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살을 찌웁시다' 했다. 빼는 것만 힘든 줄 알았더니 찌우는 것도 힘들더라. 엄청나게 먹고 찌웠다. 더부룩함의 한 10배 느낌으로 지냈다.

-'덕수리 5형제'에서는 걸쭉한 욕설을 구사한다. 욕 연기가 힘들었다는 말이 믿기지 않을 만큼.
▶칭찬이죠?(웃음) 윤상현 선배님이 부럽다고 그런다. 욕하는 역할이 시원하기는 하다. 평소에도 욕을 잘 하지 않긴 하지만, 평소 욕하는 것과 작품을 통해 시원하게 지르는 욕은 다른 맛이 있다. 카메라 앞에서는 뭔가 제어당하는 느낌이 있지 않나. 역할을 통해서 시원하게 욕을 하면 나름의 쾌감이 있더라. 웃자고 한 소리겠지만 그래서 윤상현 선배가 부러워하신 게 아닐까.
-평소 내성적이라는 것도 만나기 전에는 안 믿어진다.
▶어릴 적, 중고등학교 친구들이 제가 연기자 생활을 한다는 걸 알면 깜짝 놀란다. 크레디트에 이름이 올라가는데도 안 믿을 정도다. 상상이 안 가나보다. 그럴 정도로 내성적이었다. 학교에서 한 학기가 다 가도록 반 친구 절반은 이름을 모르고 지냈을 정도니까. 사춘기가 오래 갔다. 그런데 대학 들어가서 극단 생활을 하면서 성격이 확 바뀌었다. 제가 봐도 재미없게, 답답하게 학창시절을 보냈다. 뭔가 건수가 없었는데 연극을 하면서 봇물 터지듯이 확 터진 것 같다. 밑도 끝도 없이 다 했으니까. 유레카나 다름없었다.
-'도희야' 다음에 찍은 작품이 '덕수리 5형제'라고.
▶'도희야'는 제게 큰 숙제로 온 작품이다. 이걸 어떻게 해낼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워낙 정주리 감독이 쓴 시나리오가 가진 힘이 좋았고 이창동 감독이 제작하시고 해서 믿고 갔다. 배두나씨, 김새론양 모두 똘똘 뭉쳐서 했다. 힘들었지만 기억이 남는다. '덕수리 오형제'는 언젠가 이런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남자배우가 멜로 한 번 찍고 싶듯 나는 한번 해보고 싶은 가족영화였다. 찍으면서도 가족이란 무엇인지, 형제애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더라. 영화 속 사건은 따뜻하지 않았지만 따뜻하게 찍었다.
-현장 분위기도 가족 같았다고. 특히 윤상현씨가 한 몫을 했다더라.
▶거의 기숙사 분위기였다. 한 펜션에 주구장창 있으면서 찍다보니 집중된 분위기가 좋았다. 윤상현 선배와는 '음치클리닉' 카메오 출연할 때 처음 봤는데 그땐 몰랐는데 '덕수리' 미팅 끝나고 다다다다 말씀을 하시더라. 맏형님이라 분위기를 풀어 주시려나보다 했는데 3일 만나면서 원래 그러시다는 걸 알게 됐다.(웃음) 덕분에 급격하게 친해졌고, 마치 예전처럼 알고 지낸 관계처럼 됐다. 그게 참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게 한결같은 사람이 없다. 극단 언니 같은 느낌이다. 아무튼 결혼 축하드린다. 촬영 때도 항상 외로워하면서 노총각 히스테리를 부렸는데, 이 추운데 아무도 없었어봐라. 이를 어쩌나. 결혼 소식은 '힐링캠프' 보고 알았다. 그전엔 만나는 사람 있다면서 '몰라도 돼' 그냥 그랬다. 방송을 보며 '헉' 했다.
-2PM 황찬성이 동생으로 나왔다.
▶찬성씨는 항상 파이팅이 넘친다. 찬성시가 있어서 현장 분위기가 '업'된다. 아 좋은 기운을 굉장히 많이 가지고 있구나 했다. 덩달아 저도 '업'되고 좋더라. 연기 역시 캐릭터에 맞게 잘 해냈다. 현장에서 '아이돌이구나' 느낄 때는 거의 없었다. 감독님도 그랬나보다. 홍보할 겸 팬들이 오는 자리가 있었는데 그걸 보고서야 감독님이 '아 맞다, 찬성씨 2PM이지. 잊고 있었네' 그랬다. 이 친구도 티내지 않고 캐릭터에 묻어 산 거고, 현장 사람들도 그렇게 받아들였던 거다.
-5형제다보니 사람이 많아 더 왁자지껄 했겠다.
▶여긴 형제가 많은데 저는 여동생이 하나다. 비슷한 구석이 없어서 촬영장이 더 재밌었다. 저는 형제 많은 친구들이 제일 부러웠다. 누나가 옷 사주고 형이 괴롭히는 애들 때려주고 하는 게 부럽지 않나. 왁자지껄 시끌벅적한 가족 모습이 재미있더라. 제가 있었던 어느 현장과 비교해도 제일 시끄러웠다. 물론 그 중심에는 항상 윤상현 선배가 있었다.(웃음)

-지난해 결혼을 했고 이제는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한데, 작품을 보는 데도 차이가 생기나.
▶물론 늘 시켜주시면 감사하다. 조금 차이가 생긴 것도 같다. 작품 전체를 보는 건 당연하지만 캐릭터도 좀 주의 깊게 보게 된다. 비슷한 캐릭터들이 많이 들어왔고 조금씩 '나는 왜 이런 역할만 들어올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조금씩 컨트롤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또 다른 역할에 대한 갈망이 생기기도 했다.
-이제 올해가 마무리된다. 내년 계획은?
▶계획은 따로 없다. 신년 계획을 세운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목표를 세운 적도 없었던 것 같다. 그냥 맡은 작품을 열심히 하자, 다 하면 바람이나 쐬러 갈까 하는 정도다. 현재 영화 '도리화가'를 찍고 있다. 덕분에 머리를 이렇게 길렀다. 귀 빠지고 처음인데, 여자 분들은 어떻게 이 긴 머리를 감고 다니나 대단한 것 같다. 살다 살다 요새 머리를 다 묶어본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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