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영화 '사월의 끝'

가난의 현실, 여기에서 도피하려는 잔혹한 망상에 빠진 여자가 있다.
낡은 아파트로 이사를 온 현진. 그녀는 이사 첫 날부터 음산한 기운에 좀처럼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위해 싸고 조용해 보이는 이 곳에 월세로 왔지만 수상한 동네 분위기가 자꾸만 신경을 거스르게 한다.
현진은 옆집에서 자신들에 대해 신경 쓰지 않으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밤마다 알 수 없는 소음을 내는 옆집 모녀에 짜증이 난다. 이에 밤마다 계속되는 소음에 결국 집을 소개해 준 부동산을 찾아가 항의하지만 오히려 자신이 벽을 친 일을 두고 되레 면박을 당한다.
계속되는 소음 때문일까. 신경이 예민해진 현진은 공장에서 퇴근 후 망상에 빠지고 만다. 외국인 노동자가 사장을 죽이는 장면을 본 것. 이후에도 종종 망상 때문에 혼란을 겪게 된다. 대체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던 중 옆집 여중생 주희와 친분을 쌓게 된다. 서로 가난 때문에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가까워진 두 사람이다. 그렇게 서로에게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으며 잠시나마 현실에서 위안을 삼던 둘에게 위기가 닥친다. 동네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때문. 현진은 그간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말을 하던 주희를 의심하게 되고, 둘 사이에는 갈등의 벽이 생기게 된다. 이 또한 가난 때문에 벌어지는 사태로, 현실을 벗어나고픈 욕망에서 벌어진 일이다. 발버둥 쳐도 결국 제자리 걸음이라는 것이 좌절감을 안긴다. 현실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없는 현실에 주인공들은 반항이나 침묵 등으로 벗어나고자 하는데, 우리들의 모습을 반영했다.
현진의 감정 변화는 혼란스럽다. 그것이 때로 과하게 느껴지면서도 빠져들게 만드는데 이는 현진 역을 맡은 오롯이 박지수의 연기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망상에 빠진 모습을 철저히 감춰뒀기 때문이다. 현실과 망상을 오가야 하는 복잡한 감정선을 하나로 묶어 버렸다. 이런 박지수의 연기는 망상과 현실을 교묘히 한 공간 안에 얽히게 하는 효과를 낸다. 감독이 캐릭터를 통해 이어놓은 관계 또한 배우로 얻는 효과를 극대화 시키면서 스릴러 장르가 보여주는 긴장감을 놓지 않게 했다.
영화는 주희와 얽힌 살인사건이 발생한 후 베일에 싸여있던 주민센터 복지담당관 박현진을 적극 활용하면서 앞서 현진이 빠져있던 망상 세계의 실체를 까발린다. 현진에게는 잔인했던 현실이었다. 현진이 살던 낡은 아파트처럼 스산하고, 의문을 갖게 하는 박현진의 본격적인 등장은 극의 흐름에 반전 포인트다. 그녀는 현진과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이였고, 둘이 마주해 시작하는 대화는 그간 현실이라고 본 것들에 반격을 가하면서 앞서 펼쳐놓은 것들을 어떻게 마무리 할지 궁금증을 더한다.
박현진의 등장은 이야기 전체를 흔들면서, 적잖은 충격을 안긴다. 재미있는 게 박현진 역을 맡은 장소연의 활약이다. 어두운 표정이나, 낡은 아파트 앞에 서 창문을 바라보는 모습은 또 다른 망상에 빠져 있는 인물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박지수가 보여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혼란이 아닌, 현실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선들이다.
'사월의 끝'은 주인공들의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을 잘 살려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을 이어간다. 직접 보여주지 않는 상황들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하는데, 실체가 없어 공포감을 자아내게 한다. 알고 보면, 현실은 잔혹한 망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는 망상과 현실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실타래처럼 엮어 놓았다. 그리고 진실을 꺼내놓는 순간 진짜 무서움이 무엇인지 알게 한다. 등장인물들이 가진 불안감은 가난이라는 공통 분모를 넣어놓았고, 이에 가짜이지만 진짜로 오버랩 되는 상황들이 섬뜩하게 느껴지게 한다. 잔혹한 현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버린다.
9월 14일 개봉. 러닝타임 120분. 청소년 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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