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상반기 한국영화는 다사다난했다. 마블 영화들에 밀려 한국영화들은 맥을 못 쳤다. 한국영화 점유율이 50%대 이하로 떨어졌다. 미투 열풍으로 자정 움직임이 일었다. 희망의 빛도 보였다. 실종됐다시피 한 한국 공포영화 멜로영화가 부활했다.
스타뉴스는 2018년 상반기 한국영화를 결산하면서 이해영 감독을 만났다. 이해영 감독이 연출한 '독전'은 올 상반기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이다. 느와르 장르에 색다른 감성을 불어넣었다. 이해영 감독은 여러모로 올 상반기 한국영화를 상징하는 감독이기도 하다.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독전'이 500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뒀다. 소감은 어떤가.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 말에 모든 게 담겼다. 예전에는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하면 입바른 소리한다고 생각했을텐데, 지금은 영화가 관객을 만나 생명을 얻는다는 걸 알게 됐다. 내게는 '독전'이 첫 경험이다. 개봉 전에는 설레임이 있었지만 지금은 사실 기쁘다기보다는 내가 놓쳤던 흠결 같은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독전'은 흥행도 흥행이지만 반복관람하는 등 영화 자체에 대한 팬층이 형성됐는데.
▶관객과의 대화를 했는데 마치 팬미팅 같았다. 영화에 대한 팬미팅이었다. 질문들이 심오하고 깊었다. 예컨대 "락(류준열)의 원동력이 무엇입니까"란 질문을 받았다. 당황했다. 저보다 훨씬 치열하게 영화에 공감하고 깊게 생각해준 것 같았다.
관객수를 떠나서 다양한 각도와 관점으로 열심히 영화를 읽어줬다. SNS에도 "이해영 봐라"면서 의문과 질문, 부탁을 하는 걸 많이 목격했다. 영화가 진짜 관객을 만나 영화가 됐다.
-감독에게 흥행 요인을 묻는 건 우문이다. 그럼에도 왜 '독전'이 많은 사랑을 받았을까, 감독 스스로 생각해봤을텐데.
▶결국은 캐릭터 영화를 만들자는 목표와 정확한 캐스팅 때문인 것 같다. 배우들의 연기력 덕이다. 감독은 배우들이 잘 할 수 있도록 좋은 환경을 제공하면 됐다. 배우들에게 고마워할 수 밖에 없다.
-쏟아진 관심과 기사들 중에서 가장 반가운 게 있었다면.
▶수화 통역사로 나온 박성연에 대한 기사다. 영화 촬영할 때 박성연에게 비중이 작아도 빛이 날 것이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했었다. 그런데 사람들의 관심이 박성연에게까지 정말로 이어졌다. 그 기사를 보자마자 카톡으로 박성연에게 보냈다. 주연을 넘어서 조연 하나하나까지 관심을 가져준다는 게 감독으로선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반면 김성령은 매력적인 캐릭터에도 불구하고 비중이 적었기에 관객들의 아쉬움이 컸는데.
▶분량과 존재감이 비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로 아쉬워하는지 충분히 알고 있다. 그만큼 김성령 선배 존재감이 대단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확장판은 어떻게 준비 중인가.
▶어떤 방식으로 관객에게 보여질지는 모르겠다. 일단 작업은 끝냈다. 분명한 건 지금 극장에서 상영된 게 감독판이란 점이다. 확장판은 '독전'을 좋아해 준 분들에게 전하는 서비스다.
-몇 분이 늘었나. 어떤 장면이 추가됐고.
▶8분 20초 정도. 현장 편집본이 2시간 30분 정도였다. 확장판에는 극장 상영 버전에서 빠진 걸 채워넣었다.

-'독전' 개봉 전, 마무리 작업을 하면서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김주혁이 세상을 떠났고, 감독을 해꼬지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여러 의미로 올 상반기 한국영화계에 벌어진 일들 속에 있었는데.
▶'독전'과 함께 한 시간, 특히 후반 작업을 하면서 에너지를 가불해서 갖다 쓴 느낌이다. 여러 가지 의미로. 영화를 하는 게 뭔가 수양하는 일이구나는 깨달음도 얻었고. 약간 더 성숙해진 것 같다. 그리고 난 뒤 영화를 개봉하고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진짜 겸손해질 수 밖에 없었다. 감사드린다는 마음 뿐이다. 그래서 흥행 결과를 즐긴다는 모드는 전혀 아니다.
-'독전'은 다시 극장에서 봤나.
▶아직. 기자 시사회 이후 극장에서 보면 그 첫 번째 순간이 중요할 것 같았다. 아껴 놓고 있다. 극장에서 내려가는 마지막 날 볼 생각이다. 그전 영화들은 마지막에 영화를 극장에서 보면 뭔가 보듬어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사랑을 많이 못 받았으니깐. 그런데 '독전'은 점점 반성이 더 많이 된다.

-김주혁을 마지막으로 극장에서 보게 되는 것일텐데.
▶주혁 선배랑 당연히 다음 작품을 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번이 마지막이었을 줄 몰랐다. 그래서 사운드, 편집, 모든 부분에 더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다. 내 판단이 맞아야만 했으니깐. 이런 강박으로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한 프레임, 한 프레임, 24분의 1초를 꼼꼼히 뜯었다.
-한국영화 산업 환경이 2018년 7월부터 변화가 생긴다. 주 52시간 근무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니깐. 위기일수도 있고, 기회일수도 있고.
▶아무래도 투자사는 좀 더 보수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 창작자에겐 프레셔가 더 커질 수 밖에 없고. 어떻게 보면 위기일 수 있다. 그런데 한국영화 위기론은 이제와서 처음도 아니니깐. 늘 어떻게든 넘겨왔다. 좀 더 상식적이고 투명하게 연출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 같다. 배우들의 연기도 이제는 기다려줄 수가 없다. 배우들의 연기 방식도 바뀔 것 같다.
상반기 한국영화계를 보면 쉽지 않은 고개를 넘은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도 희망의 빛이 보이기도 했다. 멸종되다시피 했던 공포와 멜로가 부활했지 않나. 특정장르로 편중하지 안고 다양한 장르로 한국영화들이 만들어질 수 있는 계기가 생긴 시기기도 한 것 같다.
-차기작은 어떤 게 될 것 같나.
▶'독전' 같이 센 걸 하고 싶기도 하고, 완전히 다른 영화를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얼마 전 '유전'을 봤는데 새로운 것에 엄청 끌리더라. 아직 무엇을 할지 정하지는 않았지만 오래 쉴 생각은 없다. 시나리오 쓰는 방식을 바꿀 생각이다. 그전에는 노트북에 뭔가 영혼을 다 빠트린 것 같았다면 이제는 약간 서서 써보려 한다. 이야기 바깥에서 쓰고 싶은 느낌이랄까. '독전'을 하면서 든 생각이다.
-'독전' 프리퀄 계획은 있나.
▶흥미롭지만 노 코멘트다.

-'독전'에서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았지만 조진웅이야말로 중심을 잡았던 것 같은데. 사실 '독전'은 등장인물들이 붕붕 떠야 하는 영화라 중심을 잡아주는 인물이 필요했다. 조진웅이 맡은 역할은 비슷한 류의 영화에선 가장 뜨거울 법한 인물인데, 조진웅은 오히려 온도를 차갑게 해서 중심을 잡았다. 조진웅이 받쳐줘서 상대 배우들이 더 돋보였다. 주연배우로 한단계 더 성장한 것 같던데.
▶정말이다. 진짜 그랬다. 조진웅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 배우다. 조진웅이 그러더라. 단순히 연기로 표현하는 게 아니라 인생으로 표현하게 된 것 같다고. 처음에는 내가 이 캐릭터 뭔지 알아, 이러고 들어왔는데 다르다는 걸 알게 되고, 그러면서 생각하지 않았던 경험을 한 것 같다고 하더라.
-그런 좋은 배우들과 같이 해서 얻은 게 있나.
▶조진웅을 만나서 류준열과 함께 해서 나 역시 영화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 같다. 이 배우들과 같이 하면서 시각이 넓어진 것 같다. 각 캐릭터의 서브텍스트에 대해 많이 배웠다. 감독으로서 배운 게 정말 많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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