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놈(Venom)은 마블의 인기 히어로 시리즈 '스파이더맨'에서 파생한 악당이다. 인간의 몸에 기생하는 외계 생명체 심비오트, 심비오트와 인간의 결합이 낳은 악당 베놈은 이미 2007년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3'에 검은 슈트를 입은 스파이더맨 같은 모습으로 등장했다. 빌런 히어로를 콘셉트로 삼아 솔로무비로 새롭게 만들어진 영화 '베놈'(감독 루벤 플레셔)은 거미의 흔적을 지워버리고 베놈의 탄생기를 다시 쓴다. 빼어난 출발은 아니지만 거르고 볼 졸작도 아니다. 갈팡질팡하지만 미덕이 있다.
에디 브록(톰 하디)은 나름의 소신으로 현장을 누비는 기자다. 변호사인 여자친구 앤 웨잉(미셸 윌리엄스)과는 결혼을 약속한 사이. 막강한 자금력의 거대기업 라이프 파운데이션을 이끄는 천재 과학자 칼튼 드레이크(리즈 아메드)를 인터뷰하게 된 그는 우연히 여자친구의 대외비 서류를 보고 라이프 파운데이션의 비윤리적인 임상실험을 지적했다가 밉보여 그만 해고된다. 여자친구도 결별을 선언한다. 모든 걸 스스로 자초했다는 절망감에 괴로워하던 그는 마침 라이프 파운데이션이 외계 생명체를 들여와 인체 실험을 한다는 제보를 받고 몰래 실험실에 침투했다가 자신이 외계 생명체의 숙주가 되고 만다. 이유없이 허기에 시달리는 한편 엄청난 신체 능력을 갖게 된 에디 브록은 혼란스러워 하고, 심비오트라 불리는 외계 생명체는 드디어 에디에게 말을 걸어와 "우리는 베놈"이라며 에디의 몸과 마음을 지배하려 든다.
R등급((17세 미만 보호자 동반가)에서 PG13등급(13세 미만은 보호자 요주의)으로 조정됐단 소식이 들렸을 때부터 짐작한 바지만 '베놈'은 개성과 실험성보다는 무난하고 안전한 길을 택했다. 투철한 고발 정신의 정의로운 기자, 그의 똑똑하고 깐깐한 여자친구를 내세우고 이지적으로 포장된 매드 사이언티스트를 메인 빌런으로 삼아 갈등구도를 짰다. 새 시리즈의 출발답게 우주에서 발견된 네 마리 심비오트를 지구로 들여오는 과정부터 에디 브록의 캐릭터, 심비오트와 에디 브록의 만남을 지루하게 설명하는 데 상당한 분량을 할애한다. 액션마저 평이한 편. '인셉션', '다크 나이트 라이즈', '매드맥스:분노의 도로', '레버넌트:죽음에서 돌아온 자', '덩케르크'에서 빼어난 연기를 펼친 톰 하디라고 전형적 구도와 갈팡질팡하는 톤을 어쩌지 못한다.
하지만 '베놈'은 '착한 놈' 에디 브록과 '나쁜 놈' 심비오트, 그 결합으로 탄생한 '이상한 놈' 베놈을 흥미롭게 소개하는 데 성공한다. '스파이더맨3'보다는 되려 최근 개봉한 블룸하우스의 액션물 '업그레이드'가 떠오르는데, 전혀 다른 이야기이긴 해도 인간의 몸에 심겨 가공할 만한 신체 능력을 주면서 머리 속으로 대화를 나누는 제 2의 존재란 설정이 눈에 들어오는 탓이다. 심지어 주인공 로건 마샬 그린과 톰 하디가 묘하게 닮았다.
미국에선 스파이더맨 버금가는 인기 캐릭터라지만, 쭉 찢어진 하얀 눈과 삐죽삐죽한 이빨, 거대한 혓바닥, 시커먼 피부를 지닌 흉측한 비주얼부터 역대급 비호감인 데다 심지어 식인까지 일삼는다. 그런 베놈을 어떻께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끌고가느냐가 꽤 관건이었을 텐데, 그 부분에서 유머가 큰 힘을 발휘한다. 절반 즈음이 지나 에디와 결합한 심비오트가 '배고파'라고 말을 걸어오면서부터 '베놈'은 재미가 붙는데, 에디를 제가 타는 차 정도로 여기면서 무시무시한 음성으로 훈수까지 일삼는 자존심 센 기생수는 꽤 매력이 있다. 뜻밖에 고분고분하기까지 해 후반부로 가면 귀엽게 느껴질 정도다.
쿠키 영상은 1개다. 스크롤 다 올라가고 나오는 추가 쿠키영상은 없으니 참고하시길.
10월3일 개봉. 러닝타임 107분. 15세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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