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선균은 감사해 했다. 영화 '악질경찰'을 찍고,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하고, 영화 'PMC: 더 벙커'를 내놓고, 영화 '기생충'을 같이 한 일들에 그저 감사했다. 배우 인생에는 터닝 포인트가 되는 기점, 작품이 있기 마련인데 일련의 작품들은 그런 게 없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이선균은 26일 개봉하는 'PMC: 더 벙커'를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아서 했다"고 말했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작업. 그는 'PMC'로 처음 연기 호흡을 맞춰본 하정우와 하와이 마라톤 대회에 같이 나갈 만큼 두터운 인연을 맺었다. 'PMC'는 글로벌 군사기업(PMC) 블랙리저드의 캡틴 에이헵과 동료들이 미국 CIA 의뢰로 DMZ 지하 벙커에서 북한의 최고 권력자 킹을 납치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 '더 테러 라이브' 김병우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하정우가 에이헵 역할을, 이선균이 북한 의사 윤지의 역을 맡아 호흡을 맞췄다. 이선균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PMC'는 왜 했나.
▶안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가장 먼저는 김병우 감독님. 감독님이랑 작업을 꼭 해보고 싶었다. 하정우와도 연기 호흡을 맞춰보고 싶었고. 제작사 강병찬 대표와 인연도 그렇고, 김병서 촬영감독은 대학교 선후배 사이다. 김병서 촬영감독 졸업작품을 같이 하기도 했다. 아내인 전혜진도 '더 테러 라이브'에 출연했던 인연이 있고.
'악질경찰'을 찍고 있을 때 제안을 받았다. 원래는 '악질경찰'을 찍고 쉴 생각이었다. 워낙 내가 끌고 가는 작품이었던 탓이다. 그런데 'PMC'는 분량도 적당했고, 지금 이 타이밍을 놓치면 이 사람들과 작업을 못할 것 같았다.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았다.
-비중이 그리 많지 않은데.
▶오히려 롤이 적어서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정우가 맡은 에이헵은 트라우마가 있고, 선택과 갈등이 연속인 인물이다. 반면 내가 맡은 윤지의는 명확하게 행동하고, 하정우가 선택할 수 있게끔 키를 갖고 있는 인물이다. 난 'PMC'가 액션영화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액션을 하지만 난 에이헵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어떤 선택을 하게끔 하도록 하는 것. 이게 목표였다. 캐릭터와 분량의 아쉬움은 없다. 늦게 합류한 만큼 그건 감안하고 들어갔으니깐.
-감정 장면이 더 드러날 수도 있었는데 편집된 부분이 있는데.
▶하정우와 가정사 이야기를 하는 게 편집이 되긴 했다. 윤지의는 북한 포로수용소에 아내랑 아들이 갇혀있는 인물이란 설정이다. 이 사람에겐 이데올로기보다 가족과 사람이 먼저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좀 더 캐릭터를 설명할 순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랬다면 속도감이 떨어질 수 있으니깐 감독님이 선택한 것 같다.
-북한말은 어떻게 배웠나.
▶선생님이 계셨다. 대사를 녹음한 걸 듣고 계속 공부했다. 현장에서 동시 녹음을 할 때는 뉘앙스와 발음이 더 셌다. 그런데 그렇게 하다보니 톤이 너무 세고 감정을 전달하는 데 단조로운 것 같았다. 그래서 후시녹음을 할 때 선생님, 감독님과 상의해서 너무 튀지 않는다면 억양을 줄이고 감정을 전달하기 쉽게 하자고 했다.
-워낙 총소리와 폭탄 소리가 커서 대사가 잘 안들리는 면도 있던데.
▶나도 그런 고민을 해서 감독님과 상의를 했다. 총격이란 현장감을 전달하는 게 우선인지, 대사를 명확히 전달하는 게 우선일지. 어느 것에 포인트를 줘야 할지. 현장을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는 게 감독님의 생각이었고 나도 동의했다.
-카메라를 직접 들고 연기도 했는데.
▶DSLR을 손에 묶고 연기했다. 이 카메라 촬영분을 현장에서 동시에 모니터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연기하면서 찍고 난 뒤 촬영분을 감독님이 보고 추가로 요청했다. 연기 주문, 앵글 주문을 동시에 했다. 카메라가 고정될지, 흔들릴지, 누가 앵글에 잡혀야 할지.
-하정우와 호흡은 어땠나.
▶하정우는 실제로 캡틴 같다. 분위기를 이끄는 리더 같고. 건강하고 긍정적이다. 에너지가 넘치고. 하정우가 한 달 먼저 촬영에 들어간 다음에 내 촬영이 진행됐다. 그래서 농담으로 하정우가 반장이 학교에 전학 온 느낌이라고 했다.
하정우와 최근에 하와이에서 'PMC' 대박을 기원하면서 마라톤을 같이 했다. 영화에선 하정우가 나를 끌고 가지만 달릴 때는 뒤도 안 돌아보고 가더라. 정확히 하정우보다 1시간 40분 늦게 골인했다. 7시간 44분 걸렸다. 풍광이 너무 좋아서 그런지 아름다운 피난 길 같더라.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한 번 해보고 싶다.
-촬영이 없는데도 현장을 자주 찾아갔다던데.
▶한 달 뒤에 촬영에 합류해야 하니깐 먼저 가서 낯섦을 깨고 싶었다. 하정우가 어떻게 연기하는 지도 봐야하고. 어떻게 연기하는지를 봐야 나도 상상을 하면서 연기할 수 있으니깐. 내가 하정우에게 대사를 쳐주기는 했지만 별로 큰 도움은 아니었다.

-이동 카메라 촬영이 이채롭던데. 어떻게 찍었나. 시점을 맞춰야 했을텐데.
▶나도 시나리오를 보면서 어떻게 그려질지 궁금했다. 봉 같은 카메라를 만들어서 찍었다. 난 테니스공을 보면서 시점을 맞췄고.
-'나의 아저씨'에 이어 전혀 다른 색깔인 'PMC'에 참여했는데.
▶가장 다른 건 사투리를 써야 한다는 점이었다. 두렵고 어려운 부분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CG가 많이 들어간 영화를 해본 적이 없어서 도전이었다. 그런데 앞으론 점점 더 이런 현장이 많을 것 같더라.
-구멍이 뚫린 길을 걷는 장면은 CG로 연기한 것인가.
▶아니다. 실제로 3미터 높이 세트에서 구멍을 뚫어 놓은 채 연기한 것이다. 안전장치 없이 하는 거라 처음에는 약간 당황했다. 안전한데 불안한 척 연기를 해야 했으니깐. 그런데 내가 주저하면 촬영 시간이 넘어가겠더라. 그 장면이 영화 속에서 공간으로 확장된 것을 보고 감탄했다.
-김병서 촬영감독은 원래 감정을 카메라로 스윽 잘 담는데. 하정우는 이번에 그런 장면들이 많은데 이선균은 상대적으로 적은데.
▶오히려 원래는 더욱 기본 앵글로 찍히는 게 계획이었다. 감독님이 그런 앵글에 잡히기만을 바랬던 것 같다. 그런데 하다보니 그렇게 앵글을 잡으면 감정이 잘 전달이 안되더라. 그래서 추가로 김병우 감독과 김병서 촬영감독이 협의해서 추가로 카메라가 더 들어왔다. 앵글이 바뀌는 부분이 있는 게 그런 점이다.
-마지막 스카이 다이빙 엔딩 장면은 어떻게 찍었나.
▶처음 설명을 들었을 때도 이게 가능해 싶었다. 그런데 가능하더라. 하정우의 모든 관절에 와이어를 달고 각각이 마리오네트처럼 당기면서 조정했다. 그걸 카메라가 돌면서 찍고. 여덟 컷인데 마치 한 컷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아주 잘 나온 것 같다.

-이선균은 최근 몇 년 사이 이정범 감독과 '악질경찰'을 찍고, 김원석PD랑 '나의 아저씨'를 찍고, 김병우 감독과 'PMC'를 찍고,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을 찍고, 변성현 감독과 '킹 메이커'를 찍는다. 각각 다른 색깔에 각각 캐릭터의 진폭도 크다. 과거보다 훨씬 쓰임이 커졌는데. 어떤 기점이 있나.
▶'악질경찰'이 먼저 개봉할 줄 알았는데 타이밍을 놓쳤다. '나의 아저씨'는 큰 선물이다. 초반에 젠더 갈등 등 여러 논란이 있었다. 우리가 어떤 얘기를 해도 색안경을 쓰는 데 대해 속상하기도 했다. 그게 더 원동력이 되기도 했고. 정말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결과적으로 많은 분들이 잘 봐주셔서 다행이다. 고등학교 친구들이 너무 좋아하더라.
예전에는 안 했던 걸 해도 왜 비슷한 것만 하냐는 소리를 들었던 적도 있다. 요즘처럼 연속적으로 다른 작품, 다른 캐릭터를 맞게 된 건 그래서 감사하다. 가장 중요한 건 다 감독님들인 것 같다. 같이 하고 싶은 감독님들에게서 제안을 받았다. 그분들에 대한 믿음이 있으면 현장에서 예민해지지 않고 행복할 수 있다. 작업들이 그래서 다 행복했다.
-예전에는 분명 정체됐던 순간이 있었는데.
▶배우란 직업이 어떤 기점이 있기 마련이다. 어떤 작품이 잘 돼서 이어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런 게 없이 계속 좋은 작품, 좋은 사람들과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겠지만 포커를 할 때 패가 안 좋아서 죽으려 하는데 계속 에이스가 들어오는 느낌이랄까. 한때 일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다. 내가 계속 배우를 해도 되나라고 생각했다. 가장의 책무로 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고. 그런데 최근에 이런 작품들이 격려처럼 다가와줘서 너무 감사하다. 쉼없이 연속으로 일하게 되는 데 더 고마운 것 같다.
-김병우 감독과는 어땠나.
▶정말 준비를 꼼꼼하게 한다. 하정우 표현대로 이과생처럼 영화 만든다. 감정의 그래프까지 만든다. 촘촘히 준비하고 이야기한다. 공간도 자기가 직접 레고로 만들어서 보여준다. 매일 촬영 때 가장 먼저 대기실로 와서 오늘 찍을 장면들과 컷을 설명해준다. 감독의 의도를 정확히 알려준다.
-차기작은 어떻게 되나.
▶3월부터 '킹 메이커'를 찍게 된다. 그 때 즈음에 '악질경찰'이 개봉할 예정이라 바쁠 것 같다. 여러 작품들을 하면서 온전히 끌고 갈 때도 있고, 같이 나눠서 갈 때도 있다. 그런 작품들을 계속 하게 되서 감사하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내년 칸국제영화제에 가면 같이 가게 되나.
▶기회가 된다면 가보고 싶다. '끝까지 간다' 때 정말 가보고 싶었지만 못 갔으니깐. 하지만 그 때 '킹메이커' 촬영 때라 현장 상황을 봐야 할 것 같다.
-'악질경찰'은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는데.
▶만드는 사람들 모두 피해자를 장르적으로 이용했다는 생각을 하게 될까 가장 두렵고 고민이 많았던 부분이다. 결코 그렇게 하지 않으려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어른들의 각성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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