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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사바하' 씨줄이 두터운 한국형 공포영화의 탄생 ①

[리뷰] '사바하' 씨줄이 두터운 한국형 공포영화의 탄생 ①

발행 :

전형화 기자
사진


클래식 같다. 악마가 태어난다.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다. 그 악마의 정체를 쫓는다. 기괴함과 음습함. 날아오르는 새떼와 스멀스멀 기어오는 뱀들, 울부짖는 짐승들. '사바하'는 '오멘' 같은 고전 오컬트 영화와 닮았되 지극히 한국적인 공포영화로 2019년에 당도했다.


16년 전 강원도 영월의 어느 마을. 쌍둥이 소녀가 태어난다. 하나는 정상이되 하나는 동생의 무릎을 파먹으며 나왔다. 온몸에 검은 털이 숭숭한, 그야말로 악마의 형상이다.


16년이 흘렀다. 신흥 종교 비리를 찾아내는 종교문제연구소의 박목사. 오늘도 강연을 하며 후원을 강조한다. 그는 이단이라고 지적한 단체에서 계란 세례도 맞지만 개의치 않는다. 그저 돈 냄새를 쫓을 뿐. 박 목사는 기독교보다 불교가 더 많은 돈을 후원한다며 거대 종단을 찾는다. 사슴동산이란 사이비 불교 단체가 혹세무민한다며 그 정체를 쫓기 위해 후원을 부탁한다.


더 확실한 증거를 요구하는 종단의 요구에 박 목사는, 사슴동산에 잠입 중인 요셉 전도사에게 그들의 경전을 찾길 부탁한다. 진행비나 주고 일을 시키라는 요셉 전도사. 그래도 열심히 뒤진다. 바로 그 포교원에 갑자기 경찰이 들이닥친다. 무너진 터널 벽에 숨겨진 소녀 살해 혐의를 받고 있는 인물을 찾기 위해서인 것. 박목사는 사슴동산에 심상치 않은 비밀이 있다는 걸 느낀다.


경찰에 쫓기는 살해범 주변을 맴도는 의문의 인물 나한. 나한과 그 살해범은 세상의 등불을 위해 악을 멸하고 있다고 믿는다. 사슴동산의 비밀을 품은 나한은 한적한 시골에 숨어 사는 쌍둥이 소녀를 턱밑까지 쫓는다. 박 목사는 그런 나한을 쫓고 점점 사슴동산의 실체에 접근한다.


'사바하'는 '검은사제들' 장재현 감독의 신작이다. 전작에서 악마와 싸우는 가톨릭 사제들의 이야기를 그렸던 그는 '사바하'에선 이단 종교를 찾아 밥 벌어 먹고 사는 개신교 목사의 이야기를 그렸다. '검은사제들'이 사제복을 입은 강동원을 내세운 '콘스탄틴' 같은 영화였다면, '사바하'는 '오멘' 같은 클래식 공포영화 같다. 악의 근원에 보다 음습하게 접근한다.


서구 공포영화가 기독교 문화에 뿌리를 내렸다면 '사바하'는 기독교와 불교와 밀교에 무속까지 더했다. 전작부터 한국의 다양한 종교에서 한국적인 공포영화의 뿌리를 찾았던 장재현 감독은 '사바하'에서 비로소 싹을 틔운 것 같다. 세속적인 이벤트가 돼버린 크리스마스 즈음에 펼쳐지는 지극히 한국적인 종교 색채를 담은 이 공포영화는, 한국 공포영화의 새로운 터닝 포인트가 될 것 같다.


신을 잃어버린 박 목사. 자신의 신을 찾는 종교단체. 이 구도는 '사바하'의 주요 축이다. 박 목사는 여느 오컬트 영화 속 성직자처럼 해결사가 아니다. 관찰자다. 관객의 안내자다. '사바하' 세계로 안내하는 한편 질문을 던진다. 주여, 어디 계시나이까?


'사바하'는 이 질문과 과정을, 음습하고 불쾌하고 무섭게 던진다. 악의 탄생. 예언과 희생, 그리고 구원. 이 과정이 때로는 우연이 남발되지만, 공포와 긴장으로 그 우연을 덮는다. 날줄은 성기지만 씨줄은 두텁다.


미술과 음악은, '사바하'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탱화가 주는 아름다움과 공포. 흰 눈과 어둠의 대비. 피 같은 붉은 빛과 슬픈 푸른 빛의 교차. 화면이 영화를 이끌고, 그 위에 음악이 내리꽂는다.


오랜만에 현대극으로 돌아온 이정재는 반갑다. 담배 피고 돈 냄새 맡길 좋아하고, 신을 잃어버렸지만, 그래서 신을 찾아 헤매는 박 목사 역을, 그럴듯하게 해냈다. '태양은 없다'의 이정재가 그리운 관객들이라면 '사바하'는 반가울 법하다. 나한 역의 박정민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기능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쌍둥이 소녀 금화 역의 이재인은 '사바하'로 관객에게 발견될 것 같다.


그간 한국공포영화는 '전설의 고향' 류와 일본공포영화에서 영향을 받은 학원 공포물과 할리우드 공포영화에서 영향받은 하우스호러가 뒤섞였다. 어느 장르든 한(恨)이 뿌리 깊었다. 그리하여 해원이 결말이었다. 간혹 '알포인트' '곤지암' 같은 수작이 튀어나오긴 했지만 맥을 잇지는 못했다. '사바하'는 그런 점에서 다르다. 장르적인 쾌감을 추구하되 질문을 던진다. 한에서 벗어났기에 해원에서도 자유롭다. 할리우드 공포영화 같은 틀을 갖고 있지만 지극히 한국적이다. 무엇보다 '사바하'만의 세계를 갖고 있다. '사바하'는 질문을 던지지만 답을 내놓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이 세계관이 연속성을 갖게 만든다. 신을 찾아 헤매는 박 목사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이래저래 후속편에 대한 기대를 품게 한다.


2월 20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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