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선 시각, 새로운 시선으로 보는 영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지난 14일 개봉한 영화 '질투의 역사'에는 최근 불거진 성범죄를 연상케 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극중 친구를 시기하는 선기(조한선 분)는 질투에 눈이 멀어 친구의 여자친구인 수민(남규리 분)에게 약을 먹이고 성범죄를 저지른다. 우리 현실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들을 생각해본다면 가능한 일이지만, 영화 안에서는 개연성을 확보하지 못한다. 조폭 영화도 아니고, 평범한 대학생들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이 같은 행동은 너무 갑작스럽다. 이 범죄마저 그저 질투로 포장한 모양새에 관객은 불쾌할 뿐이다.
영화를 연출한 정인봉 감독은 왜 범죄를 질투로 포장했느냐는 질문에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다"라고 답했다. 정 감독은 "실화를 바탕으로 해서 좀 그렇게(자극적으로) 보이는 부분이 있다. 인간 안의 악마성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해서, 그 이야기가 납득이 가는 것은 아니다. 이 자극적인 장면은 영화를 산으로 가게 만들었다.
올해 초 개봉한 이시영 주연의 액션 영화 '언니' 역시 비슷하다. '언니'는 한국에서 보기 힘든 여성 원톱 액션영화라 개봉 전부터 기대를 모았다. 복싱 국가대표 출신에 '여자 마동석'이라 불릴 만큼 독보적인 캐릭터의 이시영의 액션이기에 그녀가 보여줄 액션 연기에도 관심이 집중됐다. 베일을 벗은 '언니'는 이시영이 고생해서 만든 액션이 아까운 영화였다. 이 영화에서는 지적장애 동생이 겪는 성추행과 성폭행 그리고 여러 가지 끔찍한 사건들이 이어졌다. 영화를 연출한 임경택 감독은 "이 영화는 실화를 모티프로 구성한 영화다"라고 설명했다.
물론 우리 사회에는 그보다 더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만 뉴스가 아닌 영화에서 보는 사건들은 재구성돼 관객들의 공감을 얻어야 한다. '언니'는 개연성 없이 이어지는 성폭행 장면, 이를 보고 분노하며 폭주하는 언니의 모습으로 관객에게 피로감을 전했다.
150억원을 들여 제작한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 역시 우리나라 승리의 역사를 바탕으로 만들어 제작전 부터 주목 받았다. 하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이 영화는 영화로서의 만듦새가 너무나 아쉬웠다. "엄복동이라는 역사를 알아달라"고 목소리 높였던 주연배우 정지훈과 제작자 이범수의 외침은, 허술한 영화의 만듦새 앞에서 공허하게 메아리 쳤다.
버닝썬 사건, 승리 게이트, 정준영 불법 성관계 동영상 파문까지. 믿을 수 없는 충격적인 사건들로 사회가 떠들썩하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아무리 놀랍고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하더라도, 이 현실을 이기기 쉽지 않을것 같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는 정말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우리가 보는 영화, 드라마도 이 같은 실화, 즉 현실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는 작품이 많다. 사람들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이 많기에,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화제가 되는 작품이 많다. 하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은 더욱 작품 안에서의 개연성을 확보해야 한다. 또 영화로 재가공 되며 재미와 매력을 가져야 한다.
뉴스를 볼 때 말도 안되고 믿을 수 없는 사건이 보도된다고 해서 사람들은 그 뉴스를 외면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영화화 될 때는 작품 안에서는 말이 돼야 하고, 관객의 공감을 얻어야 한다. 그것이 집에서 공짜 뉴스를 보는 것과, 돈을 내고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는 것의 차이점이 아닐까.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현실은 더 하다" 이런 말들은 돈과 시간을 투자해 극장으로 향하는 관객을 향한 변명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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