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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천문' 익숙한 것에 새로움을 더한 고수들의 향연 ①

[리뷰] '천문' 익숙한 것에 새로움을 더한 고수들의 향연 ①

발행 :

전형화 기자
사진

세종대왕과 장영실. 지고한 임금과 낮디낮은 노비. 같은 꿈을 꾼다고 같은 눈높이가 되고, 벗이 될 수 있을까.


'천문'은 세종대왕과 장영실의 이야기다. 조선 왕조 최고 성군으로 꼽히는 세종대왕. 그가 재주를 어여삐 여겨 관노 출신인데도 종3품 대호군까지 하사했던 장영실. 세종은 꿈을 꾸고, 장영실은 그의 손이 됐다.


기록된 바, 세종은 내관보다도 가까이 뒀다던 장영실을 어느 순간부터 멀리한다. 그리고 그가 감독한 임금이 탔던 가마 안여가 부서지자 그 죄를 물어 궁에서 내친다. 그렇게 장영실은 역사에서 사라진다. '천문'은 그 역사의 빈 곳을 상상력으로 채웠다.


한석규가 세종대왕이요, 최민식이 장영실이다. 감독은 허진호다. 그러니 '천문'은 한석규와 최민식, 실제로도 절친한 대학 선후배인 두 연기 절정 고수가 허진호라는 멜로 장인의 그림 속에서 노니는 영화다.


중국과는 맞지 않는 우리 것을 평생에 좇았던 세종대왕. 우리 시간을 찾고, 우리 소리를 찾았으며, 마침내 우리 글자를 만들었다. 장영실은 그런 임금의 손이 돼 때로는 하늘을 재는 기구를 만들고, 때로는 시간을 재는 장치를 만들었다. 그러니 둘은 같은 꿈을 꾸고 같은 꿈을 좇았다.


허진호 감독은 그런 두 사람이 왜 헤어졌을까, 왜 임금은 영실을 내쳤을까, 평생에 단단한 장치를 만든 영실이 왜 임금이 탄 가마는 부서지도록 허술히 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만들었다.


같은 꿈을, 같은 눈높이로 바라봤으니 그 둘은 벗이 아니었을까. 다만 세종은 세종대로 영실에 대한 마음이 있고, 영실은 영실대로 세종에 대한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더 사랑하는 이가, 더 희생하는 법이다.


'천문'은 이런 둘의 관계를 뼈대로 놓고 그 위로 셰익스피어 궁정극 같은 판을 깔았다. 그 판에서 노회한 정치인들, 연기 9단 고수들의 밀고 당기는 정치극을 세웠다. 다시 끝으로 애달프지만 정스러운 이별을 놓았다. 허진호 감독은 셰익스피어 궁정극 같은 이야기 속에, 그만의 방식으로 연리를 담았다. 그리하여 세종과 장영실의 관계는, 각도에 따라 벗으로도 정인으로도 충심으로도 보인다. 그 긴장감이 '천문'의 깊은 맛이다.


허진호 감독은 이 관계를, 단지 이야기와 배우의 힘에 맡기지 않았다. 세종과 장영실은 카메라의 눈높이가 같다. 둘의 첫 만남에서 높고 낮았던 카메라 높이는, 세종이 영실의 눈높이로 낮아지면서 같아진다. 둘이 누워서 별을 같이 볼 때는 세종이 먼저 권하지만, 세종의 침전에서 별을 볼 때는 영실이 먼저 다가간다. 그렇게 둘의 눈높이는 같아진다. 카메라는 둘의 얼굴을 교차하며 둘 사이의 계급을 지운다. 반면 세종과 영의정을 정점으로 한 신하들과 관계에선 카메라는 또 다르다. 명확한 높낮이로 차이를 명확히 한다.


설계는 감독이 해도 춤은 배우가 추는 법. '천문'에 출연한 배우들의 연기는 황홀하다. 주요배우 나이를 합치면 조선왕조 500년은 될 법한, 이 배우들의 연기를 한번에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천문'은 제 몫을 했다. 한석규와 최민식 곁에 허준호가 있으며, 그 밑으로 김원해 임원희 윤제문이 있고, 그 위로 위로 김홍파와 다시 그 위로 신구가 있다. 연기의 길에 끝이 없다는 걸, 한석규와 최민식 위로 또 다른 경지가 있다는 걸, 관객에게 펼쳐놓는다. 세종 한석규와 영의정 신구의 독대 장면은, 아무런 장치 없이 오롯이 배우의 힘으로 긴장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대의와 대의의 싸움. 현란하지 않고 정갈하며 단순한 말로 칼춤보다 강렬한 말춤을 선보인다.


한편으론 장영실의 제자 사임으로 출연한 전여빈은, 그 몫을 너무 줄여 아쉽다. 한석규는 익숙한 세종 같지만, 최민식의 장영실은 장승업과 이순신 같다. 그가 해석한 장영실은 자유로운 영혼의 예술가요, 왕과 같은 꿈을 꾸기에 고단한 장군 같은 것이었나보다. 어린아이 같은 건 최민식이요, 수줍어하고 삐치는 모습은 그가 그린 장영실일 터. 그렇기에 '천문'에서 장영실이 가장 입체적이다.


'천문'은 익숙한 것에 새로움을 더해 긴장감을 자아낸다. 이 긴장감은 묘하다. 낯익은 것이 낯설어지면서 오는 긴장감.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이 달라질 때 오는 긴장감. 이 긴장감을 한편으로는 포근히 전한다. 고수들의 내공이란 깊지만 포근한 모양이다.


12월 26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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