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김슬기가 '다재다능함'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영화 '고속도로 가족'을 통해서다. 대중에게 각인된 얼굴, 그리고 실제 내 얼굴 사이의 괴리감을 극복하고 김슬기는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
최근 서울시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고속도로 가족'의 배우 김슬기와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고속도로 가족'은 인생은 놀이, 삶은 여행처럼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살아가는 한 가족이 우연히 한 부부를 만나면서 예기치 못한 사건을 겪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김슬기는 기우(정일우 분)의 아내이자 아이들의 엄마인 지숙 역을 맡아, 기존의 밝고 통통 튀는 에너지와는 완전히 다른 매력을 선보인다. 소심한 엄마처럼 보이지만,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인물로 고속도로를 유랑하는 가족이라는 설정 안에서 배우 정일우와 아역 배우들 사이의 균형을 잡는다.
이날 김슬기는 "처음 대본을 봤을 때 '저한테 들어온 게 맞냐'라고 물어볼 정도로 관객들이 보기에 낯선 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굉장히 기다려왔던 역할이라서 반가운 마음이었다"며 "지숙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참고할 만한 작품을 보지는 않았고, 감독님이 생각하시는 그림과 분위기가 어떤 건지 질문하고 회의해서 지숙이를 표현했다. 배우로서는 다른 선배님들처럼 이 안에서 존재하는 사람이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뭔가를 표현해야겠다는 것보다도 그 안에 살아있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고 밝혔다.

거리를 배회하는 임산부라는 설정을 위해 노메이크업에 머리를 거칠게 자르고 입술을 며칠에 걸쳐 뜯어내는 등 지숙 그 자체가 된 김슬기는 "사실 일상 속 저와 많이 닮아있어서 저를 아는 분들은 놀라지 않았을 거다. 평소에는 지저분하게 다닌다"고 웃었다.
이어 "그런 부분이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졌고, 저랑 그런 부분이 결이 잘 맞고, 표현하거나 과장되지 않은 것도 저랑 잘 어울렸던 것 같다. 촬영할 때도 오히려 편했던 게 대사로 저를 표현하기 보다는 얼굴이나 표정이나 눈빛으로 연기하는 걸 좋아하고, 그 지점이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하게 돼서 너무 좋고 재밌었다"며 "대본상에도 대사도 없어서 분량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영화 보고 나니까 그 안에서 잘 존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렇듯 '고속도로 가족' 안에서 잘 존재했다는 것에 만족감을 표한 김슬기는 자신이 맡은 지숙을 이해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그는"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나도 저렇게 살 수 있을까?' 생각했을 때 남편을 사랑하고, 환경이 이렇게밖에 주어지지 않았다면 이렇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며 "최선을 다해서 주어진 환경에서 산 건데 그러다가 영선을 만나고는 새로운 관점과 시각이 열리면서 생각의 방향성이 달라지지 않았나 싶다. 처음에는 사랑하는 남편이 1순위였다면 점점 아이들이 더 우선순위가 되지 않았나 싶다"고 설명했다.
이어 '엄마'를 연기한 것에 대해서는 "저는 아쉬운 부분만 보여서 아쉬운데 엄마가 아닌데 엄마 역할을 잘 표현해준 것 같다고 칭찬을 해주셔서 뿌듯했던 것 같다. 조카가 태어나고 이 작품을 만난 게 행운이다. 그 이후로 아이를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변하고, 어머니를 바라보는 시각도 변했다. 그런 것들을 받아들인 상태로 이 이 역할을 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며 "아역 배우들을 위해 제가 해줄 수 있는 건 현장에서 편하고, 최대한 엄마처럼 생각할 수 있게 노력했다. 더 많이 놀아주고, 친해지는 것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고속도로 가족' 속 김슬기의 연기는 요즘 배우 김슬기가 가지고 있는 고민의 결과물이다. 그는 "늘 그랬지만, 요즘은 더욱 그런 것 같다. 그동안 에너지를 발산하는 역할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냥 존재하지 않아도 존재감이 보이는 역할이 많았다. 그러나 대사가 없으면서 존재감을 가지는 게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진짜로 존재해야만 그 존재감이 보인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거에 집중했던 것 같다"고 밝혔다.
관객들이 '의외'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김슬기는 '고속도로 가족' 속 지숙이라는 인물이 자신과 더 닿아있다고 했다. 김슬기는 "저랑 닮은 건 편해서 좋고, 다른 사람을 연기할 때의 카타르시스도 있다. 재밌는 점은 제가 편한 연기가 대중들은 낯선 얼굴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런 부분이 재밌는 것 같다. 이번 연기 할 때도 저는 굉장히 재밌게 했던 것 같다. 친구들이 '네가 편했겠다''는 얘기를 해주더라. 알게 모르게 닮아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렇듯 초반 'SNL 코리아'의 크루로 주목받게 된 김슬기는 의외로 '혼란'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김슬기는 "희극 연기로 대중들에게 각인이 되면서 연기하는 순간이 아닌 곳에서도 그 캐릭터로서 연기를 하기를 원하셔서 저를 잃어버리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점점 지워지면서 '내가 누구지?' 하는 괴리감이 있었던 것 같다. 그건 데뷔 초였고, 어린 나이에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었다면 지금의 저로서도 집중하고, 제 직업인 배우이자 연예인인 김슬기로서도 이해하면서 같이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30대가 됐는데 저를 잘 보듬어가고 있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드라마부터 영화까지 다양한 작품에서 다양한 역할을 연기했지만, 여전히 그는 다소 코믹한 이미지로 각인돼있다. 김슬기는 "저를 희극 연기를 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근데 희극이든 정극이든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게 제 목표고, 그런 얼굴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제 얼굴이 익숙한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부분도 비워내고, 그 역할로서 채워내는 그런 방향성을 가지고 접근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나연 기자 ny0119@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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