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행은 돌고 돈다. 80년대 유행하던 장발머리와 나팔바지는 현 시대의 '디스코'와 만나 세련된 패션으로 재탄생됐고, 화려한 원색의 선글라스와 티셔츠는 레트로 아이템과 결합돼 미래 지향적인 사이버 패션을 보여주기도 한다. 게다가 이제는 화장을 하는 남자들을 보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요계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를 추억하고 소비하는 흐름은 올 초부터 강세를 보이고 있다. 예전 히트곡의 익숙한 멜로디는 샘플링으로 차용되거나 1950~80년대의 음악은 다시 '2011년판 복고'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하지만 최근 가요계는 조금은 다른 양상을 띤다. 단순히 옛 것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콕 집어 1990년대를 지목해 각 분야의 유행을 선도하고 있는 것. 일렉트로닉 음악의 열풍이 한바탕 쓸고 간 자리에 서정적이면서 편안한 멜로디, 그 때의 익숙한 분위기가 현 대중음악계를 90년대로 이끌고 있다.
지난해 자극적인 후크송 대신 완성도 높은 팝 댄스곡으로 데뷔를 알린 7인 남성그룹 인피니트의 도약이 눈부시다. 수많은 아이돌 열풍 속 인피니트를 이슈로 끌어올린 것은 다름 아닌 근래 보기 드문 군무 때문. 최근 공개된 미니 앨범 타이틀곡 '비포 더 던(Before the dawn)'에는 일명 '칼맞춤' 안무가 등장한다.
이는 90년대 신화, H.O.T 등 그룹들이 유행시킨 군무를 재연한 것이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대형을 이루며 동작을 맞추는 7명의 멤버들의 모습은 금세 화제가 됐고, 마치 90년대 아이돌 댄스그룹의 진화된 무대를 보여준다.
인피니트 소속사 측은 "최근 빠른 비트에 포인트 안무로 무장한 아이돌 틈 사이에서 90년대의 칼군무를 인피니트만의 차별점으로 내세웠다"라며 "노래와 무대가 어우러진 강한 전사의 이미지가 마치 예전 남자 아이돌의 모습을 연상시킬 것이다. 복고풍 무대에 팬들 역시 친근함을 느낄 것"이라고 전했다.
아이돌 열풍 속 꾸준히 1990년대의 흑인음악만을 고집하는 R&B 여성 보컬리스트 보니(본명 신보경)도 있다. 보니는 4년 넘게 솔로 데뷔를 준비해 온 실력파 여성 가수. 지난 2006년엔 그룹 015B의 7집 '럭키세븐' 수록곡 '잠시 길을 잃다' 보컬로 참여했으며, KBS 2TV '남자의 자격 합창단'을 통해 얼굴을 알렸다.
보니의 새 음반도 1990년대 R&B 음악에 초점을 맞춘 앨범이다. 전 세계적으로 R&B 음악의 황금기였던 90년대에 대한 동경과 관심을 담은 동시에, 보니의 성숙한 보컬이 슬로우잼 및 소울 등 복고풍 R&B 음악과 잘 어우러져 있다는 평이다. 새 앨범은 R&B계의 유명 작곡가 엠브리카(윤재경)가 프로듀싱을 맡았다.
앨범 전체적으로 미국 R&B의 전성기를 이끈 90년대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수록곡 '1990'과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너뿐이야' 등이 앨범 전체적으로 찰진 소울 발성에 친숙하면서도 애잔한 느낌으로 독특한 보니 만의 색깔을 다루고 있는 구성이다.
보컬그룹 브라운아이드소울도 복고에 푹 빠졌다. 브라운아이드소울은 음반 발매 형식도 예전의 그것을 따라 가요계 15년만에 LP를 출시했다. 팬들에게 90년대의 아련한 향수를 전하고 있는 것. 이들이 LP를 출시하게 된 배경은 더블 타이틀 곡 ‘비켜줄게’ ‘블로잉 마이 마인드’의 음악 콘셉트가 아날로그이기 때문이다.

소속사 산타뮤직 측은 20일 "현재 국내에 LP제작사가 없어 일본에서 제작을 해 왔다"라며 "이는 90년대 중반 공일오비 이후 15년만의 일"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번 LP는 멤버 나얼이 직접 디자인했으며, 3집 전곡을 LP에 담기 위해 총 2장으로 구성됐다. 복고 음악에 맞춰 앨범 발매 형식도 아날로그에 맞춘 것이다.
발라드의 전성기였던 90년대의 영광을 재현하겠다고 나선 윤종신의 활약도 눈에 띈다. 개그맨 뺨치는 입담으로 예능 늦둥이에 등극했고, '슈퍼스타K'에서 보여준 예리한 평가로 냉철한 심사위원으로도 통하는 그는 분명 90년대부터 이어온 발라드계의 대표 뮤지션이다. 그런 그가 꾸준한 신곡 발표로 복고 열풍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해 1월부터 신곡을 발표했고, '월간 윤종신'이란 프로젝트로 매달 새 노래도 공개했다. 음반에는 '넌 완성이었어' '후회왕' '그대 없이는 못살아' 등 윤종신을 떠올리게 하는 발라드와 더불어 신선한 느낌의 실험적인 사운드도 대거 담겨있다. '치과에서' '막걸리나' 등의 곡들은 어쿠스틱 사운드로 포크에 대한 향수를, '바래바래'를 통해 복고풍 디스코로 멋도 한껏 부렸다.
이외에도 복고 코드는 장르를 넘나들며 가요계에 침투하고 있다. 시크릿의 이번 컴백 콘셉트는 뮤지컬을 연상시키는 복고풍 무대. 타이틀곡 '샤이 보이'는 뮤지컬 같은 분위기의 스윙 댄스곡으로, 시크릿 멤버들의 귀여움을 강조한 형형색색의 스타일링으로 뮤지컬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대중음악평론가 성시권씨는 "이 같은 흐름은 기계음에 지친 대중들이 새로운 것을 찾고 싶어 하는 갈등에 예전의 편안하고 익숙한 음악을 그리워하는 향수가 결합한 것"이라며 "마치 옛스러운 느낌이 최신 트렌드와 맞물려 새로운 유행을 선도하는 분위기다. 가요계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90년대에 대한 그리움이 다양한 음악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최근 가요계의 복고 열풍은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멜로디와 아날로그 음색의 친숙함으로 음악 팬들에게 추억과 감성을 제공하고 있다. 부모님 세대들로 하여금 아련한 향수와 공감대를 형성하고, 젊은 세대들에게는 새로운 문화로 거듭나는 '복고'는 돌고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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