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숨이 턱까지 올라와 포기하고 싶다가도 마지막 안간힘을 쓴다. 제 아무리 턱걸이 하나 못하는 약골이라도 단 한 번의 기회는 있다. 아랫배에 온 힘을 쏟아 지렛대처럼 튕겨 오르자 드디어 턱걸이 하나는 성공! 3년간 축적한 에너지를 쏟은 동갑내기 힙합듀오 배치기가 높이 튀어 올랐다.
배치기(무웅, 탁)는 2005년 데뷔해 '반갑습니다' '마이동풍', '남자의 로망' 등 경쾌한 음악과 속사포 랩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음악만큼은 널리 알렸지만 공익 근무로 긴 공백기를 겪어야 했고, 어느덧 30대가 됐다. 음악에 대한 많은 생각이 들었단다. 그래서 새 음반에는 비장한 기운마저 감돈다.
물론 배치기 특유의 유쾌함은 잊지 않았다. 소위 말하는 친숙한 '뽕삘' 멜로디에 속사포 랩이 또박또박 붙으니 흥이 나는 것은 당연. 멤버들은 새 앨범을 통해 사회에 대한 두려움과 피해의식이 반영된 88만원 세대의 이야기, 자신들의 음악적인 변화를 고집스런 어투로 꾹꾹 눌러 담았다.
"그동안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이전에 '힙합에 대한 자존심 혹은 우린 너희들과 다른 음악을 한다'란 생각이 있었다면 이번엔 여러 변화를 겪으면서 시도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고 저희 스스로 틀을 깨려고 했어요. 마음을 열고 저희만의 음악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말이죠."(무웅)
데뷔 8년 만에 앨범 발매 방식도 바꿨다. 그간 정규 앨범을 고집했던 배치기는 타이틀곡 빼곤 쉽게 잊혀 질 수 있는 가요계의 빠른 주기 탓에 미니앨범을 택했다. 정규 앨범이 갖는 나름의 스토리 라인을 유지하면서도 작업 곡들을 담은 새 앨범을 자주 발매하기 위해서다.

"3년간의 공백 동안 시장이 더 빠르게 변했죠. 타이틀 빼곤 잊혀지는 수록곡들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줄곧 갖고 있었어요. 다이나믹듀오, 리쌍 등 선배들의 활약도 큰 힘을 얻었죠. 미니앨범 혹은 싱글을 자주 발매하면서 확실히 배치기의 존재감을 알리고 싶어요."(탁)
배치기는 친근하면서도 즐거움을 주는 사운드를 담았다. 유쾌한 새 출발을 알리는 첫 곡 '역시 배치기'는 배치기가 선보이는 일종의 '이력서'와 같은 성격의 곡. 기타와 베이스, 드럼 등 밴드 사운드가 흥을 주고 '당신 생활의 B.G.M은 배치기'라며 애교 넘치는 기교도 친숙함을 준다.
자신들의 음악적인 변화를 '제 눈에 낀 콩깍지'로 표현한 '콩깍지'로 공백기에 대한 부담감 속 고집스런 음악관을 털어놓았고, '아는 남자'에선 여자에게 버림받은 남자의 심경을 토로했다. 또 타이틀곡 '두 마리'에서는 '스펙'이 중시되는 사회에서 청춘에 전하는 힘찬 응원의 메시지를 담았다.
앨범 전체적으로 배치기 특유의 경쾌함이 넘쳐나지만 톡 쏘는 메시지에는 '공감'이란 키워드가 있다. 탁의 속사포 랩에 무웅의 후렴구가 붙자 풍자적이면서 재치넘치는 노랫말은 더욱 빛이 났다. 여기에 한번 들어도 귀에 박히는 대중적인 '뽕끼'도 배치기 음악의 핵이다.
"저희는 한국적인 '뽕끼'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혹자들은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는 90년대의 전유물이라고들 하지만 한국 사람이 아니면 공감할 수 없는 요소이기도 해요. 한국 사람이기에 느낄 수 있는 '뽕끼'를 삽입한 반면 메시지는 풍자적이죠. 그게 배치기 음악이라고나 할까요?"(무웅)

지난해 배치기는 데뷔 때부터 함께 한 MC스나이퍼와 결별하고 독자적인 행보를 준비해 왔다. 휘성, 에일리, 마이티마우스, 신보라 등이 소속된 YMC 엔터테인먼에 새 둥지를 튼 배치기는 "새로운 환경이라 낯선 감이 없진 않지만, 더욱 넓어진 음악적 스펙트럼을 몸소 느낀다"고 말했다.
배치기는 10년 가까이 동고동락한 MC스나이퍼의 곁을 떠나며 불거진 불화설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탁은 "그동안 MC스나이퍼의 곁에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꼈다. 하지만 저희 둘이서 보다 다양한 음악색을 내고 한발짝 더 나아갈 수 있는 도약기로 삼고 싶었다"고 이적 이유를 전했다.
무웅은 스나이퍼사운드의 배치기에서 벗어나 보다 큰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고 했다. "스나이퍼사운드에 10년 정도 머물면서 저희들끼리 틀이 생기는 것 같았어요. 배치기가 할 수 있는 그 이상의 그림을 그려보고 싶어요. 물론 스나이퍼 형도 적극 응원을 보내줬죠."
새 출발을 알린 배치기는 이번 활동을 재개하며 스스로를 되돌아 봤다. 꼭 사랑과 이별 얘기가 아니더라도 기존 대중가요에서 다루지 않은 주제로 이야기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과거와 미래가 있다면 현재에 대해 냉철하게 얘기할 수 있는, 그래서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통해 말이다.
"대중이 편하게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누구도 쉽게 다룰 수 없는 주제를 누구보다 쉽게 전달할 수 있는 점이 배치기 음악의 특징이죠." 긴 기다림 끝에 다시 선 무대. 배치기는 턱걸이 여러 번에 힘이 빠지더라도 마지막 한 방이 있다. 배치기 한 번으로 다시 오뚝이처럼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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