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대병원 장례식장=한해선 스타뉴스 기자] "70주년 콘서트는 하늘나라 천국에서 송해 선배의 사회를 보며 열릴 거라 믿어요."
원로가수 고(故) 현미(본명 김명선)가 모두의 슬픔 속에 영면에 들었다.
11일 오전 9시 서울 동작구 흑석동 중앙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현미의 영결식과 발인식이 엄수됐다.
영결식은 고인의 종교에 따라 기독교식으로 진행됐다. 영결식 사회는 코미디언 이용식이 맡으며, 대한가수협회장 이자연이 조사를, 가수 박상민과 알리가 추도사를 했다. 이자연과 감사 서수남이 공동 장례위원장으로 나섰다. 추도사 이후 조가와 분향, 헌화가 진행됐다.
이날 가요계의 큰 별 현미가 떠나는 길을 배웅하기 위해 수많은 지인들과 연예인들이 장례식장을 찾아왔다. 빈소에는 가수 노사연, 노사봉, 남일해, 김수찬, 양지원, 문희옥, 알리, 배우 한지일, 코미디언 엄영수 등 후배들도 자리했으며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가수 나훈아, 남진, 이미자, 정수라, 설운도, 조영남, 이은미, 송가인, 이찬원, 장민호, 박구윤, 김태연, 타이거 JK, 알리, 배우 독고영재, 허준호, KBS '가요무대', JYP엔터테인먼트 등 동료 가수 및 연예계 선후배들이 보낸 근조화환이 가득했다.



사회를 맡은 이용식은 "많은 국민이 슬픔 속 현미 누님과 작별을 한다. 평소 사랑해주고 아껴주신 일가친척 동료들 모인자리에서 슬픔 속 영결식을 진행하게 됐다"라며 영결식을 시작했다. 이용식은 "70주년 콘서트는 하늘나라 천국에서 송해 선배의 사회를 보며 열릴 거라 믿는다"라고 말했다.
조사를 맡은 이자연은 "사랑하고 존경하는 선배님 수십년간 노래처럼 떠낼 땐 말 없이처럼 떠나가. 호탕한 웃음 못본다는 것 믿어지지 않아. 계신곳마다 웃음꽃. 파워풀한 가창력과 열정으로 세월지나도 현역지켜내"라고 조사를 시작했다.
이어 "무대 며칠 앞두고 황망하게 가. 늘 백세까지 노래 70주년 콘서트 하고 싶다고 하셨다. 파란만장 삶 영화도 만들고 싶다하셨다. 저희에게 항상 용기를 주시고 응원해주시며, 협회가 있어 따듯한 차 한 잔 할 수 있는 곳 있어 행복하다고 해주셔서 감사했다"고 전했다. 또한 "다시 만날 수 없는 먼 여행길 떠나셨지만 호탕한 웃음 가슴 깊이 간직하며 영원히 잊지 않겠다. 수많은 별들 중 가장 아름다운 별이 되어 영원히 빛나길 못다한 꿈 이루시길. 선배님 사랑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덧붙였다. 현미는 오는 13일 가수협회가 주관하는 무대에 선다고 약속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해 모두를 슬프게 했다.





추도사를 맡은 박상민은 "몇 년 전 미국 공연 때 선배님이 아무 조건 없이 게스트를 해주셨는데 인정이 많으셨다. 슬픈 소식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최근까지도 열정적으로 활동 하셨기에 더 그랬다.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예술성과 주옥 같은 히트곡을 가지신 분. 감히 따라 할 수없는 대스타셨다. 큰 가수셨다. 크고 넓은 마음으로 후배 보듬어 따뜻하고 멋진 분이셨다. 항상 유쾌하고 씩씩하셨지만 외로움도 있으셨을 것 같다. 부디 좋은 추억만 가지고 가셔서 영면하시길"이라고 말했다.
함께 추도사를 맡은 알리는 "안개처럼 떠나버린 선배님 처음 비보를 접하고 믿을 수 없었다. 지금도 눈에 선하다. '불후의 명곡' 이봉조 편에서 선배님을 만났는데 제 노래를 듣고 눈물짓던 모습이 기억난다. 힘찬 목소리가 나를 닮았다며 건강관리 잘하라고 하셨다. 그동안 업적도 많이 남기셨고 열정도 대단하셨다. 선배님 열정을 닮고 싶다. 후배로서 부족한 점이 많지만 빈지리를 조금이라도 메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전했다.



이자연, 박상민, 알리, 문희옥, 서수남 등 영결식 진행 대표자들이 고인의 대표곡 중 하나인 '떠날 때는 말없이'를 조가로 불렸다. 알리는 "선배님이 노래 가사처럼 말 없이 가셨다. 그리움은 남는 사람의 몫이라 한다. 추억하고 그리워 할테니 좋아하는 노래 마음껏 부르며 행복하시기 바란다. 존경하고 사랑합니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이용식은 "노래가사 어찌 이리 슬픈지 모르겠다. 오늘도 낮에 비가 온다고 한다. 안타까운 마음 속 분향을 진행하겠다"고 슬픈 심경을 전했다.
유가족과 지인들을 비롯해 생전 고인과 인연을 맺은 선후배 동료들이 영정 앞에 헌화를 하며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현미의 큰 아들 이영곤은 "엄마 미안해 잘가. 잘가야 돼 엄마"라고 마지막 인사말을 하며 오열했다. 현미의 조카 배우 한상진도 눈물을 흘렸고, 고인과 친했던 노사연도 눈물을 쏟았다. 서수남도 "누님 오늘은 말이 왜 없으세요. 사랑해요"라며 오열했고, 이자연 역시 고인의 영정사진을 매만지며 소리내어 울었다.
영결식이 끝난 후 운구가 진행되자 하늘도 현미의 죽음을 슬퍼하는 듯 흐린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며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그리고 운구차가 이동하자 거짓말처럼 비가 그치기도. 박상민, 김수찬, 양지원 등이 운구에 나섰고, 운구차는 서울추모공원으로 향했다. 고인의 유해는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을 거친 후 두 아들이 거주하고 있는 미국에 안장된다.


고 현미는 지난 4일 오전 9시37분께 서울 용산구 이촌동 자택에 쓰러진 상태로 팬클럽 회장 김모씨에게 발견됐다. 이후 김씨의 신고로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다. 향년 85세.
1938년 평양에서 태어난 현미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남한으로 피난했던 가수다. 고인은 1957년 미8군 무대를 통해 가수 활동을 시작, 1962년 '밤안개'로 연예계에 데뷔해 큰 인기를 누렸다. 고인은 중저음과 흔치 않은 재즈풍 보컬로 '보고 싶은 얼굴', '떠날 때는 말 없이', '몽땅 내 사랑', '무작정 좋았어요' 등 히트곡을 연이어 발표했다.
현미는 2007년 데뷔 50주년 앨범을 발매하며 전설적인 디바임을 증명했고, 기념 기자회견에서 "은퇴는 목소리가 안 나올 때까지 할 것"이라며 "멋지고 떳떳하게 사라지는 게 참 모습이다"고 말했다. 그는 특유의 당찬 매력과 노년에도 정정한 모습을 보여주다가 급작스런 노환 증세로 운명을 달리해 모두를 안타깝게 했다.
현미는 작곡가 고(故) 이봉조와 결혼해 슬하에 이영곤, 이영준을 뒀다.
한해선 기자 hhs422@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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