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0만원! 300만원 나왔습니다."
경기가 끝난 뒤에도 1루 관중석에는 여전히 자리를 뜨지 않은 SK 팬들이 있었다. SK 선수들이 기부한 애장품을 경매로 사기 위해 남아있는 팬들이었다. 그리고 이날 모은 소중한 돈은 희귀질환을 앓고 있지만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환우들에게 전달됐다.
KBO리그는 1982년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이라는 슬로건을 앞세워 출범했다. 이후 38년의 세월 동안 때로는 각종 사건과 사고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들도 많았지만, 선수들의 정정당당한 플레이와 팬들의 사랑에 보답하려는 노력은 여전히 리그가 지향해야 할 불변의 가치이다.
이러한 프로야구의 존재 이유를 되새기게 한 행사가 지난 6월23일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렸다. 2016년부터 매년 SK 구단에서 실시하고 있는 '희망더하기 캠페인'의 일환으로 SK 코칭스태프와 선수들, 그리고 팬들이 함께 호흡하는 뜻깊은 자리가 마련됐다.
감동의 시구 "박종훈 오빠 따라 했어요"
올해 행사의 슬로건은 'Show Your Hope(당신의 희망을 보여주세요)!'였다.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예지(16), 서진(17), 현아(10) 양을 돕기 위해 SK 와이번스가 나선 것이다.
SK 선수들은 이날 환아들의 이름을 유니폼에 새기고 경기에 출전했다. 또 감독과 코치, 선수들, 응원단, 프런트 및 팬들까지 환아를 응원하는 메시지가 담긴 패치를 눈 밑에 부착하며 뜻깊은 행사에 동참했다. 시구는 예지 양이, 시타는 서진 양이 각각 맡았다. 부모를 비롯한 가족들은 그라운드에 서서 이들의 씩씩한 모습을 지켜봤다.
시구를 마친 예지 양은 "(박)종훈 오빠의 폼이 특이해 한 달간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따라 했다. 더 잘 던질 수 있었는데 아쉽다"면서 "야구장에 나오니 정말 기분이 좋다. 에너지도 많이 받아 병원에 다시 가도 힘을 내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SK 투수 박종훈(28)은 "이날부터 남은 시즌까지 1이닝당 10만원씩 적립해 예지를 돕고 싶다. 올 시즌 목표는 170이닝 이상 투구하는 것"이라면서 "남은 시즌 동안 예지를 생각해 1이닝이라도 더 던져 팀과 예지 모두에게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각오를 다졌다.
만성 가성 장 폐쇄 증후군을 앓고 있는 예지 양은 장기가 없어 음식물 섭취가 불가해 14년 동안 주사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서진 양은 선천성 녹내장, 편층성 얼굴 반점, 정신지체, 간질이 있는 스터지-베버 증후군을 앓고 있다. 현아 양은 이영양성 수포성 표피 박리증열성을 앓고 있어 매일 전신 소독을 해야 하고, 손발이 융합돼 2~3년마다 수술이 필요하다고 한다. 예지 양의 꿈은 사회복지사, 현아 양은 미술치료사다. 서진 양의 꿈은 홀로서기를 하는 것이다.

환아 가족들에 총 5200여 만원 지원
SK는 이들을 위해 올 시즌 홈 경기 입장 수입 일부(티켓 1장당 100원씩 총 2000만원)를 기부금으로 적립했다. 경기 전과 후에는 희망 나눔 바자회가 열렸다. 선수단 애장품 경매로 1347만원이, SK 스포츠단 및 기업 협찬 물품 판매로 750만원의 성금이 각각 모였다.
경기 후 경매를 통해 최정의 실착(실제 착용) 유니폼은 300만원, 김태훈의 글러브는 200만원에 각각 팔렸다. 또 박정권의 사인 배트는 170만원, 박민호와 정영일의 글러브는 각 130만원, 노수광의 사인 배트는 95만원, 강지광의 글러브는 75만원, 한동민의 사인 배트는 40만원, 서진용의 실착 유니폼은 27만원, 염경엽 감독이 기부한 선글라스는 20만원, 손혁 코치의 아내인 한희원 골퍼의 사인이 있는 골프 드라이버는 20만원, 그리고 로맥의 이너웨어(20만원), 보호대(30만원), 스타킹(25만원)도 모두 팔렸다.
네이버 해피빈 기부를 통해서도 990만원이, 구장 내 희망모금함 설치로 31만7760원의 수익금이 모였다. 지난달 18일 해피빈 기부 페이지가 열렸는데 일주일 만에 목표 금액인 990만원을 달성했다. 박종훈과 예지의 사연이 알려진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팬들이 자발적으로 모금을 독려했다.
또 스마일 터치 릴레이(팬 게시글 1개당 1000원씩 구단이 기부)로 110만원이 모였는데, 이는 오는 16일까지 계속해서 진행할 예정(5000개 목표)이다. SK는 이날 행사를 통해 모금한 총 5234만2260원을 세 가정에 나눠 지원했다.
염경엽(51) SK 감독은 "나도 자식을 둔 아버지로서 가슴이 뭉클했다. 이번 기회를 통해 나부터 관심을 갖고 환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다. 내가 야구를 통해 받은 사랑을 팬들에게 어떻게 보답할지 생각이 필요할 것 같다. 이날 행사를 보면서 선수들도 아마 나와 같은 생각을 가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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