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년 전, 메이저리그 역사에 길이 남을 트레이드가 탄생했다. '통산 246승'을 기록한 에이스를 내주고 1년 차 신인 투수를 데려온 1대1 트레이드였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com은 20일(한국시간) "메이저리그 단장에게 최악의 악몽은 후회에서 비롯된다. 어느 누구도 다른 곳에서 아이콘이 된 선수를 트레이드한 단장으로 기억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서 명예의 전당 입성자 8명의 일화를 소개했다.
그 중 가장 오래된 것은 뉴욕 자이언츠(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신시내티 레즈의 1대1 트레이드였다. 1900년 12월 16일 샌프란시스코는 만 28세의 아모스 루시를 신시내티에 내주고, 만 20세의 크리스티 매튜슨을 데려왔다.
루시는 당시 460경기 246승 173패 평균자책점 3.04를 기록한 뉴욕 자이언츠의 에이스였다. 이후 1977년 베테랑 위원회를 통해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기도 했다. 반면 매튜슨은 6경기 승리 없이 3패 평균자책점 5.08을 기록한 흔한 1년 차 투수였다. 122년 전 루시의 만 28세는 선수로서 황혼의 나이였기에 얼핏 본다면 유망주 매튜슨을 얻기 위한 평범한 트레이드로 보인다.
하지만 두 사람과 두 구단에 얽힌 사연이 꽤 재밌다. 일단 매튜슨은 1900년 데뷔해 1916년 은퇴할 때까지 메이저리그에서 뉴욕 자이언츠에서만 뛰었다. 뉴욕 자이언츠는 1900년 7월 지방 리그 구단이었던 노포크로부터 매튜슨을 1000달러에 데려왔다. 즉, 앞서 나열한 6경기 평균자책점 5.08의 기록은 뉴욕 자이언츠에서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매튜슨의 성적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뉴욕 자이언츠는 2개월 만인 9월에 계약을 파기했다. 그런 매튜슨을 신시내티가 9월 말 100달러에 데려왔다. 12월까지 경기는 뛰지 않았지만, 매튜슨은 신시내티 소속이었다.
MLB.com은 "미국야구연구협회(SABR)에 따르면 뉴욕 자이언츠는 매튜슨을 데려오기 위해 마이너리그 팀(노포크)에 1000달러를 지불했고, 신시내티는 그를 데려오는데 100달러만 지불했다"면서 "이 모든 계략은 900달러를 절약하고 루시를 내보내는 데 있었다"고 설명했다.

뉴욕 자이언츠가 246승의 대투수를 고작 6경기 3패의 무명 투수를 대가로 내준 이유도 흥미롭다. 지난달 매튜슨 트레이드를 다룬 명예의 전당 홈페이지에 따르면 당시 뉴욕 자이언츠 구단주였던 앤드류 프리드먼은 루시의 팔이 망가진 것을 알고 있었다.
신시내티도 꿍꿍이가 있었다. 신시내티 구단주였던 존 브러시는 프리드먼으로부터 뉴욕 자이언츠를 매입할 생각이었다. 자신이 매입할 팀에 될성부른 유망주를 헐값에 보낸 것이다. 브러시는 이로부터 2년 뒤인 1902년에 뉴욕 자이언츠 구단을 손에 넣는다.
결국 팬들의 거센 반발에도 진행된 이 트레이드는 뉴욕 자이언츠의 완승이었다. 루시가 신시내티로 가 3경기만 뛰고 은퇴한 것과 달리 매튜슨은 뉴욕 자이언츠에서만 372승 188패 평균자책점 2.12를 기록한 전설적인 투수가 됐다. 투수 삼관왕도 두 차례 차지했고, 뉴욕 자이언츠의 첫 월드시리즈 우승(1905년)을 이끌었다. 팬들에게도 '신사', '빅 식스(Big Six)'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매튜슨은 1916년 신시내티에서 한 시즌을 뛴 후 은퇴했고 1918년에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참전 중 화학 가스에 노출돼 결핵에 걸렸고 결국 1925년 만 45세의 나이로 일찍 생을 마감했다.
1936년 출범한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은 베이브 루스, 타이 콥, 월터 존슨, 호너스 와그너와 함께 매튜슨을 헌액했다. 처음 입성한 이들을 명예의 전당 최초의 5인이라 부르며, 헌액 당시 매튜슨은 5인 중 유일한 고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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