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흥민(LAFC)과 이강인(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을 비롯한 태극전사들은 더는 경기 외적인 상처와 논란으로 흔들릴 걱정 없이 온전히 피치 위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다. 팀 내부의 대화와 갈등을 외부에 가감 없이 노출하며 선수단에 불필요한 아픔을 남겼던 전임 사령탑 시절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로베르트 모레노(스페인) 감독의 확고한 원칙과 세심한 선수 보호가 첫 경기부터 고스란히 묻어났다.
한국 축구대표팀은 24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에콰도르와의 친선경기에서 3-0 완승을 거뒀다.
데뷔전 대승이라는 결과 못지않게 눈길을 끈 것은 경기 후 공식 기자회견에서 나타난 모레노 감독의 철저한 내부 보호주의와 세심한 배려였다.
이날 경기 도중 교체 아웃된 주장 손흥민과 벤치 부근에서 어떤 이야기를 나눴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모레노 감독은 "이전에도 말했듯 원칙을 유지하겠다. 선수들과 나눈 대화는 비공개다. 팀을 운용하는 원칙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목"이라며 축구는 팀 스포츠인 만큼 특정 선수를 개별적으로 평가하는 것조차 극도로 말을 아꼈다.

에이스 이강인을 비롯한 주축들의 명단 제외 배경을 설명하는 과정에서도 선수를 향한 깊은 배려가 돋보였다. 모레노 감독은 "의료진의 권고에 따른 예방 차원이었다. 약간의 불편함과 근육 과부하를 느꼈고 의료진이 무리한 출전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며 "선수단의 건강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조금의 위험도 감수하지 않았다"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사령탑이 선수 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자, 그라운드 위 선수들의 믿음과 화답도 발 빠르게 이어지고 있다. 부임 후 준비 기간이 턱없이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대표팀의 베테랑부터 신예들까지 새 감독의 방향성에 깊은 신뢰를 보내고 있다.
주장 손흥민은 믹스드존에서 "전반에는 새 감독님의 지시를 그라운드에서 처음 실행하다 보니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면서도 "후반 들어 우리가 원하는 플레이가 편안하게 나왔고, 적절한 타이밍마다 골이 터지며 수월하게 풀렸다"고 강한 믿음을 보였다.
중원을 책임진 베테랑 이재성(마인츠) 역시 사령탑의 명확한 디테일과 세심한 관리에 찬사를 보냈다. 이재성은 "감독님이 확실한 철학을 갖고 계시고, 선수들에게 그 내용을 잘 전달해 주고 계신다"며 "감독님 사단에 많은 분석관이 있어 소속팀과 대표팀 활약 영상을 기반으로 개인 미팅을 진행했다. 계속 살려야 할 장면과 보완할 점을 일대일로 짚어주셔서 선수 입장에서 발전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감탄했다.

특히 "선수마다 개인 영상 미팅과 포지션별 그룹 미팅 스케줄을 세밀하게 정리해 배부해 준 것은 처음 겪어보는 철저한 방식이었다"고 귀띔했다.
결승골을 터뜨린 오현규(베식타시)도 "감독님께서 나를 믿어주셔서 내가 잘하는 플레이를 자유롭게 펼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셨다"고 전했다.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역시 "공간이 생기면 치고 올라가라 하셨고, 첫 번째 빌드업 옵션으로 전진 패스를 강하게 주문하셨다"며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반겼다.
선수를 전면에 내세워 방패막이로 삼거나 내부 사정을 바깥으로 흘리는 대신, 안으로는 철저한 데이터와 세심한 배려로 감싸고 밖으로는 건강한 신뢰를 형성하겠다는 모레노 감독의 확고한 리더십이 첫 경기부터 확인됐다. 이제 첫발을 뗀 모레노호의 잔여 경기가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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