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수 생활을 더 이상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선수 생명을 통째로 건 한 유망주의 처절한 폭로가 끝내 지도부의 안일한 실책과 무책임한 은폐 시도를 무너뜨렸다. 국가대표 선수가 울면서 머리카락을 자르고 먹은 것을 게워내야 했던 행정 참사의 끝은 결국 대표팀 사령탑의 불명예 퇴진이었다.
대한유도회는 22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회관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및 세계선수권대회 평가회 직후 정성숙 여자대표팀 감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지난 13일 귀국 현장에서 사의를 표명했던 정 감독은 공식 평가회를 끝으로 지휘봉을 완전히 내려놓았다.
이번 사퇴는 지난 4일 유도 국가대표 정수진(용인대)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터뜨린 폭로가 결정적이었다. 2024년과 2025년 주니어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2년 연속 동메달을 따내며 생애 첫 성인 아시안게임 메달을 정조준했던 정수진은 대회 여자 48㎏급 경기를 단 1초도 뛰지 못한 채 짐을 쌌다.
당초 협회 안팎에서는 정수진이 개인 부주의로 체중 조절에 실패해 실격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망신 계체 탈락이라는 거센 비난과 조롱이 쏟아지자, 정수진은 자신의 선수 생명을 걸고 침묵을 깼다.
정수진의 폭로에 따르면 그는 공식 계체를 정상 통과했고, 경기 당일 아침 무작위 추첨 계체 기준인 50.4㎏까지 음식 조절을 하며 체중을 맞춰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추첨 직후 코칭스태프는 "남자 선수 1명만 걸렸고 너는 계체 대상이 아니다. 감량을 많이 했으니 얼른 밥을 먹고 회복하라"고 전달했다. 정수진이 재차 확인을 요청했음에도 지도자들은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코칭스태프의 지시를 믿고 첫 경기 회복을 위해 죽과 바나나, 이온음료 등을 섭취하며 몸을 풀던 정수진에게 계체 종료 15분을 남기고 청천벽력 같은 사실이 전해졌다. 뒤늦게 자신이 계체 대상자임을 전달받은 정수진은 섭취한 음식을 억지로 토해내고 스스로 머리카락까지 잘라내며 필사적으로 감량을 시도했다. 하지만 마감 시한이 지났고 결국 단 100g 초과로 허망하게 실격당했다.

정수진은 "마지막 15분 동안 울면서 토하고 잘려 나간 머리카락과 무릎을 꿇고 3분만 시간을 달라며 빌었던 내 모습이 한없이 비참하게 느껴졌다"고 절규했다.
선수를 향한 입단속 정황도 드러났다. 정수진은 지도자들이 "한국에 돌아가면 책임지겠다", "이대로 마무리가 되어야 조용히 끝낼 수 있다"고 말했다며, 협회가 사실을 바로 알리지 않아 개인 부주의로 탈락했다는 비난과 억측에 시달렸다고 토로했다.
심지어 "선수 생활을 더 못 할 수도 있다는 걸 알지만, 국가망신 낙인이 찍힌 채 운동을 이어가는 것보다 억울한 사실을 밝히고자 글을 썼다"고 덧붙였다.
선수 생명을 내던진 용기 있는 목소리에 여론은 들끓었다. 유도회는 사태 직후 공식 사과문을 내고 "심각성을 무겁게 인식하고 있다. 귀국 즉시 철저한 조사를 통해 규정과 원칙에 근거해 조치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후 정 감독의 관리 부실 논란은 곧바로 이어진 세계선수권대회 출국길에서도 반복됐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 국제공항에서 환승 비행기를 놓쳐 대표팀이 9시간 동안 공항에 발이 묶이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결국 귀국길에 고개를 숙였던 정 감독은 22일 열린 평가회에서 사직서를 제출하며 불명예스럽게 퇴장했다. 체육계의 폐쇄적인 위계질서 속에서 자칫 영구히 묻힐 뻔했던 지도부의 황당한 실책과 책임 전가 행태는 온갖 불이익을 각오하고 진실을 밝힌 한 선수의 용기 앞에서 그 민낯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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