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일 인기리에 종영한 KBS 2TV 수목드라마 '조선총잡이'. 이 드라마는 이준기, 남상미, 유오성 등 주연배우들의 빼어난 연기력에 탄탄한 스토리가 어우러져 오랜만에 안방극장 시청자들을 흡족하게 했다.
이 '완벽한' 드라마에 사~알 짝 '빈틈' 같은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박윤강(이준기 분)의 친구이자 좌포청 포교로 등장한 한정훈이다. 툭툭 던지는 대사에 능글맞은 연기가 그 내공이 만만치 않음을 짐작케 하지만, 그리 낯익지 않은 얼굴은 시청자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혜성처럼' 등장한 한정훈, 과연 누굴까.
한정훈을 연기한 주인공은 배우 이동휘다. 1985년생으로 올해 나이 만 29세다. 지난 2012년 영화 '남쪽으로 튀어'에서 장위동 치킨집 사장 역을 맡아 데뷔했으며, 드라마는 이번 '조선총잡이'가 처음이다.
이쯤 되면 '연극무대에서 연기력을 쌓았거니' 지레짐작도 들지만 뚜렷한 연극무대 경력도 없다. 대체 이동휘는 누굴까.
인터뷰를 위해 마주한 그의 눈빛을 불안했다. 인터뷰 초반 기자의 눈을 쳐다보지 않고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며 답변을 이어갔다. 참, 독특하다.

◆27세 '늦깎이' 데뷔.."무작정 연기자라고 나오기는 싫었다."
첫 질문은 "그간 뭘 했기에 데뷔가 그리 늦었냐"는 것이었다. "대학(서울예대)에서 연극을 전공했어요. 뭐, 제 생각에는 언제 등장하느냐가 중요하다기보다는 어떻게 나오느냐가 중요했어요. 결혼하고 아이 낳고도 연기를 끝까지 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어떻게 하면 더 관객들에게 고급스럽게 나올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무작정 나왔을 때는 자신감도 없을 거고요. 제 스스로 제 연기를 보여드리는 데 양심의 가책이 없을 때 나오고 싶었어요." 결국은 준비될 때가지 기다렸다는 얘기다.
"연기를 전공했지만 매니지먼트는 찾아가지도 않았어요. 제가 대표 입장이라도 저한테 투자할 생각은 없었을 거예요. 무조건 '시켜만 주시면 다 하겠습니다'는 너무 폭력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준비도 많이 하고 공연도 많이 하고 공연, 전시회, 사진전에 닥치는 대로 다니면서 공부했습니다. 이런 경험들을 집대성해서 나올 때를 노리고 있었죠."
연기 전공자들이 학교에 다니면서 꾸준히 작품 출연을 위한 문을 두드리는 것이 일반적인데, 어찌됐든 고민이 깊은 연기자다. "학교 다닐 때 어땠을지 궁금하다"고 하니 "연기 수업을 받기는 받았는데 '틀에 박힌 정답' 같은 연기의 답습이 싫었다"며 "그래봤자 결국에는 오디션에 갔을 때 똑같이 학교에서 배운 걸 보여주지 않나. 그걸 다 버리고 나만이 연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칭찬했던 김윤석 선배, 보더니 하는 말 '닭 튀기던 애!'"
데뷔 준비하면서는 아버지의 눈을 피하는 게 제일 힘들었다고 했다.
"군 제대하고는 집에서는 하루에 영화를 3~4편 봤어요. 아버지 퇴근하시면 눈치 보이니까 집에서 나가서 또 영화를 봤죠. 그게 다 저한테는 선생님 같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 때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그렇게 스스로 연기 만족 지수를 체크하던 이동휘는 어느 순간 "이제 때가 됐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어느 순간 감독님들이나 관객들에게 제 스스로 부족한 게 없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때 혼자 돌아다니며 200개 이상 프로필을 돌렸어요. 그러고 나서 15개 정도 오디션을 볼 기회를 얻었죠. 데뷔작인 '남쪽으로 튀어라'도 그때 기회를 얻었고요. 그때 나이에 그 수준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해요. 그만큼 노력했기에 부끄러움은 없어요."
하지만, 그는 이 '기회'를 얻지 못할 수도 있었다.
"제가 준비한 걸 감독님(임순례)에게 보여드리기 직전에 그 장면이 삭제됐어요. 정말 아쉬웠죠. 그래도 어떡해요. 속상했지만 아마추어면서도 나름 프로인척하려고 '그럼요, 괜찮아요' 이러면서 '쿨'하게 가방을 쌌어요. 그런데 김윤석 선배님이 배우들에게 일일이 준비했던 걸 시키는 거예요. 그래서 했죠. '장위동에서 치킨집 운영하는 사람입니다'가 대사였어요. 그걸 듣고 김윤석 선배님이 감독님에게 딱 한마디 했어요. "좋은데요"라고요. 자신감을 얻었죠. 집에 가면서 정말 행복했어요. 그게 지금까지 버티고, 앞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해요."
이동휘는 "그 이후로 김윤석 선배님은 전혀 뵙지 못했다"며 "선배님을 다시 보면 더 떳떳한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각오를 다지면서 연기 해왔다"고 했다.
"이후에 '감시자들'에서 단역을 하고, '집으로 가는 길', '타짜-신의 손'에 출연했죠. '타짜-신의 손'하면서 김윤석 선배님을 다시 뵙게 됐어요. 저는 '낭중지추(囊中之錐, 능력과 재주가 뛰어난 사람은 스스로 두각을 나타낸다는 뜻)'란 말을 좋아하는데요. 제 스스로 보석이 되면 어느 곳에서도 저를 찾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어요." 자신감이 대단한 그다.
이 영화로 이동휘는 김윤석과 재회하게 된다. '타짜-신의 손' 오디션이 끝난 뒤 다른 영화 출연을 위해 프로필을 돌리던 그에게 심엔터테인먼트(대표 심정운)에서 연락이 온 것. 이 회사는 김윤석이 소속돼 있다. "나중에 김윤석 선배님을 뵙게 됐는데 한마디 하시더라고요. '아, 너 닭 튀기던 애!'"

◆"유쾌한 한정훈, 시청자들에게 친구처럼 느끼게 하고 싶었다."
이제는 그의 첫 드라마 데뷔작인 '조선총잡이'에 대해 들어보자.
"사극이었고 좋아하는 선배들이 나온다고 해서 2차 오디션까지 봐서 출연하게 됐어요. 사극을 참 해보고 싶었고, 드라마에도 도전해보고 싶었는데 '조선총잡이'는 사극 드라마잖아요. 정말 놓치고 싶지 않은 작품이었어요."
"출연하고 보니 어떤가"라고 묻자 "너무나 즉각적인 관심이 와서 놀랐다. 저와 관계돼 있는 혈연관계에 있는 분들이 이렇게 직접적인 반응을 나타내질 몰랐다"고 혀를 내둘렀다. "마산에 있는 큰 아버지도 연락하실 정도였어요. KBS라는 방송국의 힘을 느꼈죠. 정말 감사드립니다. '조선총잡이'에 관계돼 있는 모든 감독님들, CP님들 감사합니다."
"마산 큰 아버지는 뭐라고 했느냐"고 했더니 "이걸 밝혀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딱 이렇게 문자메시지를 보내셨다. '너무 너무 뿌듯하고 대견하고 자랑스럽고 네가 이런 큰일을 해낼지는 몰랐다. 하지만 KBS 수신료 문제로 나는 방송을 보지 않겠다'고요. 조카가 나오는 데 좀 봐주시지."
오랜 시간 곁에서 아들을 지켜본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 "부모님도 정말 좋아하세요. 지금 거의 효도 관광을 매일 보내드리고 있는 느낌이에요. 너무 행복해하세요."
인터뷰 초반 그를 '조선총잡이'의 '틈'이라고 표현한 건 그가 이 '조선 제일의 칼잡이가 민중의 영웅 총잡이가 되는' 의미심장한 드라마에서 톡톡 튀는 캐릭터였기 때문. 그가 연기한 한정훈은 '포교 인 듯 포교 아닌 포교 같은' 캐릭터였다. 극중 한정운은 친구 윤강을 위해 갖은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삶의 유쾌함은 잃지 않았다. 때론 귀엽기도.
"한정훈은 이 드라마에서 재미와 윤활유 역할을 하는 존재였어요. 귀여운 면을 살리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한정훈의 유쾌함, 삶을 대하는 방식이 저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연기가 어렵지는 않았어요. 정훈은 목숨을 굉장히 소중히 여기고 업무시간에 딴 짓 하고 산만하잖아요. 생긴 거와 다르게 의리는 중하게 여기고요. 시청자들로 하여금 얄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친구처럼 남기고 싶었어요."
실제 '인간 이동휘'는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내가 손해를 보면서도 친구를 위해 손해를 감수하는 사람"이란다.
"손해 보는 것을 즐겨하는 편이에요. 왜냐하면 생색내기가 좋으니까요. 손해를 보면서 생색을 내다보면 친구들에게 얻는 것도 많아요. 착한 일을 남모르게 실천하기 보다는 그걸 친구들에게 여러 번 강조하면서 '내가 네게 좋은 일했다'고 세뇌를 시키는 편이에요."

◆"최철호, 이준기..고마운 분들"
이동휘는 극중 문일도 역을 연기한 최철호에 특히 감사해했다.
"굉장히 아이디어가 넘치는 분이고 저를 도와주시려고 정말 많은 노력을 하셨어요. 실제로 극중에 반영된 부분도 많아요. 한정훈이 돋보일 수 있었던 것도 최철호 선배님 도움이 컸던 것 같아요. 제가 촬영 들어가기 전 굉장히 걱정을 많이 했는데, 그런 우려를 완전히 불식시켜주셨죠. 저보다 한참 선배님인데도 제 눈높이에 맞춰 많은 것을 고려해주셨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아버지와 고향이 같으시더라고요. 울진 후포요. 그걸 22회 촬영하면서 알았어요. 마지막에 말이에요. 그 얘기를 드리니까 '내가 그래서 너한테 끌렸나' 이러시더라고요."
극중에서 자신이 그토록 도와주려했던 이준기는? "굉장히 젠틀해요. 전 준기형이 그렇게 리더십이 있는 사람인지 몰랐어요. 이게 준비된 멘트가 아니라 그 사람 많은 촬영장에서 자신을 희생하면서 현장 분위기를 이끌더라고요. 멋진 배우에요."
◆"대사의 90%를 애드리브로..."
이제 능글맞은 연기의 실체를 파악할 차례다.
"제 장점은 굉장히 불안해도 티를 안내는 거예요. 제가 흔들이고 있는 걸 전혀 내색을 안하다보니까 안정감 있게 보이나 봐요. 장점이죠(웃음)."
그는 "그리고 이건 민감한 부분인데, 작가 선생님이 좋아하시지는 않을 얘기"라며 "이번 드라마에서 대사의 90%를 애드리브로 했다"고 했다.
"작가 선생님이 굉장히 말을 편하게 할 수 있게 대본을 써주셨어요. 애드리브를 하더라고 열린 글과 닫힌 글이 있거든요. '조선총잡이' 대본은 열린 글이었어요. 굉장히 편하게 연기했어요. 이런 대본은 애드리브로 재미를 배가시킬 수 있거든요."
예를 들어달라고 했다.
"'고종을 지키느니 개를 지키는 게 낫다'는 대사가 대본에 있었어요. 그런데 이걸 촬영할 때 '고종을 지키느니 포도청 개 복순이를 지키겠다'고 했어요. 복순이는 제 지인의 개거든요. 방송 후 게시판 글을 보니 '복순이를 지키겠다니 ㅋㅋ' 라는 글이 있더라고요. 재밌으셨나 봐요."
그가 '잘난 체'를 하기 위해 애드리브를 하는 것은 아니다. "암기력이 좋지 않다"고 했다.
"고종 역을 연기한 이민우 선배는 엄청난 대사 암기력을 갖고 있어요. 저는 그렇지를 못해요. 이걸 넘기려고 하다보면 어느 순간에 제가 한정훈이 돼 있는 거예요. 대사가 생각이 안 나는데 어느 순간 내가 한정훈으로 돼 대사가 나와요. 머릿속은 하얗게 되는 데 입에서는 막 나오는 거죠."
그는 "이게 굉장히 신기한 게 보통 대본대로 안하면 NG 나기 쉬운데, 제가 애드리브를 할 때 상대 배우가 반응 해줄 때가 있다"며 "분명 어그러지고 있는데 '한강의 기적'처럼 맞아 떨어질 때가 있다"고 했다.
"사극인데 어느 순간 저도 모르게 서울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헐 큰일 났다' 생각했는데 NG가 안 나오는 거예요. 그냥 가는 거죠. 처음에 4회 정도 됐을 때 스태프들 중에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 그러시더라고요. '프로인지 아마추어인지 연기인지 진짜인지 모르겠다'고요. 그러시면서 '이제는 그냥 놓았다'고 해요."

◆"'타짜-신의 손', 제 안의 비열함을 꺼낼 겁니다."
'조선총잡이'를 끝낸 이동휘는 지난 3일 개봉한 '타짜-신의 손'에서 새로운 모습을 선보이고 있다. 그는 이 영화에서 극중 대길(최승현(빅뱅 탑) 분)의 고향 선배 '짜리' 역할로 출연한다.
"한정훈이 귀여운 친구라면 짜리는 친해지면 안 되는 녀석이에요. 정말 계산적이고 비열한 인물이죠. 한정훈의 귀여움이나 짜리의 비열함이나 다 저한테 있는 면이에요. 그러면서 어느 정도 동정심을 유발하고자 저만의 당위성을 주려고 노력했죠."
이 영화를 찍으면서 최승현에게 배운 것도 많다고. "나이로는 동생이지만 많이 배웠어요. 100회를 찍으면서 단 한 번도 얼굴을 찡그리거나 짜증을 내는 것을 본 적이 없어요. 굉장히 의젓한 사람이에요."
'타짜-신의 손' 이후에는 류성룡, 수지 주연의 '도리화가'에 출연한다. 여기서는 또 다른 이동휘의 모습을 보여줄 예정.
"이 영화에서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승부를 볼 생각이에요. 제가 지금까지 주로 말이나 화술로 캐릭터를 살렸다면 이번에는 판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장면도 있고, 그 시대에 보여줄 수 있는 몸동작도 있어요. 영화를 통해 깜짝 선물을 해드릴게요."
판소리를 한다기에 "노래 잘 하냐"고 물었다.
"노래요? 잘 못해요. 연기도 그렇지만 다 '흥(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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