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30일 전국에 박용하 비(雨)가 내린다

[전형화의 비하인드 연예스토리]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2.06.27 11:01
  • 글자크기조절
image


2005년 2월22일 서울극장이었다. '여자, 정혜' 기자시사회에 참석했던 기자들은 하나둘 연락을 받고 썰물처럼 극장에서 빠져나왔다. 이은주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대중이 연예인 자살이란 단어를 계속해서 듣게 될 신호탄 같은 사건이었다.

당시 '여자,정혜' 주인공이었던 김지수는 시사회 도중 연락을 받고 큰 충격을 받았다. 같은 소속사로 절친한 사이기도 했기에 결국 시사회 이후 있을 기자간담회도 취소했다. 이은주를 취재하고 이야기를 나눴던 경험이 있는 기자들은 침통한 마음으로 경찰서로, 빈소로 달려갔다.


다시 없었으면 좋았을 일들은 그 뒤로 해마다 이어졌다. 정다빈이 2007년 2월10일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정다빈과 친분이 두터웠던 동료 기자가 부음 기사를 쓰면서 마음을 다잡지 못했던 게 기억난다. 고인이 안치됐던 날 유토피아 추모관에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었다.

최진실의 죽음은 전 국민에게 충격을 안겼다. 2008년 10월2일 마침 부산국제영화제 개막날이었다. 부산으로 향하던 기자들이 중간에서 다시 서울로 속속 돌아왔다. 기자도 대구에서 서울로 다시 향했다.

지상파 3사 위성중계차가 고인의 빈소 앞에 대기 중이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연예인 자살에 지상파 3사 위성중계차가 전부 몰린 건 최진실 뿐이다. 그만큼 그녀의 삶과 죽음은 대중에 큰 슬픔을 안겼다. 최진실에 이어 동생 최진영도 자살했기에 아픔은 더했다.


2010년 6월30일 박용하가 자살로 세상을 떠났다. 내로라하는 한류스타인데다 소속사도 차렸고 영화 출연도 예정돼 있기에 믿기지 않았다. 믿기지 않았던 건 지인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하염없이 울던 소지섭을 보며 한 번쯤 내가 죽으면 저렇게 울어줄 친구가 있을까란 생각을 해본 사람들이 참 많았더랬다.

2012년 6월12일 신인배우 정아율이 세상을 떠났다. 이제 시작하는 신예였기에 그녀의 고충을 헤아리지 못했다며 많은 사람들이 가슴을 쳤다.

연예인 자살을 오래 취재하다보면 묵직한 돌 같은 게 가슴에 켜켜이 쌓인다. 슬퍼할 틈도 없이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를 찾아야 하며, 빈소를 지켜야 한다. 고인과 친분이 있던 기자들은 유족과 지인들을 취재하면서 참 못할 짓이란 생각을 몇 번씩 곱씹게 마련이다. 사진기자들이 연예인 빈소 취재를 더 이상 안 하기로 결정한 것도 고인의 대한 예의와 그런 안타까움이 쌓였기 때문이다.

모진 결정을 하는 이유야 저마다 다르겠지만 취재를 하면서 한 가지는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조사했던 게 있다. 바로 수면제다. 연예인 자살 빈소에 앉아 있으면 사람들이 개탄하는 것 중 하나가 수면제다. 연예인 자살엔 항상 술과 수면제가 빠지지 않았다.

수면제 중 일부는 술을 마실 경우 자살 충동을 더욱 일으키는 게 있다. 연예인 중에는 우울증에 시달려 습관적으로 수면제를 복용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우울증에 시달리니 술을 마시고, 술을 마신 상태에서 수면제를 먹다가 충동적인 결정을 할 수 있다는 증언들이 많았다.

유족들이 고인이 먹는 수면제 종류를 밝히기 꺼려해 벽에 부딪혔다. 스타뉴스가 함께 하는 연예인 자살방지 캠페인에서 이정진과 술과 수면제에 대해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 인터뷰로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이정진도 술과 수면제가 자살에 영향을 준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했다.

배우 박진희는 연예인 자살과 관련해 석사논문을 썼다. 도서관에서 논문을 빌려 꼼꼼히 읽어봤다. 높은 기대와 차가운 현실, 주변의 시선, 악플, 루머, 파파라치 등이 특히 스트레스를 준다는 자체 조사결과를 적었다.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고 싶어도 주변의 시선 때문에 발길을 돌린다는 내용도 적혀 있었다. 그러면서 해결책으로 제도적인 장치와 함께 연예인들이 곁에 있는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것을 권했다.

일본 전국시대를 평정하고 도쿠가와 막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걷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가문을 지키기 위해 큰 아들을 죽게 했고, 신분이 달랐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무릎을 꿇었다. 오랜 시간을 참고 또 참은 끝에 일본 제일이 됐다.

기자는 어린 시절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걷는다는 게 사람은 어차피 혼자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두 아이의 아빠가 된 지금은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짐이 무거워도 마음을 다잡게 되고, 잠시 쉬었다 가면 되고, 서로 나눠들면 더 좋지 않은가란 생각을 하게 됐다. 길이 멀 수도 있고, 가까울 수도 있지만 바로 옆엔 같이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고 박용하 2주기가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를 잊지 않은 많은 일본팬들이 2주기를 맞아 한국을 찾는다는 소식도 들린다. 박용하는 생전 비를 부르는 사람이라 불렸다. 중요한 행사마다 꼭 비가 와서 붙여진 별명이었다. 박용하 발인날도 어김없이 비가 내렸다. 지난해 1주기 추모식에도 비가 내렸다.

박용하 2주기에 단비가 내릴 것 같다. 기상청은 이번 주말 전국적인 비를 예보했다. 104년만의 가뭄에 모처럼 내리는 비는 박용하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겐 '박용하비'로 더욱 반가울 것 같다.

박용하 2주기를 맞아 더 이상 연예인 자살이란 소식을 듣지도, 전하지도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신뉴스

더보기

베스트클릭

더보기
starpoll 배너 google play app s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