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옥정', 왜곡에 살다?..소재 빌리고 각색은 자유

[기자수첩]

최보란 기자 /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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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SBS
사진제공=SBS


사극 속 역사와 가상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요즘, 드라마 속 과한 왜곡설정이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SBS 월화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극본 최정미 연출 부성철)는 역사 속 인물들을 그대로 등장시키면서 픽션을 가미한 퓨전 사극을 지향하고 있다. 드라마 자체가 장희빈에 대한 다른 시각에서 접근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만큼 어느 정도의 상상력이 가미될 것임을 예고했다.


막상 전파를 탄 '장옥정'의 설정은 예상보다 더욱 픽션에 가까웠다. 장옥정(김태희 분) 이 조선의 패션 디자이너라는 상상은 캐릭터를 다채롭게 표현하고 드라마의 색다른 볼거리를 위해서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다소 과장 섞인 장면들이 등장해 시청자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옥정의 점포에 마네킹이 등장하거나, 옥정이 굽이 달린 신을 신고 나오는 것은 초반 옥에 티로 구설수에 올랐던 장면. 최근엔 현치수(재희 분)를 돕는 기생이 양 갈래의 파격적인 가채를 쓰고 머리에는 인도 여인을 연상케 하는 구슬장식을 이마로 늘어뜨려 일부 시청자들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기생들을 불러 화려한 패션쇼를 벌이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사대부가 자제들이 남녀구분 없이 모여 오작교 연회를 벌이고, 더욱이 잔을 하나씩 손에 들고 스탠딩 파티를 벌이는 모습은 다소 당황스럽기도 했다.


이처럼 의상이나 소품이 시대와 맞지 않는 것은 '장옥정' 뿐 아니라 이제 사극에서 흔한 일이 돼버렸다. 그러나 기존에 알고 있던 역사적인 상식과 맞아 떨어지지 않는 말투나 행동, 사건 등은 혼란을 넘어서 보기에 불편하기까지 하다.

사진=SBS '장옥정, 사랑에 살다' 방송화면
사진=SBS '장옥정, 사랑에 살다' 방송화면


이순(유아인 분)을 암살하기 위해 영의정이 회갑연에 왕을 초대했던 장면은 극적이기는 했으나 과연 가능한 일인가 의문을 들게 했다는 의견이다. 또 극중 인물의 시호를 이름으로 부르는 장면이나 후궁이 편전에 들어 신료들과 대면하는 모습 등도 여러 지적을 받은 장면.

시호는 왕이나 사대부들이 죽은 뒤에 그들의 공덕을 찬양하여 추증한 호로써 생전에는 불리지 않는 호칭이자만, '장옥정'은 인경왕후와 인현왕후를 등장 초부터 인경 아가씨와 인현 아가씨로 지칭했다.

조선시대 왕이 스스로 지칭하는 표현으로 '과인'을 주로 사용한 반면, '장옥정'에서는 짐이라는 표현이 주로 등장한다. 역사적으로는 고종이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쳐 중국과 종속관계를 끊고 황제에 오르면서 짐이라는 칭호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드라마는 극적인 효과를 위해 사건의 순서를 바꾸기도 했다. 장희빈은 소의의 신분에서 왕자 윤을 낳고 빈이 된 것으로 기록됐지만, 드라마에서는 유산한 옥정을 위해 아들을 낳기 전 이순이 직접 희빈의 작위를 내린 것으로 그려졌다.

또 극중에선 옥정이 희빈이 된 이후 대비 김씨(김선경 분, 명성왕후)가 사망했지만, 조선실록 등의 기록에는 장옥정이 명성왕후가 승하한 1683년 이후 6년이 지난 1689년에야 빈이 된 것으로 전해졌다.

사극에서의 역사 왜곡에 대한 우려는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시청자들은 "퓨전사극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좀 심한 듯하다", "학생들의 역사 인식부족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사극에서 왜곡된 역사를 배우는 게 안타깝다", "극적인 재미도 좋지만 역사 고증으로 더욱 사실적으로 그려졌으면" 등의 아쉬움을 드러냈다. "아이들이 저 시대엔 실제로 저랬느냐"고 물으면 답할 길이 막막하다는 시청자들도 있다.

'장옥정' 제작진 측은 앞서 하이힐과 마네킹 등이 논란이 되자 "퓨전 사극의 맥락에서 이해해 달라"고 입장을 나타냈다. 일각에선 "드라마는 드라마로만 봐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 역사 속 인물과 배경을 가져다 쓰기 위해선 그에 맞는 고증을 위한 노력이 어느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익히 알려진 역사 속 인물의 이름만 가져다 쓰겠다는 것은 책임을 회피하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그렇지 않다면 아예 가상의 배경으로 판타지 사극을 만들거나, 드라마 시작 전 "이 드라마는 실제 역사와 무관하다"라고 표기라도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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