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기행', 대한민국 가족이 속깊이 품은 고독함에 대하여

[리뷰]'철원기행'

윤상근 기자 / 입력 : 2016.04.14 09:03 / 조회 : 1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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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철원기행' 스틸


만약 내 아버지가 한 자리에 모인 가족 식사 자리에서 어머니에게 이혼을 하자고 한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그리고 아버지의 이혼 선언을 마주한 순간 떠오르는 생각들은 무엇일까. 영화 '철원기행'(감독 김대환)은 이 질문을 던지며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가족의 모습을 들여다 본다.

'철원기행'은 가족이 모인 밥상머리에서 이혼을 하겠다고 선언한 아버지의 이 한마디에서부터 출발한다. 여기에 폭설로 인해 2박 3일 동안 한 곳에서 지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더한다.

철원에서 공고 교사로 재직한 아버지 성근(문창길)은 퇴임식에 참석한 어머니 여정(이영란)와 두 아들, 그리고 맏며느리와 함께 식사를 하러 근처 중국집으로 향한다. 여정은 이렇게 썰렁한 퇴임식은 처음 봤다면서 "대체 학교 생활을 어떻게 한거냐"며 투덜댄다. 장남 동욱(김민혁)은 말 없이 뒤를 따르고, 맏며느리 혜정(이상희)은 가족들 눈치를 보면서도 다정하게 말을 건넨다. 하지만 도무지 이 숨이 막힐 것만 같은 분위기는 좀처럼 숨통이 트이지 않는다.

식당 안에서도 대화는 이어지지 않고, "퇴임 축하드린다"는 며느리의 말에 대답조차 안 하는 성근을 바라보며 여정은 "무슨 말이라도 좀 해라. 안 들리냐"며 짜증을 더욱 낸다. 이후 차가 막혀 퇴임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던 막내 아들 재현(허재원)이 까불대며 식당에 도착하자 시선이 그리로 쏠리다 다시 침묵으로 돌아선다. 재현은 분위기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휴대전화로 문자를 하던 형 동욱에게 "누구냐"며 추궁하다 괜히 형의 짜증만 듣는다.

결국 성근은 작심한 듯 여정에게 한 마디를 한다. "이혼해야겠다"라고. 안 그래도 화가 치밀어 올랐던 여정은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혜정이 겨우 뒤따라 나서서 여정을 붙잡는다. 두 아들 역시 영문도 모른 채 아버지의 행동을 그저 지켜만 볼 뿐이다. 성근은 음식값을 낸 후 식당을 나갔고, 가족들 모두 일단 성근을 따라 나섰다.

이들 5명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성근의 교사 숙소에 일단 들어간다. 하지만 폭설로 터미널에서 버스가 운행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예기치 않은 동거를 시작하게 된다. '철원기행'은 이후 이들의 모습을 여러 에피소드를 엮어 성근의 이혼 선언을 둘러싼 생각과 각자의 솔직한 속마음을 들여다본다.

성근은 그저 묵묵부답일 뿐이다. 눈을 치우면서도 왜 이혼을 하자는 건지 따지러 온 여정에게 "추우니까 어서 들어가라"고만 답하고, 짐을 정리하면서 도와주러 온 동욱에게는 "미안하다"는 말만 했다. 퇴임식 이후 동료 교사들이 마련한 사은회에서도 성근은 말 없이 술에 취해 비틀거리다 두 아들의 부축을 받으며 쓸쓸히 집으로 향한다.

이를 바라보는 여정의 마음은 당연히 답답해 미칠 노릇이다. 고집불통에 고집만 센 성근에게 "몇 십 년을 같이 살아도 적응이 안돼"라고 말하고, 혜정과 맞담배를 나눠 피면서 "내가 뭘 잘못했냐"고 말한다. 아무리 외쳐도 자기가 원하는, 듣고 싶은 답이 오지 않자 여정은 체념한 채 시간을 보낼 뿐이다.

동욱의 모습은 성근과 왠지 모르게 닮아 있다. 속 시원한 대답 없이 무표정에 한숨만 내쉬는 게 걱정을 한 보따리 짊어진 듯하다. 아버지는 이혼 선언을 하고 어머니는 펄쩍 뛰고, 아내는 가게 새로 차릴 돈 좀 시어머니한테 부탁하라고 애걸복걸이고, 남동생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과거만 떠올리고 있다. 이 모든 상황들을 지켜보는 것이 그냥 짜증이 날 뿐이다.

혜정과 재원은 그저 자기가 원하는 것 생각하느라 아버지의 이혼 선언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혜정은 가족들에게 한 없이 살갑게 다가가고 말을 건네지만, 속으로는 숨 막혀 죽을 것만 같은 심정이다. 가게 차릴 돈이 부족해 남편 동욱을 보채고, 말이 안 통하자 여정에게 솔직하게 말해버린다. 이도 저도 해결되지 않는 상황 속에 혜정은 그만 집을 나가버리고 만다. 재원은 그나마 이 상황과 상관 없이 철부지 매력을 발산한다. 임용 고시 준비도 앞두고 있지만 결혼 때문에 마음이 급하다. "아들이 기 죽어서 장가 갔으면 좋겠어?"라며 역시 여정에게 경제적 지원을 해달라고 떼를 쓴다.

'철원기행'은 제목 그대로 철원에서 벌어지는 기행을 통해 대한민국에서 아버지로, 어머니로, 아들로, 며느리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린다. '철원기행'이 말하는 대한민국의 5인 가족은 고구마를 100개 먹은 듯한 갑갑함과 숨 막히는 가족의 분위기를 가감 없이 그려낸다. 이 갑갑함과 숨 막힘이 더해질 수록 영화가 전하는 현실감은 더 커진다. 쓸쓸한 아버지의 뒷모습과 독하디 독한 엄마 또는 시어머니의 존재감, 큰아들의 좌절, 며느리의 눈치, 막내 아들의 철부지는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가족 구성원의 전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마치 실제 가족인 듯한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은 돋보였다. 홍상수 감독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고현정의 남편 역할로 등장해 시선을 모은 문창길은 우리 시대 아버지의 쓸쓸함을 잘 표현해냈고, '한공주', '프랑스 영화처럼' 등 여러 작품에서 강인한 모습을 보인 이영란도 남다른 존재감을 전했다. 김민혁, 이상희, 허재원 역시 각자의 역할에 잘 녹아드는 모습이었다.

5명의 일가족이 힘겹게 눈밭을 걸어가는 모습은 '철원기행'의 고독함과 처량함을 담는다.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모든 가족 구성원이라면 겉으로는 표현되지 않은 이 감정들을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12세 이상 관람가. 4월 21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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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근|sgyoon@mt.co.kr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가요 담당 윤상근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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