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인터뷰]김여진 "슬픔을 직시할 수 있는 힘에 대하여"

영화 '살아남은 아이'의 김여진 인터뷰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8.09.0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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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살아남은 아이'의 김여진 / 사진제공=엣나인필름


'살아남은 아이'(감독 신동석)는 고요하지만 강렬한 영화다. 영화의 주축은 세 사람이다. 고등학생 아들을 잃은 어머니와 아버지, 그 아들이 죽으며 살려낸 또 다른 아이. 어렵사리 서로의 상실감과 죄책감을 어루만지며 살아가던 세 사람, 그리고 이들이 감출 수 없던 진실을 마주하며 벌어지는 일이 담담하고도 극적으로 펼쳐지며 묵직한 질문을 남긴다.

아들을 죽게 한 아이를 어머니의 심정으로 끌어안게 된 여주인공 미숙을 연기한 이는 배우 김여진(46)이다. 아직까지 미제로 남은 개구리소년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아이들...'(2011) 이후 무려 7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했다.


'살아남은 아이'란 제목을 보는 순간부터 살아남지 못한 아이가 있겠다는 직감에 거절할 마음을 먹었다는 그녀는 시나리오를 보는 순간부터 미숙이 자신의 역임을 또한 직감했다. 데뷔 20년을 맞이한 배우의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김여진은 역할에 녹아 들어간 듯한 모습으로 보는 이들을 먹먹하게 한다.

영화를 찍기 전에는 몰랐던 깊은 상실감을 간접적으로 경험했다는 그녀는 "우리는 정말 그 사람의 마음에는 들어가지 못한다. 그럴 때, 입을 다물어야 한다"며 가만가만, '살아남은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살아남은 아이'라는 제목이 너무 슬플 것 같아 시나리오를 보고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했는데


▶영화는 슬픔에서 시작한다. 이미 아이는 잃었고 이후 8개월 쯤 지난 일상에서 시작한다. 한 신 한 신이 아주 사실적이었다. 어느 날은 담담하고 괜찮았다 어느 날은 폭발하는 감정선을 보며 어느 영화보다 슬픔이 사실적이고 절절하게 다가왔다. 매 신 슬퍼서 '우세요 우세요'가 아니었다. 읽는 순간 촉이 온다. 손에 잡힐 듯 그려져 있었고 내가 어떻게 연기할 것인지가 쫙 지나갔다. '이건 내 역할이구나' 했다. 그리고 아주 간절한 마음이 들었다. 이 인물이 살아남아서, 어떻게든 살아갔으면 하고 기도하는 마음이 됐다. 관객들도 저들의 무탈함을 빌어주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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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살아남은 아이'의 배우 김여진 / 사진제공=엣나인필름


-그런 절제된 연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대본을 보고 나서 각오를 아주 단단히 했다. 단지 몰입만 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다. 사실 계산이 필요하다. 앞모습도 찍고 뒷모습을 찍고 전체를 찍고, 그러면서도 응축적으로 보여주는 타이밍이 있는데 그때 NG가 나면 다시 가야 하고. 20년 동안 연기한 경험으로 굉장히 힘들 거라고 각오했다. 하지만 생각보다는 힘들지 않았다. 감독의 콘티가 정확했고 작은 영화인데도 스태프가 노련해 NG가 거의 없었다. 울지 않아야 할 신에서 눈물이 계속 날 때가 있었다. 어느 신에 가도 슬픔이 복받쳐 오르는 느낌이 있어 진정하고 간 부분이 많다.

-아버지 성철과 어머니 미숙이 아이를 애도하는 방식이 다르다. 어떻게 해석했나.

▶미숙은 알고 있다. 이 슬픔을 결코 잊을 수도 극복할 수도 없다는 걸. 이 슬픔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걸. 엄마들에게 자식 먼저 보내면 어떨것 같냐고 물어보면 못살 것 같다고 한다. 살아있는 느낌이 아닌 것이다. '슬프다 슬프다' 하다가 못 견디겠으면 '그냥 끝내' 이런 거지, 벗어날 마음도 없고 위로받고자 하는 의지도 없다. 문득 동생을 갖고싶어 했지, 그 생각으로 살 과제를 하나 준 것이다.

-영화의 결말은 어땠나.

▶가장 최선의 결말이 아닐까. 촬영하면서 계속 다른 결말을 꿈꿨다. 하지만 그럴 수 있었을까. 거기까지는 모르겠다. 제가 미숙이었다 해도 고민했을 것 같다. 거기까지가 최선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사람도 그렇게 강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감정에 초점을 맞췄다 생각하나. 슬픔? 혹은 용서일까.

▶어떤 것이었을까. 누구나 모르지 않나. 누군가 어느날 상실을 느낄 수 있다. 멀쩡히 살다 감당하지 못할 슬픔의 상태에 있을 때 무엇으로부터 위로받을 수 있을까…. 주변의 어떤 말도 다 상처가 된다. '괜찮을 거야'도 상처가 되고 '얼마나 힘들었어'도 상처가 되고 '보상금 받아 축하해'도 말이 안된다. 그 모든 게 상처다. 그럴 때 미숙이가 기현으로부터 가장 큰 위로를 받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슬픔에서 일으켜 세워주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어떻게 용서가 가능한가 하는 질문도 생겼다. 슬픈 마음이 움직이는 길 같은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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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살아남은 아이'의 김여진 / 사진=영화 스틸컷


-감독과 영화 속 인물들을 '유가족으로 대상화하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다더라. 그 마음과 그것을 연기로 표현해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일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감독님 몫이다. 저같은 경우는 거기에 매이지 않는 거다. 그게 기본 설정이지만 '나는 유가족이야, 자식 잃은 엄마야'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그저 미숙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슬픔을 겪었고 어떤 방식으로 살고 있나, 그 개인의 그때그때 감정에 집중해야지 어떤 명제에 빠져서는 안됐다.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유가족인데 이럴 수가 있나', '이런 대화가 가능한가'에 매몰되지 않아야 했다.

모든 슬픔의 색깔은 다른 것 같다. 7년 전에 '아이들'이란 영화를 찍었다. 제가 연기한 종호엄마란 분은 바위나 나무껍질 같은 사람이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용의자로까지 몰렸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아이 잃은 엄마' 같지 않아서. 그 육성을 듣는데 너무 담담하고 아무렇지 않아서 소름이 쫙 끼쳤을 정도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하는데 그건 그냥 우리 생각이라는 거다. '누군가는 이럴 거다' 하는 상일 뿐이다. 거기에 맞지 않은 피해자를 보면 이상해서 '넌 피해자답지가 않아', '넌 유가족답지가 않아' 하고 손가락질 하는 경우가 많다. 미숙도 오해를 받을 수 있다. 어떻게 기현을 받아들여 라든지. 저도 의문을 품지 않았던 게 들은 이야기가 있어서다. 그 분은 낮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살다가 새벽 2~3시만 되면 깨서 비명을 질렀다고, 1년을 그리 했다더라. 그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언제 슬플 지는 아무도 모른다. 슬프지 않을 때, 일상을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충분히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찍고 달라진 것이 있다면.

▶기사를 보거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쉽게 판단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아주 쉽게 판단하고 쉽게 뱉게 되는 일들이 있다. 그건 한줄짜리 기사니까. 정말 그 사람의 마음에는 들어가지 못한다. 그럴 때 입을 다물어야 한다. 나는 그 사람을 모르지 않나. 훨씬 신중해졌다. 판단을 내리고 꼭 내 의견을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정말 그렇게 슬퍼한다면 쉽사리 입을 떼지 않을 것 같다. 옆에 가만히 있어주는 것이 아닐까.

-세월호가 연상되기도 한다.

▶최근 가장 큰 사건이었고 아이를 잃은 부모니까. 자연스럽게 떠오를 수는 있지만 그것이 모티브는 아니었다. 저도 생각하지 않고 연기했다. 오로지 개인에 대해 생각했다. 다만 제목이 주는 무거움 때문에 쉽사리 대본을 펼치지 못했다. '거절할거야' 이러며 봤다. 사람들은 무겁고 슬픈 걸 좋아하지 않는다. 저도 그렇다. 제 현실 제 아픔이 있기 때문에 슬프고 힘든 걸 보고 싶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위로되지 않는 힘이나 아픔을 외면하고 싶지 않나. 제목만이라도 다르게 했으면 했지만, 양보할 수 없는 너무 정확한 제목이었다. 제가 제목을 보고 무서웠고 다가가고 싶지 않았지만 본 뒤에 '해야겠다' 결심한 것처럼 보시는 분도 용기를 갖고 봐주셨으면 좋겠다. 직시할 수 있는 힘, 가만히 지켜볼 수 있는 힘이 있다. 슬프긴 하지만 괴롭거나 힘들지는 않았다. 분명 생각이 깊어지고, 마음이 깊어지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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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살아남은 아이'의 김여진 / 사진제공=엣나인필름


-성유빈과 마치 어머니와 아들 같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처음 보고 '쟤가 배우라고요?' 그랬다. 지금이야 좋은 영화들이 나왔지. 애가 너무 조그맣고 새카맣고 인사만 간신히 하는 거다. 보통의 아이들보다 더 숫기가 없는 느낌이었다. 자기를 드러내는 데 익숙지 않은 아이구나. 게다가 나이보다 어려보였다. 그러다 첫 신을 찍고 '어우 야' 그랬다. 아무렇지 않게 기현이 되더라. 감탄을 했다. 정말 어려운 연기다. 비밀은 비밀대로 가지고 있는데 사실 아이이고, 나중에 생각하면 다른 거였구나 유추할 만큼 이중성이 있어야 했다. 아주 적절하게 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유빈이가 쭉 한국영화에서 좋은 배우로 성장하지 않을까 한다. 기대하고 있다.

-최무성과는 처음 호흡을 맞췄다.

▶처음 만났는데 처음 만났을 때부터 처음 같지 않았다. 다른 영화에서 부부로 출연할 뻔한 적이 있어서 만난 적이 있다. 실제로 그런 합이 있다. 저런 남자와 저런 여자가 살것만 같은 합이랄까. 처음부터 친근하고 스스럼이 없었다. 오빠가 농담하고 저는 구박하는 관계가 됐다. 어느 신이나 무난하고 편안하게 했다. 또 만나지 않을까 싶다. 둘이 부부를 연기하고 유빈이가 정말 사랑받는 아이로 나오면 맺힌 한이 풀릴 것 같다.(웃음)

-영화가 오랜만이다. '아이들...'도 그랬는데, 묵직하고 사회적 메시지를 선호하는 성향이 있는 건가.

▶저의 선택이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감독님들이 저를 그리 생각하는 것 같다. 다음 드라마가 '내 뒤에 테리우스'인데 방송에서는 오랜만에 코믹한 캐릭터를 해서 기대하고 있다. 배우로서 저는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어떤 장르든 영화와 캐릭터에 재미가 있으면 된다. 액션영화 오락영화 감독님이 저를 잘 못 떠올리시는 것 같은데 떠올려주셨으면 좋겠다. 다양한 영화, 다양한 연기를 보여드렸으면 좋겠다. 그 중에서도 코미디와 액션을 하고 싶다!

사실 아이가 딱 7살이다. 영화를 못 한 데는 그게 가장 크다. 우리나라에서 살려면 육아와 일, 일과 사랑의 밸런스를 맞춰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지난 시간 저는 다른 소중한 것에 집중해 왔다고 생각한다. 연기를 하고 싶고 그것으로 소통하고 싶다는 욕구는 계속 가지고 있다. 지금부터 계속 균형점, 밸런스를 맞추는 것에 신경을 쓸 것 같다.

-다음 계획은?

▶MBC 미니시리즈 '내귀에 테리우스' 하고 또 다음 드라마도 있다. '살아남은 아이' 때문인지 그 와중에 독립영화 대본이 많이 들어온다. 영화를 좀 더 하고 싶은 게 개인적 바람이다. 감독님들이 봐주셨으면 좋겠다. 기회가 많이 생겼으면 좋게. 일이라는 게 들어올 때 막 들어오는 게 있다. 지금은 좀 그런 것 같다. 지금은 일을 해야하는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보다 적극적인 마음으로 많이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아이가 1학년이 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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