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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아워즈 |
에픽하이가 오랜만에 앨범을 발표했다. 빠르고 자극적인 비트가 주류인 국내 음악 시장, 특히 힙한 안에선 '드릴'이란 장르가 주목받고 있다. 그들 역시 오랫동안 힙합을 해온 그룹으로써, 이런 상황에 딱 맞는 앨범을 내려나 추측했다. 그러나 이번 신보는 달랐다. 새 앨범 '스트로베리'는 에픽하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음악으로 느껴진다. 데뷔 20년을 맞은 만큼, 힘을 잔뜩 줄 법도 한데 어딘가 풀어져 있고 빈틈이 보인다. 그들의 편안함은 생각보다 크게 들린다. 하지만 음악을 듣다 보면 발매 이유를 알 것 같다. 음악의 빈틈은 리스너가 몰입할 시간을 주고 잠깐의 공백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어쩌면 이는 20년을 쌓아온 에픽하이의 여유라고 말할 수 있다.
'스트로베리'는 동명의 인트로곡으로 시작된다. 1분 28초간 흐르는 피아노 선율과 주변 소음으로 가득한 로파이(Lo-fi) 음악은 백색 소음을 연상케 한다. 이때 갑작스럽게 들리는 '안녕하세요'란 말과 함께 '온 마이 웨이'(On My Way), '캐치'(Catch), '다운 배드 프리스타일'(Down Bad Freestlye), '갓스 라떼'(God's Latte)가 진행된다. 수록곡의 흐름이나 분위기는 여태 에픽하이가 해온 방식처럼 쉽고 대중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돋보이는 음악은 4번 트랙 '다운 배드 프리스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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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하이 /사진제공=아워즈 |
타블로는 최근 롤링스톤과 인터뷰에서 "우린 신선한 걸 생각했을 때 딸기를 가장 먼저 생각했다. 동시에 딸기를 부수면, 그건 피처럼 보인다. 딸기는 말 그대로 보호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과거 타블로는 연예계 최악의 루머인 '타진요' 사태를 겪은 바 있다. 당시 그는 '딸기'처럼 방패막이 없이 온갖 질타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다시 일어나 정상을 걷는 에픽하이는 호불호 없이 모두 좋아하는 '딸기'와 같다.
모든 일은 쉬워 보일 때 가장 어렵다. 단적인 예시로, 미사여구가 많은 글은 꾸밈만 많을 뿐 정확한 의사를 전달할 수 없다. 음악도 이와 마찬가지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거울수록 듣기 어려워진다. 멜로디는 좋지만, 의도를 모르니 손이 잘 안 가는 것이다.
에픽하이의 말은 사실 꽤 무겁다. 그간 걸어온 길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시적인 가사로 주목받은 만큼 중요한 얘기를 털어놓아야 할 의무감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에픽하이의 음악이 매번 음원 차트 상단에 머무는 이유는 바로 특유의 가벼움이다. 듣는 이가 부담스럽지 않도록, 그러나 한 번쯤 생각하게끔 만드는 화법이 감탄스럽다. 이게 바로 에픽하이가 언더그라운드와 인디에서 메이저로 올라와 대중음악의 길을 걷는 이유다.
안윤지 기자 zizirong@mtstar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