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싫어하는 '북측'... '의문의 사내'가 버럭한 이유 [항저우 스토리]

항저우=안호근 기자 / 입력 : 2023.09.30 06:01 / 조회 : 2943
  • 글자크기조절
image
29일 남북 대결을 펼친 뒤 기자회견실을 찾은 북측 강향미(왼쪽부터)와 정성심 감독, 의문의 북측 관계자. /사진=안호근 기자
5년 만에 다시 만났지만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남북 여자 농구 대표팀은 그렇게 달라진 상반된 분위기 속 재회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단일팀으로 나섰던 남북 여자 농구 대표팀은 29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올림픽 스포츠센터 체육관에서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여자농구 조별리그 C조 2차전에서 만났다. 결과는 81-62 한국의 승리.

결과 이상으로 다시 만난 남북의 이야기에 많은 관심이 쏠렸다. 취재진은 경기 종료 직후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에서 퇴장하는 선수들을 기다렸다. 북쪽 선수들이 먼저 빠져 나왔으나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을 거들떠도 보지 않은 채 지나쳐갔다.

5년 전과 달리 남북 관계는 경색됐고 우리 선수들보다 북측 선수들은 훨씬 더 정치적 상황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단일팀으로 정을 쌓았던 박지수와 강이슬, 박지현은 다시 만난 옛 동료들에 대한 반가움을 나타냈지만 돌아오는 건 차갑기만한 대응이었다.

image
경기 후 믹스트존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김단비. /사진=안호근 기자
기자회견장에서 북측 선수 강향미와 정성심 감독을 만나볼 수 있었다. 그리고 한 의문의 사내가 함께 등장했다. 특수한 남북 관계로 인해 외신에서도 현장을 찾기는 했지만 번역기가 있는 상황에서 통역 역할 또한 필요가 없었기에 그의 동행은 다소 의아스러웠다.

경기 소감에 대한 기본적 질문과 답변이 오간 뒤 외신 기자가 추후 남북 단일팀 성사 가능성에 대해 물었다. 이에 의문의 사내가 대신 마이크를 잡더니 "대신 말해도 되겠습니까"라며 "이번 경기와 관련이 없는 질문이라고 봅니다"라고 답변을 피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열정적인 북한 선수단의 응원에 대한 소감과 타지의 음식이 잘 맞느냐'는 질문이 나왔는데 다시 한 번 그 사내가 나섰고 한껏 격앙된 어조로 말문을 열었다. 이번엔 굳이 영어를 사용하며 "우리는 '노스 코리아(북한)가 아니다"라며 "DPR 코리아(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다. 아시안게임에선 모든 나라의 이름을 정확히 불러야 한다. 이건(북한이라는 명칭은) 좋지 않다"고 발끈했다.

표현 방식이 거칠기는 했으나 사실 납득이 가지 않는 상황은 아니다. '북한'이라는 말은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에서 비롯된다. 이를 줄여 한국이라 부르고 국내에선 남북을 나눠 부를 때 남한(남쪽의 한국), 북한(북쪽의 한국)이라고 편의상 부르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만 사용할 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image
경기 전 나란히 맞서 있는 남북 선수들. /사진=뉴스1
우리가 너무도 흔히 사용하는 북한이라는 명칭과 달리 실제 북쪽에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공식 국가명을 사용한다. '북측', '남측'은 각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한민국을 지칭하는 표현이라 문제될 게 없지만 '북한'이라는 명칭은 북측에선 과거부터 불편하게 여겨왔다.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으로 남북관계가 평화 무드로 흘러간 언론계에서도 북쪽에서 불편해하는 '북한'이라는 표현 대신 '북측'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북측에서도 한국을 '남조선(남쪽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반대로 이는 지극히 북측식의 명칭이다. 그러나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렇게 부르는 것이 옳은 표현이 아닌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일종의 해프닝으로 여길 수 있는 일이었다. 다만 아시안게임 관계자 측에서도 정확히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 의문의 사내가 기자회견장에 동석해 개입한 것은 다소 아쉬운 일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정치적인 목적으로 읽혔다. 실제로도 난처할 수 있는 질문에 대해 사전 차단을 했고 '북한'이라는 표현에 맞설 땐 마치 소통이 아닌 일방적으로 통보를 하려는 듯이 우리말이 아닌 영어를 사용해 답했다.

5년 만에 다시 만난 북측을 향해 따스하게만 대한 선수단과 취재진에게 북측은 차갑기만 했다.

image
경기장을 찾은 북측 응원단. /사진=뉴스1


기자 프로필
안호근 | oranc317@mtstarnews.com

스포츠의 감동을 전하겠습니다.

이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최신뉴스

더보기

베스트클릭

더보기
starpoll 배너 google play app s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