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 대결? 물 흐리는 것" 김가영, '사상 첫 5연패-12승 新' 쐈다, 여제는 정도를 걷는다 [LPBA]

안호근 기자 / 입력 : 2024.12.0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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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영이 8일 '하이원리조트 PBA-LPBA 챔피언십 2024' LPBA 우승을 차지한 뒤 기자회견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PBA 투어 제공
"내가 PBA에서 뛰는 것은 물을 흐리는 셈이다."

김가영(41·하나카드)은 정도만 걷는다. 자타공인 '여제'라는 압도적 지위에도 현재에 안주하기보다는 보완할 점만 고민하며 당구에 접근하고 연구한다. '살아 있는 전설'은 만인에게 여자 선수들에겐 교과서 그 자체인 길을 걷고 있다.


김가영은 8일 강원도 정선군 하이원 그랜드호텔 컨벤션타워에서 열린 '하이원리조트 PBA-LPBA 챔피언십 2024' LPBA 결승전에서 김가영은 김보미(26·NH농협카드)를 세트스코어 4-2(11-0, 11-6, 11-4, 3-11, 9-11, 11-1)로 꺾고 정상에 등극했다.

지난 11월 시즌 6차전서 통산 11번째 우승을 달성한 지 불과 28일 만에 다시 한 번 트로피를 들어올린 김가영은 프로당구 최초 5연속 우승이자 자신이 보유한 남녀부 최다승 기록을 12회로 늘렸다.

더불어 김가영은 결승전 승리로 개인투어 30연승의 대업도 이뤘다. 우승 상금 4000만원을 더하며 여성 선수로는 최초로 단일 시즌 상금 2억원을 적립했다. 누적 상금 역시 랭킹 1위(5억 4180만원)를 굳게 지켰다. 2위는 2억 7282만원의 스롱 피아비(우리금융캐피탈)로 2배 가까운 큰 차이를 보인다.


16강에서 한지은(에스와이), 8강에서 오도희를 제압한 김가영은 4강에서 이미래(하이원리조트)를 3-0으로 압도하며 결승에 진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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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영이 결승전에서 스트로크를 준비하고 있다. /사진=PBA 투어 제공
초반은 완벽한 김가영의 흐름이었다. 1세트를 장타 2방으로 끝냈다. 3이닝째 하이런 6점에 이어 4번째 이닝에서 5점을 더하며 11-0 완벽한 시작을 알렸다. 2세트에선 4이닝 6-6 동점에서 차근히 점수를 쌓으며 앞서갔다. 3세트에도 4이닝 하이런 7점을 바탕으로 손쉽게 따냈다.

우승까지 한 걸음을 남겨두고 김보미의 반격에 고전했다. 4,5세트를 연이어 빼앗긴 김가영은 6세트 3-1로 앞선 상황에서 6이닝째 하이런 6점으로 우승에 두 걸음 앞으로 다가섰고 다음 이닝 옆돌리기와 대회전을 연달아 성공, 다시 한 번 챔피언에 등극했다.

PBA에 따르면 김가영은 우승 후 기자회견에서 "경기 중반부에 다소 위태위태했다. 위기를 극복하고 우승해서 기쁘다. 그동안 부담이 없었던 건 아니다. 부담을 계속 느끼면서 경기하다 보니 부담에 조금이나마 익숙해졌다"며 "결승전 초반부에 집중을 잘했는데, 중반부터 해이해진 건 다소 아쉽다. 실수한 뒤 집중력이 다소 떨어졌다. 그래도 점점 발전하고 있는 거 같아서 만족할 만한 투어였다"고 소감을 밝혔다.

5연속 우승 비결에 대해선 "운이 좋았다(웃음).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이렇게까지 연속으로 우승할 수 있는 비결 같은 건 없다"며 "위기도 굉장히 많았다. 물 흐르듯이 5연속 우승한 게 아니다. 내 노력으로 위기를 극복한 순간도 있겠지만 운도 분명히 있었다"고 자세를 낮췄다.

김가영의 가장 큰 장점은 놀라운 집중력과 빼어난 감각을 넘어서는 훈련량이다. 지독한 연습벌레로 유명한 김가영의 훈련 방식에도 주목해 봐야 할 부분이 있다. 그는 "공의 원리를 찾는 데 집중한다. 기본기를 다지는 데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아니다. 공의 원리와 기본기는 다르다. 공의 구름 같은 것을 연구한다"고 말했다. '연구'라는 표현에서 그가 당구를 대하는 진지한 자세를 읽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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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피언샷을 성공시킨 뒤 김가영이 포효하고 있다. /사진=PBA 투어 제공
모두 같은 프로이고 정상의 기량을 갖추고 있음에도 큰 무대에서 유달리 빛나는 집중력을 뽐내는 이유도 확인할 수 있었다. 김가영은 "연습 경기보다는 훈련에 시간을 더 많이 투자한다. 연습 경기를 통해 공을 보는 눈은 발전할 수 있다. 하지만 훈련량이 떨어지면 눈에 보인다고 해서 그 공을 칠 수는 없다"며 "경기에 굶주리게 하려는 복안도 있다. 경기를 많이 소화하면 경기에 젖는다. 연습을 많이 하다가 경기를 한 번씩 소화하면 한 경기, 한 경기에 더 집중한다. 결국 개인의 성향과 특성에 맞춰서 연습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더 좋은 결과를 위한 변화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선수들에게 매우 민감한 큐를 바꾸는 결정도 서슴지 않는다. 김가영은 "다섯 대회에서 큐를 3번 바꿨다. 이번 투어서는 큐 브랜드도 바꿨다. 큐를 교체하는 데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저 새로운 큐를 한 번 써보고 싶었다"면서도 "5년 정도 같은 큐를 사용했고, 내게 더 잘 맞는 큐가 있을까 궁금해서 새로운 시도를 해봤다. 이런 시도가 잘못된 시도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내게 남은 시간이 길지 않다. 지금 바꿔보지 않는다면 언제 바꿔보겠냐 싶었다. 이 큐가 잘 맞는다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분명 장단점이 있다. 큐에 관해서는 심각하게 고민해보겠다. 이런 고민을 해보고 싶어서 바꾸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서 배울 점을 찾는 점도 귀감이 된다. 김가영은 "지난 몇 년간 다양한 사람들에게 배워왔다. 먼저 하나카드 동료들을 먼저 꼽겠다"며 "드림투어(2부) 소속의 제 친구인 차경회 선수도 정말 많은 도움을 준다. 차경회 선수가 팀 동료들보다 뛰어난 기량을 가지고 있지는 않더라도 내게 가감 없이 조언해 준다. 무라트 나지 초클루 선수나 신정주 선수는 나를 정말 잘 챙겨준다. '개인투어는 잘하면서 팀리그는 못한다'고 장난도 친다. 자극을 받으면서 좋은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고 전했다.

더 이상 여자부에선 이룰 게 없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적수도, 더 이뤄낼 커리어도 없다. 그만큼 압도적이다. 남자 대회 출전 생각은 없을까. 김가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단호하게) 전혀 없다. PBA 선수들과 경쟁할 수준이 안 된다. 내가 PBA에서 뛰는 것은 물을 흐리는 셈"이라며 "PBA서는 애버리지 1.5 이상 기록할 수 있는 선수들이 경쟁한다. 이제 1.2, 1.3 기록하는 선수가 그들과 경쟁하겠다는 것은 옳지 않다. 정말 열심히 연습해서, 행여나 애버리지 1.5를 기록한다면 물을 흐리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가능성은 열어두면서도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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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 확정 후 트로피를 들어올리는 김가영. /사진=PBA 투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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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영(가운데)과 장상진 PBA 부총재(왼쪽), 최철규 강원랜드 대표이사 직무대행. /사진=PBA 투어 제공
'여제'는 여전히 부족한 점만 바라보며 성장을 꿈꾼다. "3쿠션을 시작할 때는 목표 애버리지 1.0이었다. 당시 여자 선수 중 1점대 애버리지인 선수가 없었다. 점차 애버리지 1.2까지 목표를 높였다. 할 수 있는 곳까지 열심히 달려보는 것"이라며 "가끔은 목표가 너무 낮다고 느낄 때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애버리지 2.0 같은 수치는 너무 터무니없지 않나. 앞선 질문서 내게 남은 시간이 적다고 말한 것도 고삐를 당기기 위한 자기 암시"라고 밝혔다.

반면 김보미는 지난 시즌 왕중왕전(SK렌터카 제주특별자치도 월드챔피언십) 결승서 김가영에 패한 이후 266일(8개월 22일) 만에 설욕전에 나섰으나 또 한 번 고배를 마셨다. 그 또한 인정할 수밖에 없는 높은 벽이었다.

김보미는 "오히려 김가영 선수를 만난 게 정말 좋았다. 결승전에서는 강호를 만나고 싶다. 100번 만나 100번 지더라도 김가영 선수가 올라온 게 좋았다. 김가영 선수를 상대할 준비를 계속 하고 있었다"며 "김가영 선수를 이기기 위해서는 연습과 더불어 자기 관리와 멘탈 훈련도 열심히 해야 한다. 김가영 선수의 경력은 어마어마하다. 포켓볼 선수 때부터 대단한 기록을 세워왔다. 실력은 연습으로 채울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경험을 쌓으면서 내공을 키워야 김가영 선수라는 벽을 부술 수 있을 것이다(웃음). LPBA 어느 선수도 결과와 경기력까지 완벽하게 김가영 선수를 이길 수는 없다"고 존중을 표했다.

한 경기 최고 애버리지를 기록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웰컴톱랭킹'(상금 200만원)은 PQ(2차예선)라운드에서 송민지를 상대로 애버리지 2.778을 달성한 최연주가 수상했다.

한편 대회 마지막날인 9일에는 PBA 준결승전과 결승전이 진행된다. 오후 12시 김영원-다비드 사파타(스페인·우리금융캐피탈)에 이어 오후 3시 김현우1(NH농협카드)과 다비드 마르티네스(스페인·크라운해태)가 결승 진출을 두고 격돌한다. 준결승전 승자는 밤 9시 우승 상금 1억원을 두고 7전 4선승제 결승전을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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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영이 트로피에 입을 맞추고 있다. /사진=PBA 투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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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영(가운데)이 우승 후 부모님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PBA 투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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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호근 | oranc317@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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