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은 2015년 군함도의 UNESCO 세계유산 등재 당시 "한국인 강제동원과 노역 사실을 적시하고, 희생자를 기리는 조치를 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약속했다. 그때로부터 7년이 지난 2022년 현재까지 일본은 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2021년 UNESCO가 현장조사에 이어 약속 불이행을 사유로 "강한 유감"을 표명해도 오불관언이다. 더 나아가서 일본은 지금 또 다른 한국인 강제 노역 현장인 사도 광산의 UNESCO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UNESCO가 일본이 제출한 등재자료가 불충분하다고 심사를 보류하자 2024년에 등재를 위한 추천서를 다시 제출하겠다며 정부 차원의 강한 의지를 밝혔다. 이에 대해 한국은 물론이고 주변국인 러시아까지 적극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다.
스에마츠 신스케(末松信介) 문부과학대신은"UNESCO 사무국 심사결과 추천서 일부에 미흡한 점이 있다는 의견이 제시됐다"고 공개적으로 밝혀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는 것 같은 참으로 흔치 않은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UNESCO는 2009년 6월 조선왕릉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앞으로의 발전적 보존을 위해, 일부 훼손된 능역의 원형 보존, 개발압력에 따른 완충구역의 적절한 보존지침 마련 및 시행, 종합적인 관광계획 및 안내해설 체계 마련 등을 권고했다.
당시에 지정된 40기의 조선왕릉 중 김포의 장릉(인조의 아버지 원종과 부인 인현왕후의 능)이 위기에 처해 있다.
핵심은 인근에 건설된 '민간아파트가 장릉의 역사문화환경권(주변의 개발압력으로부터 문화유산을 보존할 수 있는 완충구역의 적절한 보존권)을 침해하는가?'다. 이 문제를 다투는 법적 분쟁절차가 지금 진행되고 있다.
향후 사법부의 판결에 따라서는 2004년 세계유산으로 등재 되었다가 2009년 세계유산 목록에서 삭제된 독일의 "드레스덴 엘베계곡"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엘베계곡 양쪽을 연결하는 800m 길이의 다리 건설 강행으로 결국 "드레스덴 엘베계곡"은 세계유산 목록에서 퇴출당한 것이다.
조선왕릉은 엘베계곡과는 달리 단일 유산이 아니다. 600년 가까운 시차를 두고 조성된 총 42기의 왕릉 중 북한 소재 2기를 제외한 40기를 포함하는 대규모 세계유산군인 것이다. 이 중 어느 하나가 그 자격을 상실한다는 것은 이 위대한 인류 유산의 의미를 크게 감소시킬 것이다.
일본은 전·현직 총리까지 나서서 추진하고 있는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제출한 서류 중 "사도광산의 범위를 표시하는 자료가 미흡하다" 는 대단히 엄중한 내용상 하자를 UNESCO로부터 지적받았다.
우리는 불과 10여 년 전 세계유산으로 등재한 조선왕릉을 우리 손으로 끌어 내릴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는 위험한 과정을 스스로의 의지로 진행하고 있다. 두 가지 사례 모두 문화유산과 관련된 사업의 추진이나 의사결정이 국가에게도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의 근본 원인은 문화유산 고유의 특성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 그 중 일본에게 어려움을 주고 있는 것은 역사성의 문제이다. 주변국들과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공감을 이루어 내지 못한다면 결코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지 못할 것이다. 우리사례는 가치관의 차이와 함께 현행법령의 불완전성에 그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한번 훼손되면 영원히 회복이 불가능한 문화유산의 가치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없었고, 관련 법령이 불완전할 때 그 불완전성을 해소하기 위한 관계기관간의 소통이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경복궁과 함께 북악산 아래 문화명소로 자리 잡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건립 당시의 일이다. 부지 내에 조성되어 있던 테니스장이 문제를 일으켰다. 테니스장의 표면 포장재를 제거하자 거대한 건물의 초석들이 질서정연한 모습으로 드러났다.
1981년 신군부가 테니스장 건립을 위해 조선의 종친부 건물인 경근당과 옥첩당을 정독도서관 인근 부지로 옮기면서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초석들은 손대지 않고 그대로 놓아두었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이 아름답고 유서 깊은 건물들은 원래의 제자리를 되찾았다.
이런 경우는 극히 드믄 사례로 이 분야의 사람들은 "기적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당시 인근 주민들과 상인들의 적극적인 지원과 협력으로 미술관과 주변 지역을 분리하는 담장을 최소화해 열린 문화 환경을 조성할 수 있었는데 그 후 공공기관 건립 시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한다.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다. 미술관 소재지가 될 종로구청 도시경관과 조명심의위원회부터, 서울시 문화재위원회,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까지 그야말로 각양각색의 관문을 쉴 새 없이 돌파하고 나가야만 했다.
당시 대통령의 공약사업이며, 문화행정을 총괄하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제1순위 정책사업을 추진하는 것도 이렇게 힘들었는데 민간영역에서 문화유산과 관련된 일을 추진하는 것은 얼마나 힘들까? 최근의 장릉사태를 보면서 문화재행정의 어려움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게 된다.
이제 문화재행정 분야에서도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갖춘 여러 전문가들이 정부와 민간의 간격을 좁히는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하며 활발하게 일하고 있다. 필자가 공동대표로 일하고 있는 행정사법인 CST에도 국내에서 손에 꼽을 수 있는 문화재행정의 전문가들이 같이 활동하고 있다.
-행정사법인 CST 대표 박영대-
문화체육 전문 행정사 법인 CST는
문화예술, 콘텐츠, 저작권, 체육, 관광, 종교, 문화재 관련 정부기관, 산하단체의 지원이나 협력이 필요 한 전반 사항에 대해서 문서와 절차 등에 관한 행정관련 기술적인 지원을 포괄적으로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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