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영업자들 사이에서 '권리금'은 단순한 돈이 아니라 그간의 노력과 신용이 쌓인 영업적 가치의 총체다. 이러한 권리금을 지불하고 영업을 양수하는 과정에서, 세금 문제나 개인 신용 문제로 인해 실제 운영자와 계약서상 명의자가 다른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존재한다.
문제는 이 '실질 영업주'가 영업을 양도하여 막대한 권리금을 챙긴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인근에 동종 영업을 재개할 때 발생한다. '실질 영업주'는 권리금 계약서상 양도인 명의와 다른 제3자(배우자나 친지 등)의 명의를 빌려 교묘하게 법망을 피하려 시도한다. 이 경우 영업양수인은 막대한 금전적 손해와 배신감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우리 법원은 이러한 '명의신탁' 뒤에 숨은 실질적인 법률관계를 꿰뚫어 보는 '실질설'의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법 제41조, 계약서에 없어도 '10년'의 족쇄
우선, 영업양도계약서에 '경업을 금지한다'는 특약이 없더라도 실망할 필요가 없다. 우리 상법 제41조 제1항은 영업양도인의 경업금지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영업양도 사실 자체가 인정된다면, 양도인은 다른 약정이 없는 한 10년간 동일 지역 및 인접 지역에서 동종 영업을 할 수 없다.
이는 양도인이 영업상의 노하우나 고객 리스트 등 유·무형의 자산을 이용해 부당하게 양수인의 영업을 침해하는 것을 방지하고, 양수인이 지불한 권리금의 가치를 보호하기 위한 강력한 조항이다.
법원은 '실질적 양도인'을 가려낸다
소송의 첫 번째 관문은 '과연 누가 진짜 양도인인가'이다. 계약서에는 B(명의를 빌려준 사람)의 이름만 적혀있는데, 어떻게 A(실질적 양도인)에게 책임을 지울 수 있을까?
법원은 계약의 형식적인 문구에만 갇히지 않고,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와 거래의 실질을 파악하여 법률관계를 판단한다.
실제 재판에서는 '영업양도 계약을 누가 주도적으로 교섭했는지'(문자, 녹취), '영업양도 대금이 실질적으로 누구에게 귀속되었는지'(계좌이체 내역), '기존 영업을 누가 실질적으로 지배·운영했는지'(직원, 거래처 진술) 등을 종합적으로 심리한다.
이 과정에서 A가 실질적 양도인으로 특정된다면, A는 계약서에 이름이 없더라도 상법상 경업금지의무를 부담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
'제3자 명의'라는 방패도 뚫을 수 있다
A의 책임을 인정한다 해도, A가 '새 가게는 내 것이 아니라 D의 것'이라고 주장하면 어떻게 될까? 이 역시 법원은 실질을 본다.
최근 창원지방법원의 한 가처분 결정은 동업 관계를 청산하며 경업금지약정을 한 채무자가 '배우자' 명의로 회사를 설립해 동종 영업을 한 사안에서, 제반 사정을 근거로 신설 회사가 실질적으로 채무자의 회사라고 보아 경업금지 가처분을 인용했다.
즉, ▲새 가게의 개업 자금 출처가 A라는 점 ▲A가 인테리어, 직원 채용 등 개업 과정을 주도한 점 ▲명의자인 D가 A의 가족이나 지인으로 실질적 운영 능력이 없는 '바지사장'에 불과한 점 등이 입증된다면, D 명의의 영업은 곧 A의 경업금지의무 위반 행위로 판단될 수 있다.
'실질'을 입증할 '증거'가 핵심
영업양도 계약은 단순한 서류 교환이 아닌, 영업상의 자산과 신뢰를 이전하는 중대한 법률행위다. 억울하게 피해를 본 양수인이라면 계약서에 이름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이 싸움의 성패는 결국 '실질'을 입증할 객관적인 증거에 달려있다. 계약 당시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한 줄, 계좌이체 내역 하나가 수억 원의 권리금을 지키는 결정적 열쇠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만약 유사한 분쟁으로 고통받고 있다면, 신속히 증거를 확보하여 법률 전문가의 조력을 받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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