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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탁의 천사', 연기자 하하의 재발견

발행:
김경욱 기자
사진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다.'


고교시절, 친구들의 책상 위나 독서실 책상 한 귀퉁이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던 글귀다. 아마도 이 아포리즘이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은 하루를 소중히 생각하고 헛되이 보내지 말라는 것일 게다. 하지만 요즘 이 경구는 초등학교 교실에까지(초등학생들에게 까지 이런 것을 강요하는 선생님은 좀 너무했다는 생각이 든다) 적혀져 있을 정도로 이제는 흔하디 흔한 말이 되어버렸다. 때문에 이는 그 예전과 달리 그리 큰 감동을 주지 못한다.


영화 '원탁의 천사'. 여기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가 있다. 어디 자식 사랑하지 않는 아버지가 있냐고 반문할지 모르나 요즘 세상이 어디 그렇던가. 얼마전 시끄럽게 운다고 생후 50일 된 자식을 때려 숨지게 한 아버지가 있었던가 하면, 몇해 전 보험금을 타기위해 자식의 손가락을 자른 아버지가 있기도 했다. 그러니 이 다소 엽기적인 아버지들 사이에서 온전한 정신을 가진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으리라.


어릴 적 읽은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의 '원탁의 기사'를 연상케 하는 이 영화 제목에서 원탁(이민우 분)은 다름 아닌 주인공의 이름이다. 영화 초반 자식을 너무나 사랑하는 아버지(임하룡 분)는 출소를 딱! 하루 남겨두고 재소자들과 발야구를 하다 그만 유명을 달리한다.


그런데 이 아버지, 아마 군대도 안 갔다 왔나보다.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할 때 철딱서니 없이 발야구가 웬 말인가. 주장을 시켜주겠다는 말에 혹 해서 들어선 발야구장. 결국 이 아버지는 아들의 사진을 손에 꼭 쥐고 그 옛날의 소중한 추억을 눈물로 회상하며 눈을 감는다. 사인은 뇌진탕.


역시 아버지는 아버지였다. 그는 죽은 뒤 빨리 천국으로 가자고 재촉하는 천사의 요구를 거부한다. 하긴 자유의 몸을 하루 남겨두고 죽은 것이 억울할 법도 하겠다. 그렇지만 이 아버지는 그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그토록 보고 팠던 아들을 남겨두고 떠나는 것이 힘들어 지옥행을 감수하고 '무대뽀'로 고집을 부린다. '잠시만이라도 아들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게 해 달라'고.


영화는 사랑하는 아들을 두고 못내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아버지가 믿음이 안가는 어설픈 천사의 실수로 엉뚱하게 진짜 18살 아들의 동갑내기로 환생하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코믹하게 그린다. 몸은 18살, 마음은 48살인 환생한 아버지(하동훈)는 갖은 굴욕에도 불구하고 아들과 친한 친구가 되기 위해 온 몸을 던진다. "목숨 걸고 찍었다"는 하동훈의 증언은 영화에서 특히 그가 맞는 장면이 많았던 점을 기억한다면 결코 거짓이 아니다.


영화의 홍보는 철저히 스크린에 데뷔하는 '신화'의 이민우에게 맞춰져 있다. 하지만 영화의 흐름을 주도하고 관객을 완벽하게 웃겼다가 울리는 역은 다름 아닌 하하 하동훈의 몫. 스크린 속 이민우의 빠른 대사와 과잉된 감정연기는 아직 2% 부족해 보인다. 진지한 아버지 역을 소화해야 할 임하룡 역시 대사에 힘이 많이 빠져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빛을 발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하동훈의 재발견이다.


제작진의 고위 관계자는 첫 시사회 무대인사에서 우스개 소리로 "800만 관객 동원의 임하룡, 600만 관객 동원의 김상중, 말이 필요없는 신화의 이민우 그리고 대충 하동훈 모두 잘해 줬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이 '대충' 하동훈은 그동한 쇼프로그램에서 보여준 코믹한 웃음 외에도 감칠맛 나는 눈물연기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아니 하하가?' 라는 의문이 들 법하지만 역설적으로 '손 대면 톡하고' 눈물이 터질 것 같은 배우들과 달리 그의 투박함은 또 다른 눈물연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또래의 이민우를 바라보며 40대 아버지 연기를 선사하는 하동훈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코끝이 찡해진다.


아들을 눈 앞에 두고도 아들이라 부르지 못하는 아버지. 자식을 위해 무조건적인 사랑을 펼치는 아버지는 비록 외모는 18세 고교생이지만 그 마음만은 모든 것을 다주고도 못줘서 미안해하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사랑하는 아들과 부인을 위해 마지막 선물을 주고 떠나는 영화 속 아버지를 보면서 다시 한번 더.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란다. 죽어서 구천을 떠돌지 않기 위해서라도 후회없는 삶을 사시라. 24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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