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이 마음을 고쳐먹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쪽 팔려서든, 대의 명분에서든, 이익을 위해서든 칼을 뺐으면 끝을 봐야 한다.
뽑아든 칼을 무우라도 썰지 않고 도로 칼집에 집어 넣기란 대한민국에서 남자로 자라난 사람에게는 무척 남세스러운 일이다. 더욱이 남자가 남자다워야 남자라고 강조되는 특정 조직에 속한 남자에게는 허공만 가르는 칼질은 삽질에 불과하다.
오는 9일 개봉하는 영화 '열혈남아'(감독 이정범ㆍ제작 싸이더스FNH)는 그런 남자의 이야기이다. 그닥 열혈스럽지 못한 남자가 열혈스러운 일을 저지르려다 뭔가 목에 생선가시처럼 걸리는 게 있어 포기한다. 영화는 그 생선가시를 어머니라고 말한다.
친구의 복수를 위해 서울에서 땅끝까지 내려간 재문(설경구)은 조폭이라기보다는 무서운 양아치이다. 말 끝마다 침이나 퉤퉤 뱉다가 처음 본 다방 아가씨를 희롱이나 하고, 그를 돕기 위해 함께 온 부하에게 정식 겨루기로 지자 주먹이나 휘두르고, 그러다 동네 꼬마 아이들에게 비웃음거리가 되고 마는.
그런 그가 복수를 해야 할 상대의 어머니(나문희)를 만난다. 처음에는 염탐을 하러 만나지만 점차 그에게서 자신의 어머니를 느낀다. 심수봉의 노래와 꽃무늬 셔츠를 맞교환하며 스멀스멀 웃음이 피어난다. 그러다 복수할 상대가 폭우와 함께 찾아온다.
설경구와 나문희, 두 배우를 빼놓고 '열혈남아'를 논할 수는 없다. 설경구는 '파이란'의 최민식과는 또 다른 무력한 조폭을 영화 속에 잘 그려냈다. 도피처를 찾고 싶은 마음을 겉으로 드러낸 게 '파이란'의 조폭 최민식이라면, '열혈남아'의 설경구는 도망쳤던 게 쪽 팔려서 복수를 꿈꾸는 조폭이다. 하지만 둘은 조직 세계에서 겉도는, 그래서 어딘가로 탈출을 꿈꾸는, 다른 듯 닮은 이란성 쌍둥이다. 여러 의미에서 최민식과 대척점에 있는 설경구가 재문을 맡은 건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나문희는 바다 같은 배우이다. 폭과 너비를 쉽사리 잴 수 없다. 방송의 틀 속에서는 '돌리고'를 외치는 철없는 어머니인 그가 영화 속에서는 아들을 해치러 온 사내를 또 다른 자식으로 받아들이는 속 깊은 어머니로 분한다. 바다라는 한자에 어머니가 담겨 있는 것처럼 바다를 닮은 배우 나문희가 어머니의 모습을 연기하는 것은 그래서 당연하다.
'열혈남아'를 통해 조한선의 성장을 발견한 것은 뜻밖의 기쁨이다. 그동안 잘생겼을 뿐 평면적이었던 그는 이 영화를 통해 비로서 입체적인 모습을 찾았다.
문제는 배우들의 호연은 분명하나 영화의 이음새가 영 촘촘하지 못한 데 있다. 재문이 마음을 고쳐먹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지만 잘 달리던 도로가 갑자기 4차선에서 2차선으로 줄어든 것처럼 느닷없고 영문 모를 순간이 곳곳에 존재한다.
사람이 마음을 고쳐먹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쉽지 않은 것을 보여주기란 역시 쉽지 않은 법이다. '열혈남아'는 쉽지 않은 이야기를 결국 쉽게 풀지 못했다. 그래서 아쉽다. 그래도 영화를 보고 나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고는 싶어진다.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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