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나 한 때는 동화 같은 사랑을 꿈꾼다. 어디선가 운명의 상대가 나타나서 첫눈에 반하고, 함께 역경을 헤쳐 나가는 말 그대로 '동화' 같은 사랑 말이다. 그러나 마냥 달콤할 것 같았던 현실의 연애는 씁쓸하게 끝이 나곤 한다. 내 사랑은 특별한 것 같았지만 알고 보니 그저 그런 보통의 연애였더라.
두 편의 로맨스 영화가 있다. 너무나 리얼해서 마음이 콕콕 쑤시는 로맨틱 코미디 '연애의 온도'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이종 로맨스 '웜 바디스'. 사랑이라는 같은 소재로 현실과 동화의 양 극단을 달리는 두 편의 로맨스, 씁쓸한 아메리카노와 달콤한 케이크 같이 묘하게 어울리는 조합이다.
3년간의 비밀연애의 끝은 참담했다. 밤마다 눈물을 줄줄 흘리는 것은 기본이요, 서로의 SNS 염탐은 애교다. 사줬던 선물을 돌려달라고 억지를 쓰고, 데이트 비용을 받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동희(이민기 분)와 영(김민희 분)의 모습을 마냥 욕할 수 없는 것은 내게도 그런 기억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연애의 온도'는 사소한 다툼으로 헤어진 커플이 서로를 잊지 못해 다시 만나고, 또 다시 위기를 겪는 지난한 연애의 현실을 그대로 담았다. '연애의 온도'의 매력은 이 평범한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게, 유쾌하게 그렸다는 것이다.
노덕 감독은 겉으로는 멀쩡한 척하지만 속은 문드러지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인터뷰라는 형식을 통해 표현했다. 인터뷰에서 영은 "왜 슬퍼야 돼요? 기분 되게 좋은데"라고 웃지만 곧 침대에 엎드려 엉엉 우는 반전의 모습이 이어지니 웃음이 터질 수밖에.
영이 동희의 새로운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고, 뒤를 밟는 것은 흔히 행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까지 행동하는 영의 마음에는 누구나 공감하게 된다. 다른 남자와 웃고 떠드는 영을 보고 일부러 맥주를 쏟아버리는 동희는 또 어떤가. 한없이 유치한 처사지만 누군가는 그 장면을 보고 찔리기도 할 것이다.
'구남친' 짓을 일삼는 동희가 얄미울 법도 한데, 그것을 이민기가 연기하니 미워 할 수 있나. 평소 연애를 할 때는 감정 표현을 하지 않는다는 이민기가 불같이 뜨겁다가 한 없이 차가워지는 연애의 진폭을 연기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하이틴 스타에서 이제는 배우의 향기가 물씬 나는 김민희의 연기도 '화차'와는 다른 의미로 농익었다. 과하게 슬퍼 보이려고 하지도, 과하게 사랑스러워 보이려고도 하지 않는 김민희의 연기는 덤덤해서 오히려 마음을 찌른다. 오는 21일 개봉. 다소 의문이 남지만 청소년 관람불가다.
'연애의 온도'가 현실 연애의 끝판왕이라면 지난 14일 개봉한 '웜 바디스'는 비현실적 동화의 정점이다. 뱀파이어와 소녀의 사랑으로 재미를 봤던 서밋 엔터테인먼트, 이번에는 좀비와 소녀의 사랑이라는 색다른 이종 로맨스를 내놓았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좀비 R(니콜라스 홀트)이 좀비 구역에 온 소녀 줄리(테레사 팔머)를 사랑하게 되며 좀비 바이러스가 치유되어 가는 과정이다.
좀비영화의 탈을 썼지만 '웜 바디스'는 누가 뭐래도 로맨스영화다. R이 어떻게 좀비가 됐는지, 어떤 이유로 이들이 벽 뒤에서 고립됐는지 중요하지 않다. 영화가 온 몸으로 말하는 것은 '사랑은 모든 걸 바꿀 수 있다'는 메시지다.
'웜 바디스'는 인간의 시각이 아닌 좀비의 시각에서 이야기를 끌고 간다는 점에서 관객의 뒤통수를 때린다. 겉보기에는 그저 느릿느릿 걷고 있을 뿐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은 좀비들이 '시계 멋진데?' '왜 이렇게 느리게 걷는지 나도 답답하다' 등의 혼잣말을 하고 있다니! 웃음이 터질 수밖에. 말은 하지 못하지만 나름대로 줄리를 '꼬시기' 위해 술수를 쓰는 R의 속사정은 또 한 번 허를 찌른다.
'웜 바디스'의 미덕이 잘생긴 좀비와 미소녀의 로맨스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의 사랑에 다른 좀비들까지 영향을 받고 치유되어가며 '웜 바디스'가 말하는 '사랑'은 남녀 간의 사랑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좀비 액션 영화를 기대하고 극장을 찾을 관객이라면 실망할 수도 있다. 좀비 영화 마니아들이 열광하는 기괴하고 잔혹한 리얼 좀비영화에 비하면 '웜 바디스'의 좀비들은 귀여운 수준이다.
영국 드라마 '스킨스' 등을 통해 니콜라스 홀트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라면 그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 것. 보통의 '민폐녀'들과는 다른 테레사 팔머도 주목할 만하다. 96분.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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