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니메이션 마니아들에게는 설레는 5월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고전인 '009 사이보그'가 지난 9일 개봉했고 사이버 펑크의 원조격인 '공각기동대'의 극장판 신작인 '공각기동대 S.A.C 3D'도 오는 23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거장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이렇게 클 줄 알았다면 싹을 미리 잘라버릴 걸 그랬다"라는 농담을 할 정도로 인정받고 있는 카미야마 켄지(47)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한국 팬들을 직접 만나는 것이라는 그는 이날 GV를 앞두고 기대감을 안고 있었다.
"이때 까지는 거의 일본을 무대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었어요. 하지만 '009 사이보그'는 각 캐릭터들의 출신국이 다르죠. 외국을 무대로 처음으로 만든 작품이기도 하고, 글로벌화와 함께 내셔널리즘도 강해지는 면이 있는데 세계 정서를 넣어 만들었기 때문에 한국 관객들이 보는 느낌은 또 다를 것 같아요. 한국 관객들이 어떻게 봐주실지 궁금해요."
일본은 물론 국내에도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고전 애니메이션 두 작품을 다시 만든다는 건 일종의 모험이었다. 카미야마 켄지 감독의 '공각기동대 S.A.C 3D'에서 저작권 문제로 캐릭터 이름을 바꿨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질타를 받을 정도이니 감독의 부담이나 말할 것도 없었다. 카미야마 켄지 감독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팬의 마음으로 돌아갔다.
"두 작품 모두 원작의 인기도 높았고 애니메이션도 시리즈마다 따로 팬이 있을 정도예요. '공각기동대'도 새 작품이 나올 때 마다 기존 시리즈 팬들이 필요 이상으로 경계하는 경우가 많았죠. 부담감은 물론 많이 느꼈습니다. 그걸 극복한 방법은 제가 팬들과 똑같이 이 작품을 보고,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었어요. 그러면서 원작자님들이 어떤 식으로 만들었는지 감을 잡을 수 있었고, 팬들이 어떤 이유로 이 작품을 좋아하는지도 답을 찾을 수 있었죠."
TV애니메이션, 극장판 애니메이션 등으로 수차례 만들어졌던 '009 사이보그', 원작 만화는 이시노모리 쇼타로 작가가 타계하며 끝을 맺지 못했던 결말을 켄지 감독 나름대로 이번 작품에 담았다.
"이번 작품은 속편이라는 느낌은 덜 해요. 원작 만화를 쇼타로 작가님이 다 그려내지 못하셨는데 만약 그였다면 결말을 어떻게 그려내셨을까 라는 생각을 했어요. 제 나름대로 추측을 해서 추측한 내용을 넣어서 만든 작품이죠."
일본 애니메이션 팬들 중 일본 특유의 2D 애니메이션의 감성에 열광하는 사람들도 있다. 카미야마 켄지는 일본 셀 애니메이션의 느낌을 살리면서 공간감을 주는 3D 기법을 사용했다.
"처음 '009 사이보그' 제작 의뢰를 받을 때부터 3D로 만들기로 했어요. 픽사나 드림웍스같이 아주 입체적인 3D를 만들 수도 있지만 일본이 가장 잘하는 방법인 셀 애니메이션의 2D 느낌을 살리면서 3D로 만드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번 작품들은 2D 감성과 3D의 느낌을 모두 받을 수 있죠."
'공각기동대'가 처음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것이 1995년, '009 사이보그'는 원작 만화가 연재 된 것이 무려 1964년이다. 당시에는 사이보그, 넷 등의 개념이 생소했지만 지금은 이미 익숙해져버렸다. 공상과학을 그리는 SF 장르에서는 다소 신선함이 떨어질 수 있는 위험도 있을 터, 카미야마 감독은 오히려 이 점을 좋게 생각했다.
"'공각기동대'는 처음 만들어졌을 때 네트워크가 처음 생겼을 무렵이었어요. 지금은 익숙하지만요. 저는 아무도 모르는 테크놀로지를 그려내는 것보다 우리가 앞으로 체험해 나갈 인프라로 인해 생겨나는 미래를 상상했어요. 이 작품을 보면서 리얼리티를 느끼길 바랬죠. 미지의 사이언스보다는 가까운 사이언스로 친근감을 느끼게 하자는 것이 '공각기동대 S.A.C 3D'의 출발이었어요."
"'009 사이보그'는 워낙 옛 작품인데 그때는 이 작품이 최첨단을 예상한 것이었어요. '공각기동대'에 비해서도 아날로그적 사이보그죠. 아날로그를 버리고 최첨단의 사이보그를 만든다면 원작의 장점이 없어진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구식 사이보그가 현재 사회에서 살아간다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위기에 대처할 것인지를 작품에 담았어요. 오히려 '009 사이보그'는 SF라기보다 정치적인 액션물이죠."
감독의 작품에는 공통적으로 거대한 사회적 음모와 함께 개인의 자아에 대한 고뇌가 담겨있다. 지금까지 카미야마 켄지 감독은 이 두 가지를 함께 그리려고 노력했다.
"이제까지 모든 작품에서 사회와 개인, 시스템과 개인을 그려왔어요. 왜 그런 모티프를 넣었느냐하면, 사회에 좋은 일이 반드시 개인에게 유익한 것은 아니고, 개인의 이익을 중시하면 그들의 집합체인 사회가 성립이 되지 않는 것들이 있어요. 그런 부분에서 이 두 가지의 충돌이 보편적 테마라고 생각했죠. 항상 묻고 싶은 건 어떤 것이 좋은 답이냐는 것이에요. 일종의 문제제기와 답을 모색해가는 과정을 그리는 거죠."
카미야마 켄지의 작품을 훑어보면 대부분의 작품이 '미래'를 그리고 있다. 지금 현재 그가 상상하는 미래는 어떤 모습인지 물었다. 사이보그와 국가적 음모들을 그렸던 그의 대답은 의외로 '인간'에 달려있다는 것이었다.
"나쁜 미래에 대한 상상도 물론 하죠. 전쟁도 있고, 일본의 경우에는 현재도 지진이 이어지는 불안한 상황이고요. 더 이상은 과학의 힘으로 인간의 행복을 보장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해요. 인간 각자가 어떤 멘탈을 가지느냐가 행복과 이어지는 것이죠. 불행한 사태에 대해 어떻게 대응을 하느냐에 따라 모두의 행복이 만들어 질수도, 아닐수도 있죠. 이제는 개인의 마음이 어떤 식으로 향해가는 지에 따라 좋은 미래가 올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공각기동대'가 많은 관객들에게 던겼던 인상적인 질문이 있다. 바로 '왜곡 됐더라도 행복한 기억이 좋은 가, 학대받는 현실이라도 사실을 아는 것이 나은 가'라는 것이다. 카미야마 켄지 감독은 그 답을 찾았을까?
"굳이 말하자면 괴롭다고 해도 원래의 기억을 가지고 극복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어느 세계에서나 사회 시스템의 운영을 위해 개인이 말살되는 부분이 존재하는데, 근본적으로 문제가 해결 되지 못한다면 기억을 바꿔서 개인의 목숨, 진정한 삶을 구원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택할 수 있는 답이 아닐까. 라는 것이 이번에 '공각기동대 S.A.C 3D'를 만들면서 제가 내린 괴로운 답이에요(웃음)."
지금까지 거대 음모와 자아의 문제, 미래의 테크놀로지를 작품에 담았던 켄지 감독, 그의 다음 작품에는 어떤 세계관이 담길지 궁금해졌다.
"다음 작품은 가능하면 사실적인 것 보다는 판타지를 담은 세계관 속에 지금 현신의 문제를 비유적으로 그려내고 싶어요. 가능하면 만화적인 느낌을 많이 살리고 싶고요. 분명 '009 사이보그'와는 다를 거예요. 하지만 테마는 늘 그려왔던 것들일 거예요. 겉모습은 다를 수 있지만요."
<저작권자 ©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