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저에서 시작해 톱스타의 반열에 오르게 된 남자가 과도한 욕심으로 점점 추락한다. 영화 '톱스타'의 이야기이다. 어느 정도는 익숙한 이야기 구조를 가진 '톱스타'지만 주인공 엄태웅(39)의 모습만큼은 신선하다. 화려한 옷을 입고, 진한 메이크업을 한 외모도 새롭지만 그보다 더 새로운 것은 착하고 수더분한 모습을 벗어나 욕망에 사로잡힌 광적인 모습이다.
'톱스타'의 시사회가 열린 다음 날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엄태웅을 만났다. KBS 2TV '1박 2일'에도 출연했던 애견 새봄이도 함께였다.
영화 속 화려한 비주얼에 놀랐다고 하니 그는 "놀라시기도 하고 웃기도 하시더라"라며 머쓱해했다. 영화에서 화려한 모습을 거의 보인 적이 없는 엄태웅을 변신시킨 건 박중훈 감독의 의도였다.
"감독님이 저희에게 무조건 (소)이현이는 예쁘게, (김)민준이와 저는 멋있게 찍어주고 싶다고 하셨어요. 배우의 이야기인 것도 있고. 물론 리얼하게 초췌한 모습도 있는데 배우로 나오는 영화 한편 정도는 멋지게 찍어주고 싶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저야 좋죠.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내 모습이 영화로 찍어서 남아있다는 건 좋은 것 같아요."
'톱스타'에서 그가 연기한 태식은 후반부로 갈수록 욕심을 넘어 명예와 인기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가 하는 행동도 범죄 수준으로 과격해진다. 물론 과장된 부분도 있지만 영화 속 배우들의 모습은 박중훈의 오랜 연기생활에서 겪은 에피소드들이 많았다.
"시나리오 보면서도, 찍으면서도 '이건 진짜 말도 안 되는 것 같아'라는 느낌은 못 받았어요. 캐릭터들도 이런 사람 본 적은 있으니까요. 수로 형이 저한테 '얼굴에 덕지덕지 붙은 욕심 좀 봐라'하는 부분이 있는데 예전에 중훈형이 들었던 얘기래요. 실제로 감독이 다 경험을 한 것들이니까 그 이야기를 쓴다고 한들 비현실적일 수가 없는 거죠.(소이현처럼 예쁜 제작자는 비현실적이지 않나?) 맞아요. 그 부분은 그래요(웃음)."
평소에는 화를 참는 다는 엄태웅. 이번 영화에서는 감정을 극대화해서 분출해야하는 장면이 많았다. 스태프들에게 화를 내는 장면은 그에게 가장 힘든 신 중 하나였다.
"평소에 이 정도로 소리를 내서 화를 내지 않으니까 그 장면이 힘들었어요. 사실 그 장면에서 욕을 막 하는데 나중에 후시로 다르게 녹음을 했어요. 15세 관람가를 위해서(웃음). 화내고 윽박지르는 게 정말 힘든 것 같아요. 평소에 저도 화를 내기는 하죠. 그렇지만 화가 난다고 표현하기 보다는 참는 스타일이에요."
실제로는 동생인 김민준을 영화에서는 '형님'이라고 깍듯하게 부른다. 동생인 김민준이 평소에도 오히려 형처럼 잘 챙겨준단다.
"민준이가 예전에 운동을 해서 그런지 잘 챙겨주는 기질이 있어요. 저 같은 경우는 집에서 막내고 전혀 생각을 못하는 것들도 있고요. 오토바이 신을 찍을 때도 헬멧이 좀 분위기랑 안 맞는 것이 준비됐는데. 민준이가 '기다려봐' 하더니 집에 가서 헬멧을 가지고 오기도 했어요. 밤에 집에 있으면 갑자기 나와 보라고 해서 나가보면 아기 옷이나 여행 다녀와서 산 선물 같은 걸 챙겨주기도 해요."
화려한 스타의 모습도 눈에 띄지만 톱스타 원준(김민준 분)의 매니저로 뛰며 배우를 꿈꾸던 시절은 어딘가 마음이 짠해진다. 스타를 꿈꾸는 신인의 마음, 엄태웅이라고 모를 수가 있으랴. 그의 신인시절을 함께 회상해봤다.
"'실미도'를 찍을 때 설경구형이 정말 부러웠어요. 연기를 하는 걸 보면서 어쩜 저렇게 연기를 잘하나 부럽기도 했고, 그 정도 위치에서 배우로서 대우를 받는 것도 부러웠죠. 처음으로 영화 개런티로 2000만 원을 받은 적이 있는데 생각보다 너무 커서 감격했더니 경구형이 '이제 시작이야. 인마' 하시더라고요. 태식을 연기하면서 그런 기억들과 감정들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영화에서 처음으로 여학생들에게 사인을 해주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반듯한 정자체로 이름 세 글자를 꾹꾹 눌러서 쓰고는 돌아서서 글씨를 너무 못 쓴 것 같다고 안절부절하는 모습. 그에게 첫 사인의 기억을 물었다.
"공식적으로는 예전에 정말 잠깐 나온 영화가 있는데 촬영 대기 하고 있는 와중에 어떤 아주머니께서 사인을 해달라고 하셨어요. 저를 잘 모르는데 잘 될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그게 배우로서 처음 한 사인이었던 것 같아요. 비공식적으로 진짜 처음 사인은 정화누나 사인회에 누나를 데리러 갔다가 어떤 여자 분이 사인을 해달라고 하신 거였어요."
작은 단역부터 시작해 스타가 된 지금, 그에게 좌절하는 순간이 있는지 묻자 "매일 그렇다"는 답이 돌아와서 놀랐다. 매일 재능이 없는 것 같아 고뇌하면서도 재미있는 신을 찍고 나면 잠시 잊는다는 엄태웅. 직접 부딪히는 것이 극복하는 방법이란다.
"좌절감을 극복하는 방법은 따로 없어요. 직접 부딪히는 거죠. 맞을 만큼 맞고. 어떤 변명을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지나고 저를 평가하실 때 그 평가를 받고 인정하고, 그러다보면 극복이 되는 것 같아요."
운명의 장난일까. '톱스타'의 개봉일인 오는 24일, 비슷한 소재를 다룬 '배우는 배우다'가 나란히 개봉한다. 신경이 쓰일 법도 한데 그는 이를 신경 쓸 겨를이 없단다.
"그렇게 크게 신경이 쓰이지는 않아요. 저희 영화를 이제 막 공개해서 그게 더 신경이 쓰여요. 궁금한 건 있죠. 우리는 이렇게 그렸는데 '배우는 배우다'는 어떻게 생각을 하고 어떻게 그렸을까, 하는 궁금증이요. 궁금하긴 하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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