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인터뷰]장준환 감독이 전하는 '1987' 뒷이야기

발행:
전형화 기자
장준환 감독/사진제공=CJ E&M
장준환 감독/사진제공=CJ E&M


2003년 '지구를 지켜라'로 장준환 감독이 등장했을 때, 영화계에선 또 한 명의 기대주가 탄생했다는 탄성이 터졌다. 하지만 그 뒤로 '화이'를 내놓을 때까지 꼬박 10년이 걸렸다. '화이'는 문제작이지만 그의 재능을 온전히 드러냈다고 하기엔 아쉬움이 있었다. 그로부터 4년이 흘렀다. 장준환 감독이 마침내 '1987'를 내놨다.


'1987'은 1987년 경찰에 조사를 받던 22살 대학생이 고문으로 죽자, 사건을 은폐하려던 사람들과 진실을 밝히려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고 박종철 열사 사건을 스크린에 옮겼다. 장준환 감독은 '1987'을 때론 무섭게, 더러는 차갑게, 마침내 뜨겁게 만들어냈다. 그의 재능이 비로소 꽃을 피웠다.이 인터뷰는 일부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왜 '1987'을 했나.


▶'1987' 연출 제안을 받았다. 시나리오를 읽는데 악인 한 명을 안타고니스트로 두고 많은 인물들이 싸우고 폭발하는 구조가 재미있었다. 영화적으로 많은 주인공들이 있고, 결국에는 관객들 모두가 자기가 주인공처럼 느낄 수 있었으면 했다.


-'1987'을 선택한 게 소재가 주는 의미가 우선이었나, 영화적 재미가 우선이었나.


▶의미보다는 감성에 끌렸다. '지구를 지켜라' 때부터 그랬는데 어떻게 하면 우리가 지구에서 좀 덜 다치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그런 지점을 고민했다. 그러던 차에 '1987'은 따뜻하고 희망적이고 용기를 주는 이야기였다.


-투자배급사 CJ E&M에서 '1987'을 지난해 10월 즈음, 그러니깐 본격적으로 촛불 시위가 시작되기 전에 투자를 결심했다. 영화를 준비하던 건 그 이전이었는데. 소재 때문에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스러운 점은 없었나. 아내도 배우인 문소리이기에 더 조심스러웠을 수도 있었을텐데.


▶걱정이 왜 없었겠나. 제일 걱정은 만들어질 수 있으냐였다. 연출을 제안한 이우정 우정필름 대표랑 영화를 만드는 노력은 할 수 있는데 만들어지지 않으면 모든 게 무산되는 게 아니냐는 걱정을 나눴다. 저예산으로 만들어야 하나, 규모를 줄여야 하나, 그런 고민을 하다가 그래도 일단 가보자,라고 마음 먹었다. 아내는 같이 걱정도 하고, 격려도 해줬다.


-'1987'은 특정한 주인공이 없는 영화다. 결과적으론 훌륭하게 각 인물들을 조합했지만 주인공 한 명에게 감정을 몰입할 수 없는 구조는 자칫 관객에게 낯설 수도 있다. 연출하는 데 그런 점을 가장 고민했을 것 같은데.


▶이 많은 인물을 계속 관객이 따라 가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게 '1987'의 매력이었다. 재밌는 이유였고. 그런데 관객에겐 익숙하지 않은 구조라 분명 어려움이기도 했다. 나로선 도전이자 매력이었다.


-'1987'은 크게 세 단락으로 나뉜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벌어지고 부검을 해야 한다는 검사와 공안형사들의 대결, 김태리가 연기한 연희와 강동원이 맡은 잘생긴 남학생 역의 만남, 그리고 마지막 종장. 각각 어떻게 설계했나. 초반은 스릴러, 중반은 멜로, 후반은 실화 소재 영화 엔딩 같은 구성인데.


▶일단 박종철로 시작해서 이한열로 끝나는 구조를 갖고 싶었다. 제일 어려운 부분이 긴장감을 만드는 박종철 고문 치사 은폐 서사와 다른 이야기들을 어떻게 엮냐는 점이었다. 이 이야기와 연희의 이야기가 최대한 덜 부자연스럽게 엮으려 했다. 기존 장르적인 작업으로 하면 연희 이야기가 곁가지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1987'이 주는 카타르시스는 마지막에 이야기 자체가 주는 힘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 구조로 밀고 나갔다.


-'1987'은 등장 인물 대부분이 실존인물인데. 허구로 창작한 인물은 연희 정도이고. 연희의 삼촌으로 등장하는 교도관 역의 유해진 캐릭터는 창작에 허구를 더한 것인가.


▶두 명의 교도관을 하나로 엮은 다음 허구를 더했다. 실제로 당시 교도관 중 한 분이 성명서 배포 3일 전에 공안경찰에 잡혀 들어갔다.


-등장인물 대부분이 실존인물인데, 그중에는 여전히 활동 중인 사람들도 있고. 각 배우들이 실존인물을 연기한다는 게, 그리고 감독이 디렉션을 준다는 게 고충이 있었을텐데.


▶'1987' 준비를 비밀리에 진행해서 실존 인물들을 제대로 인터뷰할 수가 없었다. 여느 실화 소재 영화라면 실존 인물들을 인터뷰하고 자료도 참고했을 텐데, 예컨대 김윤석이 맡은 박처장은 그런 자료도 적었다. 그래서 일화들을 참고해서 캐릭터를 창조했다. 공안경찰들이 테니스를 치는데 테니스장에는 소금이 필요하다. 그걸 조달청에서 계속 가져다 써서 조달청 관계자가 그만 하라고 했더니 박처장이 그대로 엎어버렸다는 일화 등이 있어서 참고했다. 테니스장 장면도 그 일화를 참고했다.


-그렇기에 하정우가 맡은 검사, 강동원이 맡은 대학생 등은 그 배우들의 기존 이미지를 그대로 차용한 것 같기도 한데.


▶캐스팅을 할 때 그 사람의 본질과 성격이 영향을 줄 수 있다. 그게 장점일 수도 있고 단점일 수도 있고. 원래 배우의 실제 삶과 성격을 그대로 영화에 갖다 쓰는 걸 잔인하다고 생각한다. 대론 아로노프스키 감독이 '더 레슬러'에 미키 루크를 활용한 것 같은 방식은 나로선 힘들다. 그런 점에선 '1987'이 내게도 어려운 지점이었다. 관객들이 배우들의 기존 이미지로 영화 속 캐릭터를 받아들이는 것도 남다른 경험이기도 하고.


-김우형 촬영감독과 같이 했는데. '1987'를 세 단락으로 나누면 1부,2부,3부가 다 카메라 활용법이 다른데. 특정한 주인공이 없다보니 각 인물에 클로즈업이 더 많기도 하고, 핸드핼드와 원신원컷도 유연한데. 더러 포커스가 나간 것처럼 보이는 부분도 많고.


▶1부,2부,3부가 각각 전달하려는 내용이 다르기에 각각의 카메라 활용을 달리 하려 했다. 1부는 사건을 쫓아가고 인물들이 다이나믹하게 부딪힌다.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지길 바랐다. 그래서 다큐에서 느껴지는 비주얼적인 관습처럼 화면이 구성되길 바랐다. 인물에 집중하려 줌을 쓸 때 일부로 다큐멘터리처럼 포커스가 나가는 것 같이 보이도록 했다. 심도를 얇게 했다. 심지어 렌즈도 빈티지를 사용했다. 당시 자료 화면 같은 느낌을 주도록. 코팅까지 벗겨진 렌즈를 사용하기도 했다.


2부에서는 다른 드라마가 나오니 심도를 깊게 쓰고, 핸드핼드를 이용해 현장감을 주려 했다. 3부에서는 그 모든 걸 섞었다. 김우형 촬영감독님이 정말 대단하다. 거리감과 감정의 깊이가 정확하다. 고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가 유골을 뿌리는 장면을 찍는데 오열하는 장면에서 거리를 두더라. 현장에서 스태프 중에는 클로즈업을 따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나왔다. 하지만 촬영감독님을 믿었다. 과하지 않게 거리를 둔 게 더 감정의 깊이를 느끼도록 만들었다.


-1,2,3부에 따라 색도 다른데.


▶드라마에 따라서 색을 달리 하려 했다. 1부는 과감하게 청색으로, 2부는 밝고, 3부 연대 앞에서는 조금 더 밝게. 톤을 맞추면서도 큰 맥락을 이을 수 있도록 색 설계를 했다.

장준환 감독/사진출처=1987 스틸

-'1987'은 종교적인 메타포가 뚜렷한데. 신의 구원이랄지. 단죄랄지.


▶무신론자는 아니지만 무교다. '1987'에는 애국가도 많이 썼는데 그 가사에 하느님이 보우하사란 게 있지 않나. 신이 있다면 이런 현실에 분노하지 않을까, 징벌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박처장이 설경구가 맡은 김정남을 마침내 잡으려 할 때, 그 때 카메라는 예수님이 스테인드글라스에서 바라보는 시선이다. 그 아래 김정남의 발이 그림자로 비친다. 박처장이 드디어 먹잇감을 발견했다고 잡았다고 느끼는 그 순간, 너는 잡지 못하고 벌을 받을 것이다라는 걸 느끼게 하고 싶었다.


-박종철 고문 치사 장면과 이한열 최루탄 직격 장면은 묘사가 직접적이다. 그리하여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그 장면들은 상업적으로 활용했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는데.


▶많이 순화했다. 진짜 있었던 순간을 관객이 목도하게 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그것보다 같이 슬퍼했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30년 전에 죽은 젊음을 관객이 같이 슬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국뽕이나 민주뽕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바로 뒤의 장면이 명동성당이다. 이런 작은 슬픔이 얼마나 큰 역사적인 물줄기를 이뤘는지를 볼 수 있길 바랐다. 그 장면들을 일부러 잔인하게 찍지는 않았다. 리얼하지만 슬퍼 보이도록 담기를 바랐다.


-여진구가 박종철 열사 역을 맡았는데. 고문 장면 촬영이란 게 안전장치가 있어도 쉽지 않은 법인데.


▶굉장히 신경 썼다. 체온을 체크하고, 언제라도 본인이 못 견디면 결박을 풀고 수조 밖으로 얼굴을 들 수 있도록 했다. 그래도 여진구는 무서웠다고 하더라. 안전장치가 있지만 누군가가 자기 몸을 누르며 집어넣는다는 것 자체가 공포스러웠다고 하더라. 현장에서 지켜보는 것도 엄청나게 힘들었다.


-'1987'이 한편으론 씁쓸한 건, 6월 항쟁을 그렇게 이뤘지만 그 뒤의 역사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민주화를 위해 애썼던 사람들이 그 뒤로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잘 알기 때문이고.


▶사실 이 영화는 우리의 대단한 면을 최대한 밝히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영화의 끝을 그렇게 6월 항쟁이 있고 대통령 직선제를 이뤘지만, 결국은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됐다는 것까지를 담을 수가 없었다. 그랬다면 전혀 다른 영화가 됐을 것이다. 그 광장에 있던 386들이 아파트 값을 올리고 그걸 걱정하고 살고 있다. '1987'이 그래서 그 이후까지를 관객이 같이 돌이켜 보고 생각하기를 바랐다. 비판보다는 슬픈 것 같다. 30년 뒤에 또 다른 광장이 있지만, 그 광장은 87년의 광장과는 다르다.


-분명 '1987' 엔딩의 광장은 2017년 촛불 광장과 맞닿아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1987' 촬영을 할 때 촛불시위가 있고 탄핵이 있었는데, 그런 점을 고려했나.


▶지금의 촛불을 일부러 연상시키려 그 광장을 담은 건 아니다. 6월 항쟁 당시 광장은 하나의 상징이었다. 그 당시 광장은 촛불시위와 달리 폭력적이기도 했다. 권력이 폭력적이다보니 대항하는 쪽도 폭력적일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두 광장의 본질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대규모 군중 장면이 많다. 몹씬이란 게 결코 쉽지 않은데. CG를 넣을 것을 고려하기도 해야 했고. 경험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군중 자체를 캐릭터로 보고 해야 한다고 처음부터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쉽지가 않았다. 여러 사람 중 한 사람이 대충하면 그게 전체에 영향을 준다. 그게 다 보인다. 몹씬을 찍을 때 그 많은 사람들과 어떻게 교감할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한 일일까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개별 배우들과는 많은 교감을 하면서 찍지만 몹씬에선 그게 불가능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되더라. 리허설을 하다가 마이크를 들었다. 군중 장면 촬영을 위해 모인 분들에게 "제가 이 영화를 선택한 건, 여러분들을, 그리고 이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라고 말했다. 당시 날씨가 무척 더웠다. "덥지만 30년 전 그분들을 생각하며 힘차게 해달라"고 했다. 어떤 백마디 말을 한 것보다 그분들이 더 잘 이해하고 함께 해주시더라.


-크레딧에도 올라가지만 문소리가 마지막 엔딩 장면에 "호헌철폐, 독재타도" 선창을 한다. 캐스팅에도 일조했다고 하던데.


▶와이프이자 데뷔 감독이신 문소리님이 현장에 오셔서 많은 도움을 주셨다.(웃음) 젊은 배우들이 시위 경험이 없어서 잘 모르는 것들을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잘 알려줬다. 왜 스크럼을 짜야 하는지, 경찰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 하는 것인 만큼 어떻게 어떤 각오로 해야 한다는 것부터 구호를 외치면서 박수로 박자를 어떻게 맞춰야 하는지 등등을 전수해줬다. 안 겪어본 사람들은 연출부도 잘 모르더라.


캐스팅에도 많은 도움을 줬다. 공연을 엄청 많이 보니깐 어떤 배우들이 좋을지 추천을 많이 해줬다. 마지막 장면에 보면 뒷모습에 빨간 손수건을 손에 두르고 버스 위에서 선창하는 사람이 문소리 배우님이시다. 하나를 해도 다르다. (웃음)


-김태리가 맡은 연희는 데모하는 잘생긴 오빠 때문에 현실정치에 각성하는 캐릭터인데. "대학 들어가서 괜찮다 싶은 남학생들 찍어서 뒤를 쫓다 보면 영락없이 운동권이었다며 그 세계를 들어가야겠다"고 한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떠오르기도 하던데.


▶언뜻 그런 이야기를 들은 것 같긴 한데 그걸 참조하지는 않았다.


-김윤석은 '1987'의 중심이다. 특정한 주인공이 없는 영화를, 안타고니스트로 붙들어 맨다는 것 자체가 결코 쉽지 않은 일인데. 왜 김윤석이었나.


▶'화이'를 같이 하면서 좋았던 게, 김윤석은 항상 어느 생각에 갇혀 있지 않으려 한다. 항상 다르려 하고 항상 새로운 것에 도전하려 한다. 박처장이 실존 인물이긴 하지만 그 인물이 평양 사투리를 쓴다는 것 외에는 백지 상태였다. 그걸 하나하나 만들었다. 어떤 걸 주문했다기보다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일지를 놓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실제 인물은 일부러 사람들에게 더 들으라는 듯이 평안도 사투리를 썼다고 하더라. 공포감을 주려는 듯. 난 박처장을 통해 우리 역사를 더 폭넓게 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유해진을 고문하기 전에 박처장이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한다. 난 이 사람이 이야기하는 게 우리 역사의 또 다른 면을 담는 것과 동시에 과연 이 이야기도 진실일까란 의문도 주고 싶었다. 그런데 거기까지는 너무 욕심이더라. 김윤석은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하는 게 맞다고 하기도 했다.


-박희순이 맡은 공안 형사 분량은 많이 편집되기도 했는데.


▶독방에서 기도하는 장면 등 인간적인 고뇌를 드러내는 장면들을 편집했다. 영화 속 리듬과 안맞기도 했을 뿐더러 그런 식으로 대공 수사를 했던 사람을 너무 인간적으로 들어가서 표현하면 안 되겠다 싶었다. 그런 부분은 박처장 정도로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공안 형사들이 박처장에게 "받들겠습니다"라고 답하는 게 인상적이던데.


▶작가의 아이디어다. 당시 폭압적이던 군대 같던 문화를 작가가 "받들겠습니다"라는 대사로 잘 살려준 것 같다.

장준환 감독/사진출처=1987 스틸

-강동원이 잘 생긴 남학생 역을 맡았다. 시나리오에도 잘 생긴 남학생으로 배역명이 적혀있는 역할이다. 잘생긴 이미지의 강동원을 기능적으로 활용한 장면들이 분명히 있는데. 마스크를 벗는 장면이랄지, 우산 들고 나오는 장면은 강동원의 출세작인 '늑대의 유혹'이 떠오르기도 하고.


▶잘 생긴 남학생 역은, 강동원이 실제 인물과 나이 차이가 좀 나긴 하지만 여러 면에서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역할은 강동원이란 배우의 원래 성질이 필요하기도 했다. 강동원이 맡은 그 열사를, 열사라는 틀에 넣어서 박제화시키고 싶지 않았다. 김태리와의 이야기 등등은 허구지만 유족의 허락은 따로 받지 않았다. 대신 최대한 조심스럽게 접근하되 동상처럼 만들지 말자고 생각했다.


강동원이 영화 속에서 "왜 그렇게 데모를 하느냐, 그런다고 세상이 달라지는 것도 아닌데"라는 김태리의 질문에 "나도 그러고 싶지만 그게 잘 안돼. 마음이 아파서"라고 답을 한다. 그런 말을 하게 하고 싶었다.


'늑대의 유혹'은 그 우산 장면을 그렇게 연결지을 지는 일원 어치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옛날 것들을 보여주고 싶어서 파란 비닐 우산을 준비했을 뿐이다.


-강동원의 운동화 뿐 아니라 남영동에 달려간 실종자 가족들이 끌려가면서 남긴 신발 등 영화 속에 신발 이미지가 많이 등장하는데.


▶영화 속에 치안본부장으로 등장한 우현이 당시 이한열 열사 운동화를 기억하더라. 당시 우현은 연세대 총학생회 사회부장으로 시위에 앞장 섰었다. 이한열 열사 기념관에서 덩그러니 한 짝만 남아있는 운동화를 보고 출발했다. 그렇게 덩그러니 남아있는 신발 한 짝은 많은 걸 이야기해준다. 최순실도 프라다 구두 한 쪽을 남겨놓고 가지 않았나.


-강동원과 김태리의 이야기는 멜로로 비추기도 하는데.


▶둘의 이야기를 로맨스로 보는 분들이 많은데 그렇게 정의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여러가지 목표가 있었다. 연희 캐릭터는 자기 주체성이 있는 여성이길 바랐다. 그런 여성이 잘 생긴 남학생을 만났다고 시대의 폭압에 눈 뜨게 되는 건 말이 안된다. 강동원이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비디오를 보여주고, 그러면서 김태리가 "왜 보여줬냐"며 "그런다고 세상이 달리지는 것도 아닌데"라고 묻게 하고 "그러고 싶지만 그게 잘 안돼. 마음이 아파서"라는 답을 나오게 하는 게 둘의 이야기 목표였다. 이한열 열사는 실제 광주 출신이라 어릴 적에 어른들이 밖에 못 나가게 한 경험을 갖고 있던 분이었다. 당시를 쉬쉬 하면서 자랐기에 대학에 들어가서 광주 민주화 운동을 알게 되고 굉장히 고민했던 분이기도 했다.


난 고등학교 시절에 성당에서 비디오로 광주 민주화 운동 영상을 봤다. 그 영상을 보고 난 뒤 아무 말 없이 한참을 걸었던 기억이 있다.


-김태리가 백골단에 쫓기다가, 넘어진 백골단을 돌아가서 밟고 가는 장면이 있는데. 유쾌하긴 하지만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말이 돼라고도 할 법 한데.


▶그렇다. 백골단에게 쫓겨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백골단이, 그 청바지와 청재킷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 것이다. 그 장면은 김태리가 맡은 연희 캐릭터가 주체적인 여성이란 걸 보여주기 위한 아이디어였다. 그래야 그런 여성이 폭압스런 현실에 눈을 뜨게 되는 과정이 주체적이란 걸 관객이 알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많은 배우들이 함께 했고 그 역할을 각각 훌륭히 소화했다. 그 인물 하나하나를 다 살렸고. 초창기 멤버들 이후로 배우들이 자발적으로 참여 의사를 밝혔다던데. 캐스팅 순서가 어떻게 되나.


▶비슷한 시기이긴 한데 강동원이 가장 먼저 하기로 했고, 김윤석, 하정우 순이었다.


-음악 사용이 좋다. 운동가가 난무하기보다는 시대를 엿볼 수 있는 음악들이 감성을 울리도록 사용됐는데.


▶'그날이 오면' 같은 경우는 그날이 올까, 그날이 뭘까, 그런 생각을 전할 수 있는 중요한 노래였다. 마지막에 문익환 목사가 외친 "열사여"와 맞닿아 있다고도 생각했다. 그 외침이 정말 중요하기도 했고. 유재하의 '지난날'은 사실 고증과 안 맞기는 하다. 87년에 나온 노래이긴 한데 6월 항쟁 이후에 음반이 나왔다. 워낙 유재하를 좋아해서 그 노래를 관객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유재하의 '가리워진 길'은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나란 가사가 남겨진 사람들이 2017년에 다시 부를 수 있는 노래라 생각했다.


-'1987'은 땡전뉴스로 시작해서 문익환 목사의 외침으로 끝나는데.


▶옛날영화처럼 시작하고 싶었다. 시작할 때 시계 초침 소리도 나온다. 관객이 30초 만에 30년 전으로 돌아가서 그 당시를 목격하길 바랐다. 다큐처럼 시작해서 진짜 다큐를 보게 되길 바랐다.


-그렇다면 '1987'은 장준환 감독에게는 타임머신인가.


▶그렇게 보기를 원하지만 한편으로 거울이었으면 한다. 순수하고 뜨거웠던 그 때를 돌아보는 타임머신 거울.


-엔딩에 실제 다큐를 사용하는 건 실화가 주는 힘을 영화에 얹으려 하는 의도이기도 할텐데.


▶영화도 영화의 힘이 있지만 실제 영상이 주는 것 만큼 큰 힘이 어디 있을까 생각했다. 관객이 모두가 주인공이라고 느끼길 바랐고, 잊혀지지 않고 남일인양 하지 않도록 하는 게 이 영화의 목표였다. 실제 영상이 그런 힘을 보태리라 믿었다.


-박종철, 이한열 열사 역을 맡은 배우들의 이름을 엔딩 크레딧에 가장 먼저 올렸는데.


▶작품 안에서 숨기려 했다가 마지막에 관객이 충격과 슬픔에 동참했기에 가장 먼저 소개할 수 있었다.


-차기작은. 이번에는 오리지널 시나리오인가.


▶아직 다음은 생각도 못했다. 하고 싶은 건 있는데 돈이 많이 드는 마이너 취향 영화라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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