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최은희의 영결식이 진행됐다.
19일 오전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선 고 최은희의 발인에 앞서 영결식이 치러졌다. 이 자리에는 상주인 신정균 감독을 비롯해 유족들이 참석했다. 신성일, 신영균, 문희 등 고인과 한 시대를 풍미한 배우들과 이장호, 최하원 감독 및 황기성 영화제작자도 참석해 마지막길을 배웅했다.
발인을 앞두고 진행된 영결식은 엄숙한 가운데 진행했다. 유족과 고 최은희를 추억하는 이들은 숙연한 표정으로 이별을 아쉬워했다. 앞서 빈소에는 최불암, 고은아, 최난경, 윤일봉, 정혜선, 오경아, 최지희, 최윤식, 한승헌, 태현실, 오정아 등과 임권택 감독 외 많은 영화인들이 조문하며 애도했다.
고 최은희는 지난 16일 오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한국 영화계의 큰 별'이었던 고 최은희는 1926년 생으로 1942년 연극 '청춘극장'으로 데뷔, 1947년 첫 영화 '새로운 맹서'를 시작으로 '성춘향' '지옥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상록수', '빨간 마후라' '한강' 등 13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1960년대 한국 영화의 중흥을 이끌었다.
고인은 1954년 신상옥 감독과 결혼 후 신필름을 함께 이끌었다. 뿐만 아니라 영화 '민며느리'를 연출하는 등 한국 3번째 여성감독으로서도 족적을 남겼다. 안양영화예술학교 교장으로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고인은 남편 신상옥 감독과 배우 오수미의 스캔들로 1977년 이혼의 아픔을 겪기도 했다. 이후 1978년 홍콩에서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북됐다. 그 행방을 찾던 신상옥 감독 또한 그해 7월 납북돼, 1986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동반 탈출하기까지 북한에서 영화 '돌아오지 않는 밀사' '소금' 등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후 남편 신 감독과 망명 생활을 하던 중 1999년 영구 귀국했다. 신 감독은 지난 2006년 세상을 떠난 바 있다.
고 최은희의 장지는 경기 안성 천주교공원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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