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지훈(36)이 물이 올랐다. 영화 '암수살인'(감독 김태균)을 보면 더 그렇다. '신과함께' 시리즈의 저승차사 해원맥으로 멋진 액션과 반전의 허당미를 발산하다가, '공작'의 정무택으로 서늘한 기운을 드리우며 신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해냈던 그가 '암수살인'에선 뻔뻔한 살인마가 됐다. 살인죄로 감옥에 잡혀 있으면서도 '내가 죽인 건 1명이 아니라 7명'이라며 형사와 게임을 벌이는 사이코패스다.
빡빡 머리를 깎고 죄수복을 입은 채 회색빛 접견실에서 형사와 기싸움을 벌이는 게 대부분이지만, 그가 만들어낸 속 모를 살인범 강태오는 변화무쌍하고도 다채롭다. 생전 처음 도전하는 부산사투리로 대선배 김윤석과 신마다 맞붙으면서도 기세에 눌리는 법 없이 위악을 부리는 주지훈은 신선하고도 강렬하다. 그래서 다시 그를 만났다. 지난해 12월부터 내리 4편의 영화를 선보인 주지훈은 "엄마보다 기자들을 자주 만난다"고 너스레를 떨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가 전해준 '암수살인' 이야기.
-영화는 어떻게 봤나.
▶나쁘지 않게 본 것 같다. 모든 영화가 장단점이 있고 양날의 칼이 있지 않나. 다행히 언론배급시사 뒤에 생각보다 잔인하지 않아 좋다고 하셔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일반 관객의 시선이 같을까 다를까 고민이 있다. 사실 고민해봐야 의미가 없는 고민이긴 하다. 편집을 바꿀 수도 없고. 생각보다 자극적이지 않아 집중할 수 있어 좋을지 관객도 그리 느끼실지 궁금하다. 저는 자극 위주가 아니라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잘 들어오더라.
-실화가 바탕이다. 모티프가 된 '그것이 알고싶다'는 봤는지.
▶안봤다. 감독님이 '굳이 안 보셔도 된다. 페이크 다큐를 만드는 게 아니다'고 하셨기에 보지 않았다. '공작'의 김정일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람이라 재현하는 거지만 저는 그저 참고만 했다. 형사님은 만나뵈었다. 현장에 오셔서 재미있는 이야기로 들었다.
-삭발한 밤톨머리에 다크서클 같은 비주얼도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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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은 원했던 대로 된 것 같다. 대본에 쓰여 있었다. 감옥에 간 다음에 짧은 헤어로 나타난다고. 그것이 삭발이라고 쓰여 있지는 않았는데 감독님에게 삭발이 어떻겠냐고 여쭤봤더니 사실 원했는데 강요가 될까봐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하시더라. 감옥에 잘 어울리는 비주얼이라 할 수 있다. 도망자 생활을 할 때 머리를 길렀다가 감옥에서는 삭발하는 게 강해 보일 것 같았고, 실제로 이 친구가 굉장히 극단적인 성향이 있어서 잡혀 들어갔을 때 머리를 자르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재판에서는 반성하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이미지라고 봤다. 그리고 다행히도 제가 다크서클이 좀 있다. 그런 옷 입고 머리 빡빡 깎고 있으면 실제로도 다운되고 도움이 된 것 같다.
-배우로서 탐나는 캐릭터라지만 선뜻 선택하기 힘든 캐릭터이기도 할 것이다.
▶처음 봤을 때 큰 고민은 없었다. 하지만 다른 고민을 했다. 이렇게 강한 캐릭터를 하면 한 10년 정도 이런 캐릭터를 못하지 않을까 하고. 물론 잘 해낸다는 가정 하다. 잘 못하면 또 할 수 있다.(웃음) 그것이 강렬하게 이미지를 잡으면 오래 잔상이 남을 것 같은데 이 시나리오가 내가 10년을 걸 정도가 될까 하는 물음이 있었고 내가 시나리오를 보는 눈이 있나 하는 고민이 있었다. 그러다가 윤석 선배님이 캐스팅됐다는 이야기를 딱 들었다. 저 존경스러운 배우가 괜히 선택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럼에도 불안해서 감독님과 피디님을 만났고 궁금한 걸 여쭤봤고 그래서 하게 됐다. 윤석 선배님이 계셨던 게 아주 큰 지분을 차지했다. 좋은 배우와 함께하면 제가 준비한 어떤 것보다 많은 게 나올 수 있으니까.
-'추격자'에서 김윤석과 호흡을 맞춰 연쇄살인범을 연기한 경험이 있는 하정우에게도 조언을 구했나.
항상 물어본다. (하)정우 형 (정)우성이 형 (황)정민이 형에게도 물어보는데 그 의견들이 아주 많이 도움이 된다. 각자 종합해서 저는 저의 매니저와 고민해 결정하게 된다. 정우 형은 '윤석이형 나오지? '추격자'네' 그러더라. '좀 다르긴 해요'라고 했다.(웃음) 정우 형은 하라고, 윤석이 형 너무 좋고 너와 잘 맞을 거라고 응원해 줬다. 후배가 쓰기에 맞는 단어인지 모르겠는데 그런 거대한 배우가 사실 약간 무섭지 않나. 예민하실 것도 같고. 하지만 정우 형이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셔서 저는 처음부터 편했다. 말랑말랑해진 상태로 만나뵈어서 참 좋았다.
-총괄제작이자 시나리오에도 참여한 곽경택 감독이 직접 사투리를 가르쳤다고 들었다.
▶촬영이 끝나면 저녁식사 전에 곽경택 감독님 밤에서 1시간 예습 하고 숙소 가서 연습 하고 그랬다. 폭풍처럼 몰아치셨는데 저와는 잘 맞으셨다. 확실히 클래식한 명 감독님들이 그런 장기가 있다. 같이 작업하는 사람을 존중하는 분들이시라 정말 감사하게도, 굉장히 조심스럽게 '이런 걸 써보면 어떻겠냐'고 아날로그 녹음기를 제안하셨다. '다 녹음을 해줄테니까 해볼래' 하시더라. '좋죠' 했다. 그것이 너무 좋은 거다. 정말 감각적이다. 내가 원하는 파트를 다라락 다라락 돌리면서 계속 듣는 게 너무 큰 도움이 되더라.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키 크고 덩치 큰 애가 마스크 끼고 뭐라뭐라 하고 다니니까.
-부산사투리 연기를 직접 해 보니 어떤가.
▶로망이 있었다. 저도 '친구', '똥개'를 보고 자랐고 부산사투리가 주는 정감이 있지 않나. 내가 언젠가 하고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오산이었다. 너무 익숙하지 않나. 그것이 양날의 검이었다. 나같은 서울토박이도 익숙한데 한끝 어색하면 일단 융단폭격을 맞을 수 있겠더라. 심지어 결정하고 보니까 저 빼고는 다 부산 출신을 뽑아놓으신 거다. 사투리를 하는데 미치는 줄 알았다. 연기자가 손짓 발짓 몸짓을 하고 대사로 감정을 표현하는데 그게 핸디캡이 되니까 너무 힘들었다. 막상 가면 너무 좋은 현장도 찬 바닷물에 한 발 들이는 게 너무 고민되는 것처럼 가기가 싫었다. 대본에 성조를 한 글자 한 글자 그렸다. 현장에서 대사가 바뀌면 미칠 것 같았다. 정말 죽겠더라. 그래서 현장에 미리 갈 수밖에 없다. 앉아서 하는 것.과 움직이며 하는 것이 다르니까. 한시간 일찍 현장에 갔고 끝나면 감독님과 한시간씩 연습을 했다. 고3 수험생 같았다. 그렇게 열심히 했으면 서울대 갔을 것 같다.
-사투리에 대한 평가가 좋다. 제일 안도하게 한 분은 누구였나.
▶일반 관객들이 몇 분 글을 올리셨더라. 경상도 출신 지인들과 영화를 봤는데 거슬려하지 않는다고. 그런 말이 제일 안도가 된다. 사투리 평가시험을 받으러 온 건 아니지만 쏟아부은 시간이 헛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까.
-취조실에서만 연기를 펼치다시피 했는데.
▶곽경택 감독님이 작가이기도 하다보니 사투리 작업을 하면서 말만 한 게 아니라 작가의 머리 속에 있던 게 하나하나 들어갔던 터라 도움이 됐다. 자유롭게 노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하나 다 계산이 돼 있다. 취조실의 경우 같은 공간에서 입체감과 질감을 어찌 달리 줄까 고민이 많아서, 어느 순간 자세를 고쳐 앉고 고개를 어느 정도 넘기고 돌리고 하는 걸 다 계산하며 들어갔다. 작업들이 점점 디테일해진다. 나의 해석을 막 펼쳐서 감독님 스태프를 인정을 받아서 막 바꾸고 하는 것이 거의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된 것 같다. 어떤 의미로서는 훨씬 세분화된 협업이 필요해지는 것 같다. 테크닉도 좋아져야 하고 감성적으로도 날이 더 서야 할 것 같다.
-얼굴 좋아진 것 같다. '신과함께' 연타에 '공작'까지 관객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술자리에서 말 잘 통하는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신이 나나. 이 이야기로 관객분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어 영화를 만드는 건데 신이 나고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오니까 생기가 돌지 않을까. 모든 영화가 미덕이 있지 않나. 그 미덕을 알아봐 주셨을 때 분명한 쾌감이 있는 것 같다. 요즘 인터뷰를 하면 종교인이 된 것 같다. 뭐 그렇게 감사한 것이 많은지. 내가 끊임없이 작업을 한다 해도 인생에 이런 시기가 올 수 있을까.
-가히 '주지훈의 해'라 할 만하다. 그래도 '또 주지훈이네' 소리는 안 나온다.
▶장르며 캐릭터의 외면 내면이 다르지 않나. '신과함께'에서는 SF판타지의 일종의 신이고, '공작'은 군인이고 '암수살인'에서는 범죄자다. 비슷한 작품이라면 '또 주지훈이네' 하실 수도 있지만 다행히 그렇지 않은 것 같아 감사하고 있다. 생각하고 있는 걸 구상해 봐도 이렇게까지 될 일이 없을 것 같다.
좋은 선배님, 좋은 감독님들과. 좋은 선배들과 일을 했더니 제가 가지고 있는 능력 100% 이상 발현이 된 게 아닐까. 나도 마음 편히 몸을 던질 수 있게 양탄자를 깔아주는 선배가 되고 싶다는 욕심이, 열망이 있다.
-'암수살인'에 거는 기대가 있다면.
▶두 가지의 욕심이 있다. 저도 들은 이야기지만 분명히 상업 영화로서의 재미가 있었으면 좋겠고, 범죄스릴러 장르로서의 긴장감이나 쫄깃함이 분명히 있었으면 좋겠다. 거기에 묻혀서 메인 메시지가 묻히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자신의 본분을 지키는 사람들 덕에 세상이 바뀔 수 있고 돌아갈 수 있지 않느냐는, 감독님의 그 말씀이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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