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의 어른이라면 (혹은 아직 학생이라면) 더 나은 삶을 위해 공부해야 한다고, 특히 국영수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것이다. 예전보다 조금은 선택폭이 더 다양해졌지만, 여전히 국영수 특히나 수학은 많은 사람들의 희망이 되기도 하고 발목을 잡기도 한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누구나 함께 시작하는 수학 공부지만, 학년이 올라가고 나이가 들 수록 수학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고 그렇기에 수포자(수학포기자)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수포자 감독과 수포자 배우들이 함께 모여서 만든 영화다. 그래서 관객이 더 보기 쉽고 더 따뜻하게 다가온다.
자사고(자율형 사립고)에 사배자 (사회적 배려 대상자)로 입학한 지우(김동휘 분)는 중학교에서는 전교 1, 2등 하던 수재였다. 사배자 전형으로 남들이 부러워하는 자사고에 입학 했지만, 매주 주말 청담동에서 기숙하며 사교욱 과외를 받으며, 고등학교 1학년 때 이미 고3까지의 모든 진도를 끝내버린 학생들 사이에서는 그저 밑에서 내신을 깔아주는 존재일 뿐이다. 이럴 바에 일반고로 전학가라는 제안을 받은 지우는, 친구들과의 의리를 지키다가 기숙사에서 잠시 쫓겨났지만 엄마를 걱정 시키지 않기 위해 집에서 자는 대신 학교 수위실을 찾아가 재워달라고 한다.
지우는 자신이 잠든 사이 학교 수위 이학성(최민식 분)이 자신을 대신 해 선생님이 내 준 수학문제를 모두 풀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를 찾아가서 수학을 가르쳐 달라고 한다. 자신의 과거 상처로 인해 아무에게도 마음을 내주지 않던 이학성은 지우의 딱한 사정과 그의 끈기로 인해 마음을 열고 수학을 가르치고, 그렇게 두 사람은 세대차를 넘어 수학으로 하나가 된다.
탈북 수학자 이학성은 인생에서 수학이 제일 좋은 수학 천재다. 자신의 신분과 아픈 과거로 인해 학교 수위로 일하면서도 여전히 수학은 그를 버티게 해주는 친구다. 마지 자신의 아들 같은 지우에게 수학을 가르치게 된 학성은 그에게 수학의 답이나 수학의 풀이법이 아닌, 인생에 대해서 가르쳐 준다. 처음에는 수학을 배우겠다고 나섰던 지우는 학성에게 삶을, 아버지를 배우게 되고 학성은 그런 지우에게 감정을 느끼면서 두 남자는 가슴 속에 서로를 위한 괄호를 내 준다. 영화는 수학 공식에 삶을 대입한다. 3.14.. 파이는 파이송이 되고, 답이 없는 문제는 이 나라의 교육 현실로 표현 된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어떤 자극적인 조미료 없이 맛을 낸다. 불닭이나 마라탕 같이 매운 음식이 아니라 슴슴한 누룽지탕 같다. 학생들의 이야기를, 어른들이 준 상처를 또 다른 어른이 치유해주며 삶에 대한 따뜻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극적인 사건이나 반전을 욕심내지 않고 하나의 흐름으로 흘러가는 것은 이 영화의 큰 힘이다.
최민식은 본인이 직접 '수포자'였다고 밝혔지만, 실제 천재 수학자 같은 모습을 보여주며 이학성의 캐릭터를 만들어 냈다. 그의 묵직한 감정 연기가 사연있는 탈북 수학자 캐릭터를, 고등학생과 소통하며 치유 받는 인간 이학성을 그려냈다. 최민식의 묵직한 연기 맞은 편에는 풋풋한 신인배우 김동휘가 있다. 여드름 분장까지 하며 고등학생 연기를 펼친 김동휘의 연기는 과하지 않아서 좋다. 대선배 최민식과 연기하며 욕심을 내고 싶었을텐데 억지로 보여주려는 노력없이 캐릭터만 제대로 연기하겠다는 마음이 읽힌다. 마지막 강당 장면에서 감정이 극에 달한 최민식과의 주고 받는 케미가 느껴지지 않아 조금 아쉽지만, 앞으로를 기대해 볼 만하다.
따뜻고 슴슴한 맛이 장점이지만, 뻔한 전개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중반까지 이어지던 어른과 학생, 그리고 수학 이야기까지는 신선하게 다가오지만 후반부 남북 이야기와 국정원 이야기들이 결합하며 기시감이 든다. 오히려 학성과 지우 두 사람의 관계와 수학이야기를 조금 더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특별한 맛은 아니지만 따뜻한 스프 같다. 최근 OTT 위주로 인기를 얻은 폭력적인 한국 콘텐츠에 익숙해진 관객들에게 신선한 즐거움과 한줄기 바람을 전할 수 있을 듯 하다.
3월 9일 개봉.12세 관람가.
김미화 기자 letmei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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