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작자를 지킨다더니 되레 창작자를 배신했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이하 음저협)가 AI 시대 음악 저작권 보호의 최전선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가운데, 내부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지난달 19일 음저협 사무처 고위직 2명이 AI 음원 업체를 지인 명의로 설립한 뒤 저작권료 지급을 조작한 혐의로 보직해임 및 대기발령 조치된 것.
이와 관련해 서울경찰청 반부패수사대는 현재 수사를 진행 중이다. 협회 역시 "외부에 별도 법인을 세워 협회와 특정 업체 간 계약을 유도하고 금전적 이익을 편취한 정황을 확인했다"면서 "개인의 일탈로 끝내지 않고, 협회 전체가 책임을 다해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로 삼겠다"라고 밝혔다.
이번 사건의 충격은 단순한 금전적 비리에 그치지 않는다. 음저협은 그동안 AI로부터 창작자를 보호하겠다며 여러 활동을 전개해왔다. 지난 3월 24일부터는 AI가 관여한 곡의 저작권 등록을 전면 금지하는 강경한 방침을 시행했고, 4월에는 'AI 시대 저작권 교육'을 열어 창작자 중심 제도 마련을 강조했다. 국제 무대에서도 "AI 기술이 창조의 도구가 아닌 착취의 수단이 될 수 있다"며 창작자 권리 보호를 역설했다.
그러나 그 고위 간부들이 'AI 업체를 운영하며 저작권료를 조작했다'는 의혹은 조직 전체의 신뢰성에 치명적 타격을 줬다. 공적으로는 AI의 위험성을 경고하면서, 사적으로는 AI 사업으로 이익을 챙긴 모습은 명백한 이해 충돌이자 배임 행위다.
단순히 일부 개인의 도덕적 해이로만 설명하기도 어렵다. 음저협은 올해 6월에도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이해 충돌 및 일감 몰아주기 등 부당 행위로 개선 명령을 받은 바 있다. 임원이 자신의 소속사에 협회 행사를 맡기거나 협회 광고에 본인 노래를 사용하는 등의 사례가 적발된 것이다. 이처럼 반복되는 비리는 협회 내부의 견제·감시 시스템이 사실상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저작권료라는 막대한 재원을 관리하는 공익적 단체에서 이런 문제가 이어진다는 사실은 제도적 허점과 윤리 의식의 부재를 동시에 드러낸다.
음악 창작자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음저협에 저작권을 위탁한다. 하지만 그 신뢰를 지켜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제도의 허점을 악용해 사익을 추구했다면, 이는 단순한 비리를 넘어선 배신이다. AI 시대, 창작자 권리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른 만큼 악용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이런 시기에 창작자를 보호해야 할 조직이 오히려 창작자를 등쳐먹는 일이 벌어진 것은 저작권 관리 시스템 전반의 재점검을 요구한다.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개인의 단순한 징계를 넘어 조직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 무엇보다 저작권료의 징수와 분배, 협회 예산 집행과 계약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얼마가 어디에서 들어와 어떻게 쓰이는지, 주요 계약은 어떤 내용으로 누구와 체결되는지 모든 정보가 회원들에게 명확히 공유돼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의사결정 구조의 개편이다. 현재처럼 소수 임원이 조직을 좌지우지하는 구조에서는 언제든 유사한 사건이 반복될 수 있다. 정회원 자격 요건을 완화하고 회원 수를 확대해 실제 창작 활동을 하는 더 많은 음악인들이 협회 운영에 참여하고 감시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현재 음저협 이사회 구성을 보면 한류를 이끌고 있는 K팝 창작자들이나 주요 음악 출판사들이 거의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다. 실제로 가장 많은 저작권료를 발생시키는 주체들이 배제된 채 일부 기득권만 조직을 운영하는 구조는 대표성과 정당성 측면에서 한계를 지닌다.
음악은 창작자의 땀과 영혼이 담긴 결과물이며, 저작권료는 그들이 창작을 이어갈 수 있는 생명줄이다. 이를 관리하는 조직의 책임은 막중하다. "AI 시대에도 저작권은 결코 희생되어서는 안 되는 창작의 근간"이라던 음저협의 선언이 공허한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조직 운영이 투명하고 윤리적이어야 한다. 앞에서는 창작자를 보호한다고 외치면서 뒤에서는 그들의 권리를 훔치는 일이 다시는 반복돼서는 안 된다.
이번 사건은 아픈 교훈이다. 그러나 이 교훈을 제대로 새기고 실질적 개선으로 이어간다면, 한국의 음악 저작권 시스템은 더 건강하고 신뢰받는 구조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국회는 신탁관리 단체를 규율하는 법 제도를 전면 개선해야 한다. 정부 또한 형식적 감독을 넘어 실질적이고 강력한 관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한 단체의 독점적 지위를 견제할 제도적 대안 마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시장의 건전한 경쟁과 상호 감시 체계가 없다면 이러한 비리는 또다시 반복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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