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퍼볼 LII(52)을 향한 본격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29일(현지시간) 뉴잉글랜드 패이트리어츠와 필라델피아 이글스가 슈퍼볼 개최도시인 미국 미네소타주 미네아폴리스에 도착하면서 다음달 5일(현지시간 4일) 펼쳐지는 ‘빅게임’을 향한 열기는 본격적으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매년 슈퍼볼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이슈 중 하나는 양팀의 쿼터백 비교다. 풋볼에서 쿼터백이 지니는 중요성이 얼마나 큰 지를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다. 과연 어느 팀이 영광의 빈스 롬바디 트로피를 치켜들 것인가를 전망하는데 있어 쿼터백 비교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이번 슈퍼볼은 상당히 싱거운 경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뉴잉글랜드 쿼터백 톰 브래디(40)와 필라델피아 쿼터백 닉 폴즈(29)는 사실 같은 레벨에 올려놓고 비교할 수도 없는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한쪽은 이미 슈퍼볼 7회 출전과 5회 우승으로 최고기록을 보유한 역대 가장 위대한 쿼터백이고 한 쪽은 올해 백업으로 정규시즌에 단 3경기 밖에 뛰지 못한 ‘저니맨’이다. 이번 슈퍼볼이 아니었다면 그 누구도 브래디와 폴즈를 비교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브래디가 어떤 선수인지는 웬만한 풋볼 팬이라면 굳이 설명이 필요 없다. 또 웬만큼 열성팬이 아니라면 폴즈가 어떤 선수인지는 잘 모를 것이다. 슈퍼볼 역사상 양 쿼터백을 저울추에 올려놓았을 때 이처럼 중량감의 차이가 크게 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잘 모른다고 폴즈를 그냥 무시할 수는 없다. 어떤 사연이 있든지 간에 플레이오프에서 2연승을 거두고 팀을 슈퍼볼로 이끈 쿼터백을 가볍게 보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특히 폴즈는 비록 브래디와 비교 대상은 아닐지 몰라도 상대거리도 안된다고 무시 받을 선수도 아니다.
만 29세인 폴즈는 필라델피아의 백업 쿼터백이었지만 지난 12월 주전 쿼터백 카슨 웬츠가 무릎 십자인대 파열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면서 주전 자리를 넘겨받았다. 필라델피아 팬들에게 웬츠의 부상은 ‘악몽’ 그 자체였다. 이번 정규시즌 유력한 리그 MVP 후보였던 웬츠의 리드 하에 승승장구하던 필라델피아는 웬츠가 시즌 막판에 부상으로 쓰러지자 일시에 ‘초상집’이 됐다. 웬츠의 부상과 함께 구단 역사상 첫 슈퍼볼 우승 희망도 사라졌다는 절망감에 ‘저주받은 팀’이라는 탄식이 절로 터져 나왔다.
폴즈가 이끄는 필라델피아는 웬츠의 팀과 비교하면 오펜스의 파괴력이 절반 정도로 뚝 떨어졌다. 비록 정규시즌 마지막 3경기에서 2승을 건져 NFC 톱시드와 홈필드 어드밴티지는 지켜냈지만 웬츠없는 필라델피아는 오래 버티기는 힘들다는 것이 모두의 평가였다. 애틀랜타 팰콘스와 미네소타 바이킹스를 상대로 한 플레이오프 첫 두 경기에서 라스베가스 도박사들은 모두 홈팀 필라델피아의 패배를 점쳤다. NFL 플레이오프에서 톱시드 팀이 안방에서 최하위 시드팀을 상대로 ‘언더독’ 평가를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폴즈의 오펜스는 애틀랜타와의 디비전 라운드에서 역시 예상대로 별 볼일 없었다. 하지만 풋볼은 오펜스만으로 하는 것은 아니었다. 필라델피아가 리그 최고의 성적을 올리는데 큰 역할을 담당했던 디펜스는 지난해 슈퍼보울 팀인 애틀랜타의 고화력 오펜스를 단 10점으로 묶었고 그 덕에 필라델피아는 시원치 않은 오펜스를 가지고도 15-10 승리를 거둬 첫 관문을 통과했다.
그럼에도 불구, 도박사들과 상당수 전문가들은 필라델피아가 NFC 결승에서 미네소타를 상대로 승산이 없다고 점쳤다. 폴즈의 오펜스로는 리그 최강의 유닛 중 하나인 미네소타 바이킹스와 맞서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폴즈는 33개의 패스 중 26개를 성공시키며 352야드 패싱으로 터치다운 3개를 뽑아내는 신들린 활약을 펼쳤고 필라델피아는 38-7 압승을 거두고 구단 역사상 3번째 수퍼볼 진출권을 따냈다.
지난 2012년 드래프트 3라운드에서 필라델피아에 지명된 폴즈는 대부분의 커리어가 그리 특별한 것이 없었지만 2013년 한 해만큼은 정말 엄청난 시즌을 보냈다. 그해 시즌 중반 주전 마이클 빅의 부상으로 출장기회를 얻은 폴즈는 시즌 9차전에서 400야드가 넘는 패싱으로 NFL 타이기록인 7개의 터치다운 패스를 기록해 NFL 역사상 단 두 번째로 퍼펙트 쿼터백 평점(158.3)을 기록하는 등 펄펄 날았다.
폴즈는 2013년 시즌 총 27개의 TD패스를 기록하고 인터셉션(INT)은 단 2개에 그쳤는데 폴즈의 TD-INT 비율 13.5(27/2)는 브래디가 2010년 시즌에 수립한 NFL 기록 9(36/4)를 경신한 것이었다. 그 시즌의 폴즈의 쿼터백 평점 119.0은 애런 로저스(그린베이, 2011년 122.5)와 페이튼 매닝(인디애나폴리스, 2004년 121.1)에 이어 NFL 역사상 랭킹 3위에 해당됐다. 브래디도 생애 통산 한 번도 달성하지 못한 평점이었다.
물론 폴즈의 문제는 매직 같았던 2013시즌이 그 이후엔 되풀이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14 시즌부터 이번 시즌까지 4시즌동안 폴즈는 총 28개의 터치다운과 22개의 인터셉션을 기록했다. 폴즈의 커리어는 그저 쓸만한 백업 쿼터백으로 남게 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이번 NFC 결승에서 보여준 폴즈의 뛰어난 플레이와 함께 지난 2013년 폴즈가 남긴 놀라운 기록들은 필라델피아 팬들에게도 한 가닥 희망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사실 슈퍼볼 역사에서 주전의 부상으로 출전한 백업 출신 쿼터백이 슈퍼스타 쿼터백을 상대로 예상치 못한 승리를 거둔 경우도 있었기에 더욱 그렇다. 대표적인 경우가 1988년 슈퍼볼 XXII(22)에서 워싱턴 레드스킨스의 덕 윌리엄스가 존 엘웨이가 이끄는 덴버 브롱코스에 42-10으로 승리한 것과 1991년 슈퍼볼XXV(25)에서 제프 호스테틀러가 이끈 뉴욕 자이언츠가 짐 켈리의 버펄로 빌스를 20-19로 꺾은 것 등이 꼽힌다.
또 이번 슈퍼볼에 나서는 브래디도 ‘언더독’ 입장에서 비슷한 경험이 있다. 2002년 슈퍼볼 XXXVI(36)에서 당시 주전이던 드루 블레드소를 대신해 뉴잉글랜드 쿼터백으로 나선 브래디는 커트 워너가 이끄는 막강 오펜스 세인트루이스 램스를 상대로 20-17 승리를 거두고 프랜차이즈 역사상 첫 슈퍼볼 우승의 감격을 맛본 것은 물론 NFL 역사상 가장 위대한 다이너스티에 초석을 놓은 바 있다. 물론 폴즈가 이번 슈퍼볼에서 필라델피아를 기적같은 우승으로 이끈다고 해도 제2의 브래디가 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중요한 것은 단판승부에서는 분명히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필라델피아 코칭스태프는 웬츠의 부상 이후 팀 오펜스를 폴즈의 능력에 맞춰 재구성하는 작업을 차근차근 진행해왔고 NFC 결승에서의 완벽한 승리는 그런 노력의 산물이었다. 그런 작업이 과연 브래디의 뉴잉글랜드를 대상으로도 통할 수 있을지는 이제 전적으로 폴즈에게 달린 듯하다. 과연 ‘언더독’ 폴즈와 필라델피아가 역대 최고의 쿼터백과 팀을 상대로 역사적인 반란의 챕터를 쓸 수 있을지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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