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어제 잠을 많이 못 잤어요. 6년 만에 돌아오는 거라 너무 설레더라고요."
이정빈(30·성남FC)에게 '숭의아레나(인천축구전용경기장)'는 의미가 남다른 장소다. 인천에서 태어난 그는 인천 유나이티드 유스인 광성중(U-15)·대건고(U-18)를 거쳐 프로까지 데뷔한 인천 유스 출신이기 때문이다. 이후 인천을 떠나 FC안양, 부천FC 등 주로 2부에서 뛰면서 인천 원정길에 오를 일이 없었는데, 성남 이적 이후 인천이 K리그2로 강등되면서 16일 무려 6년 만에 인천축구전용경기장을 찾았다. 비록 인천 소속은 아니지만, 전날 잠을 설칠 정도로 설레는 원정길이기도 했다.
경기를 모두 마친 뒤 친정팀 인천 팬들에게 홀로 인사를 하러 가다가 "숭의에서 XX"라는 야유를 받은 건 그래서 더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날 경기는 원정팀 성남이 2-1로 승리했는데, 이정빈은 환상적인 프리킥 골로 친정팀에 비수를 꽂았다. 친정팀 예우 차원에서 세리머니도 자제했지만, 후반 정원진과 신경전을 벌이다 상대를 밀쳐 넘어뜨리는 행동 등이 인천 팬들을 자극했다. 결국 홀로 인천 서포터스 앞까지 다가가 인사하려던 그는 팬들의 날 선 반응에 금세 등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경기 후 취재진과 만난 이정빈은 인터뷰 내내 애써 속상한 감정을 추스르는 듯한 모습이었다. 잠을 설칠 만큼 설렘이 가득했던 곳에서 예상치 못한 친정팀 팬들의 반응은 그도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지난 3월만 해도 이정빈은 친정팀을 상대로 골을 넣고 팀의 2-1 승리를 이끈 바 있는데, 당시엔 경기가 끝난 뒤 오히려 인천 팬들의 박수를 받았던 적이 있다. 유스 출신으로서 의미가 큰 장소에서 쏟아진 야유는 그에게도 상처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정빈은 "(지난 3월) 홈에서 경기했을 때도 골을 넣고 이겼다. 그때 찾아갔을 땐 많이 반겨주셨다. 그런데 오늘은 좀 그렇게(야유) 하셨을 때 속상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야유를 들었을 때) 기분이 좀 묘했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인천 팬들을 자극한 정원진과 갈등에 대해서도 "나쁜 사이가 절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날 이정빈과 정원진은 후반 사이드라인 부근에서 신경전을 벌였다. 정원진이 프리킥을 준비하려다 이를 막고 선 이정빈을 밀쳤고, 이에 이정빈도 정원진을 밀어 넘어트렸다. 팬들 시선에선 '유스 출신'인 이정빈이 친정팀 선수에게 그런 행동을 하는 게 좋게 보일 수는 없었다.
이정빈은 "(정)원진이 형과는 대학교 때부터 인연이 있었고, 김천 상무 때도 동기였다. 살짝 밀길래 나도 살짝 밀었는데 과하게 넘어졌다. 그 정도로는 안 밀었다"면서 웃어 보인 뒤 "경기가 끝나고도 원진이 형과 따로 만나 '너무 연기하는 거 아니냐'고 이야기하면서 잘 풀었다"고 했다.
인천에서 잘하고 싶었지만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한 게 사실이고, 특히 홈팬들 앞에서 골을 넣지 못한 기록을 마음속에 품고 있을 정도였다는 점에서 인천 팬들의 반응은 더 서운했다. 실제 그는 인천에서 프로 데뷔 후 치열한 주전 경쟁을 겪었고, 데뷔 2년 차인 2018년 강원FC 원정에서 데뷔골을 넣었다. 데뷔골을 넣은 직후 눈물을 흘렸고, 중계 인터뷰에서도 눈물을 쏟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정빈은 "인천 소속이었을 때는 홈에서 골을 넣은 적이 없다. 그런데 6년 만에 와서 (상대팀으로) 골을 넣어서 기분도 묘하고 특별했던 하루였다"며 "인천 데뷔골 때는 골을 넣고 눈물도 흘렸다. 그땐 홈경기가 아니라 강원 원정이었다. 이후 홈에서도 골을 많이 넣고 싶었는데, 성남 소속으로 숭의에서 골을 넣었다는 게 기분이 참 묘하다"고 덧붙였다.
이날은 비록 거친 야유와 마주했지만, 그렇다고 인천 팬들을 등돌릴 생각은 없다는 그다. "속상하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는 이정빈의 반응에는 이날 경기 결과나 내용 등과 맞물려 인천 팬들의 감정이 상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나중에 또 인천 원정길에 올랐을 때 팬들에게 인사할 건지'에 대한 질문에 그는 "당연하다"고 단언한 뒤, "선수로서, 사람으로서 당연히 인사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때는 인천 팬분들이 반겨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기 전날 설렘으로 시작해 속상한 원정길로 끝난 인천전을 뒤로한 채, 이제는 성남에만 오롯이 집중해야 할 시기다. 마침 성남은 이날 인천을 2-1로 꺾고 최근 무패행진을 무려 7경기(3승 4무)로 늘렸다. 이정빈은 벌써 리그 4골(1도움)을 기록, 개인 커리어 하이 동률을 이뤘다. 4골 중 2골이 리그 선두이자 친정팀인 인천을 상대로 넣었다는 점도 공교롭다.
이정빈은 "인천전에 뛴다는 게 정말 기대가 됐고, 준비를 더 잘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 생각한다"면서 "이제는 저희 선수들과 구성원 모두가 결과가 중요하다. 개인적으로는 공격수니까 공격 포인트를 많이 올리는 게 목표다. 작년엔 성남 팬들이 속상해하셨다. 올 시즌엔 선수들이 잘해서, 플레이오프권에 들어가서 시즌을 더 오래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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