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절히 기다렸던 기회. 꿈에 그리던 첫 안타는 좌측 담장을 훌쩍 넘었다. 어린 새싹의 성장을 원하던 만원관중은 홈구장이 떠나가라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율예(19·SSG 랜더스)는 20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전에서 8회말 2사 1,2루에서 조형우의 대타로 출전해 김유성의 시속 147㎞ 높은 직구를 강타, 좌측 담장을 넘기는 홈런을 날렸다.
프로 데뷔 3타석 만에 맛본 첫 안타를 홈런으로 장식했다. 1라운드 신인으로 계약금 2억 2000만원을 받고 입단했던 기대주의 잠재력을 드디어 팬들 앞에서 보여줬다.
경기 후 동료들의축하 물세례로 흠뻑 젖은 채로 취재진과 만난 이율예는 "꿈에 그리던 순간이었는데 이렇게 치게 됐다. 이제 시작이니까 자만하지 않고 더욱 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4월에 한 번, 7월에 한 번 1군 콜업을 받았지만 기회는 단 두 타석이었다. 9월 확대엔트리로 다시 1군의 부름을 받은 뒤에도 18일 동안 타석에서 기회는 단 한 번도 없었다. 팀이 아직 순위를 확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조형우와 이지영이라는 1·2옵션 포수가 있었기에 여력이 없었다.
그렇다고 1군에서 기회를 받기에 부족함이 있는 건 아니었다. 퓨처스에선 52경기 타율 0.333(120타수 40안타) 8홈런 25타점, 출루율 0.494, 장타율 0.592, OPS(출루율+장타율) 1.086으로 맹활약했다.
이날 드디어 기회가 왔다. 경기 중반부터 점수 차가 벌어졌다. 이율예도 "이런 기회가 저번부터 오려다가 안 오는 게 반복됐다. 오늘은 진짜 나갔겠다고 생각해서 연습도 계속 하고 있었다. 후련하다"고 말했다.
기대가 컸던 포수였다. 이지영의 뒤를 이을 포수로 평가를 받았으나 올 시즌 조형우가 기량을 만개하며 기회를 얻기 힘들어졌다. 앞서 이숭용 감독도 "타격과 수비가 모두 좋아졌다고 한다"면서도 "포수를 키우는 게 어렵다. 상황이 여유가 있으면 기회를 주고 싶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스스로도 부족함을 잘 알고 있었다. "2군에 가서 전체적으로 다 나아진 것 같다. 입단하고 나서부터 진짜 힘든 시간도 많았고 '왜 못 나갈까, 왜 이렇게 2군에서 잘하고 있는데 왜 못 나갈까'라는 생각도 많이 해봤는데 1군에서 타석에 나가니까 부족한 점을 엄청 뼈저리게 느꼈다"며 "2군에서 연습도 엄청 많이 하고 이 순간만을 위해 훈련했는데 올해 (홈런) 하나는 나와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렇기에 모처럼 잡은 기회를 살린 게 팀으로서도 매우 반갑다. 이율예는 "주자가 어디 있었는지 기억도 안 나고 초구와 두 번째에 헛스윙을 하자마자 '큰일 났다. 제발 공이라도 맞춰보자'고 생각했는데 정말 운이 좋았다"며 "(타구를 보며) '제발, 제발'했다. 폴대 쪽으로 가서 휘지만 말라고 바랐는데 운이 너무 좋았다"고 미소를 지었다.
퓨처스와 1군을 오가며 마음고생도 했다. 꿈에만 그렸던 순간이다. 때론 억울했을 때도 있었다. "매일 같이 강화에서 자기 전에 TV로 경기하는 걸 보면서 '나도 치고 싶은데'라는 생각을 거의 매일 같이 했다"며 "진짜 올라오고 나서도 못 나갈 때마다 '나 진짜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가고 싶다' 계속 생각하다가 오늘 하나 보여드린 것 같아 가지고 뿌듯하다"고 털어놨다.
홈런을 날린 뒤 베이스를 돌며 가장 먼저 떠오른 얼굴은 부모님이었다. 이율예는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났다. 내가 첫 홈런을 치면 어떻게 할까, 어떤 기분일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그래도 제가 바라는 걸 올해 하나 목표를 이룬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1군과 퓨처스를 오갔고 스스로는 준비가 됐다고 생각했음에도 쉽게 기회를 얻지 못했다. 부모님 또한 이러한 마음을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그럼에도 묵묵히 뒤에서 응원을 보내줬다. "부모님 생각이 제일 많이 났다. 진짜 고생 많이 하셨다. 매일 같이 경기할 때마다 보러 와주시고 따라다니셨다"며 "부모님이 (경기장에) 안 계실 때 쳐서 아쉬운데 그래도 TV로 보고 계셨을 테니까 정말 감사드린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전했다.
간절히 기다렸던 순간. 이 순간을 꿈꾸면서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을까. 역시나 이율예는 헌신적인 사랑을 보여준 부모님의 얼굴만 떠올랐다. "부모님께는 힘들다는 얘기를 잘 안 했다. 한 번은 고등학교 때 힘들다는 얘기를 했는데 어머니가 우시더라. 너무 제가 힘들어 보였던 것 같다. 그때부터 참고 애써 밝은 척을 했는데 아마 부모님이 가장 잘 아실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 보답해 드린 것 같다. 더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드리고 싶다"고 다짐했다.
이젠 후배들도 생겼다. 이율예는 "시간이 정말 빠르다. 벌써 1년이 지나갔구나 싶다. 그런데 또 1년을 되돌아보니까 성장을 많이 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며 "올 한 해 후회는 안 든다. 후배들이 들어오면 제가 조금이라도 얘기해줄 게 있으면 해주고 맛있는 것도 사주고 선배 형들에게 받았던 것처럼 후배들을 잘 챙기는 선배가 되려고 더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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