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한해 육성 선수의 설움을 딛고 리그 최고의 선수로 올라선 신민재(29·LG 트윈스)의 이야기는 야구팬들에게 많은 감동을 안겼다. 그렇게 제2, 제3의 신민재가 꾸준히 나오기 위해서는 KBO 2차 드래프트의 조건을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올해 신민재는 주전 2루수로서 정규시즌 135경기 타율 0.313(463타수 145안타) 1홈런 61타점 87득점 15도루, OPS(출루율+장타율) 0.777을 기록하면서 LG의 4번째 통합 우승(정규시즌 1위+한국시리즈)의 주역이 됐다. 그 활약을 인정받아 박종호 이후 LG 2루수로서는 31년 만에 골든글러브를 품에 안았다. 이는 2012년 첫 도입돼 7번 치러진 KBO 2차 드래프트 출신 선수 중 최초 사례였다.
리그 최고의 선수로 올라서는 그 서사가 많은 주목을 받았다. 인천고 졸업 후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한 신민재는 2015년 두산 베어스 육성 선수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두산에선 1군 무대를 밟지 못했고 2018 KBO 2차 드래프트를 통해 LG로 팀을 옮기며 빛을 볼 수 있었다.
이처럼 2차 드래프트는 오랜 기간 기회를 받지 못한 저연차 선수들에게 길을 열어주고자 시작됐다. 모두가 신민재처럼 성공한 것은 아니다. 올해 전까지 6번의 2차 드래프트에서 169명이 팀을 오고 갔다. 하지만 이들 중 1군에서 2년 이상 살아남은 사례는 10%도 되지 않는다. 억대 연봉까지 밟아본 선수는 열 명도 채 되지 않는다.
일부 KBO 관계자들로부터 유명무실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한 KBO 구단 관계자 A는 스타뉴스에 "지금 기준으로는 크게 유의미한 제도라고 보기 어렵다. 그래도 구단마다 뽑을 만한 선수들이 한 명씩은 있어야 할 텐데, 할 때마다 한두 명 보이는 것이 고작"이라고 아쉬워했다.
구색 갖추기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는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가 빡빡한 조건이다. 2차 드래프트 도입 당시부터 육성에 강한 구단의 유망주들이 대거 유출돼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의견이 많았다. 실제로 몇몇 구단이 2차 드래프트 초반 열댓 명의 유망주를 내주면서 한 차례 폐지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대안으로 제시됐던 KBO 퓨처스리그 FA도 까다로운 조건 탓에 두 차례 시행에 그쳤다.
2023년 2차 드래프트를 부활시키면서 보호선수 조건이 조금 더 강화됐다. 종전의 40명에서 35명으로 보호선수가 축소되는 대신, 입단 1~2년 차에서 1~3년 차, 당해 연도 FA 신청 선수, 2차 드래프트 실시 전 FA 계약 보상선수로 이적한 선수들은 지명 대상에서 자동 제외됐다.
보호 수가 5명 줄어든 만큼 얼핏 보면 50명의 선수가 더 풀린 것처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어진 후속 조항들은 풀리는 선수의 범위를 더 좁게 했다. 실제로 올해 11월 열린 2차 드래프트에서 몇몇 구단은 풀린 선수가 15명도 채 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KBO 구단 단장 B는 "너무한 것 아니냐고도 했다"라고 귀띔했다. 그 결과 올해는 10개 구단 중 절반이 넘는 6개 구단이 1라운드부터 패스를 외쳤다. NC, 한화, LG의 경우 아예 지명권 자체를 행사하지 않았다.
폐지 전에 비해 라운드별로 1억씩 높아진 양도금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현행 제도에서는 1라운드에 4억, 2라운드에 3억, 3라운드에 2억, 4라운드 이하는 1억 원을 상대 구단에 지급해야 한다. 이 점을 보완하기 위해 상위 라운드 패스 이후에도 다음 라운드 지명이 가능하도록 했으나, 양도금 자체가 높다는 의견이 나왔다.
KBO 구단 관계자 C는 "자동 보호되는 선수들이 늘어나면서 어떤 팀은 70명까지도 묶인다. 그렇게 되면 70~71번째 선수에게 4억 원의 양도금(2차 드래프트 1라운드 기준)을 써야 한다는 이야기다. 또 원체 풀리는 선수가 적은 탓에 같은 1라운드여도 1순위 선수와 10순위 사이의 갭이 크다. 그런데 구단은 같은 4억 원을 줘야 한다"라고 콕 집어 말했다. 이어 "둘 중 하나만 했으면 좋겠다. 보호 선수 명단을 줄여서 4억 원을 줘도 아깝지 않게 하든지, 양도금을 낮춰서 구단들이 한 번 써볼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부메랑이 두려운 구단들의 입장도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미국, 일본과 달리 한국 KBO 리그는 규모가 작은 탓에 포기한 선수가 타 팀에서 성공할 경우, 모기업과 팬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악법으로 여겨지는 외국인 선수 보류권, FA 4년 재취득 조항 등도 같은 이유에서 존속해 있다.
그러나 머리를 맞대면 리그의 상향 평준화와 선수들의 미래를 위한 2차 드래프트의 취지를 잘 살릴 수 있다는 것이 실무자들의 생각이다. 그렇게 많은 선수가 이동하고 제2, 제3의 신민재, 이재학이 나오면 스토브리그도 더욱 뜨거워질 수 있다. KBO 구단 관계자 C는 "조금만 손 봐도 2차 드래프트에서 다양한 시나리오를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양도금도 종전의 1라운드 3억 원 수준으로 낮추고 순번에 따라 계단식으로 1000만 원씩만 낮춰도 구단으로서는 생각이 많아진다"라고 대안을 제시하며 "지금 시스템에서는 쓰기 부담스러운 고연봉 베테랑들만 나올 수밖에 없다. 정작 기회가 더 필요한 선수들은 또 외면받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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