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군가는 강하늘(24)의 행보에 놀랄 것이다. SBS '상속자들'에 이어 영화 '쎄시봉', '스물', '순수의 시대'에 연이어 캐스팅 됐고, tvN '미생'을 통해 말 그대로 대세로 떠오른 이 시점, 누군가는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라고 할 수 도 있는 상황 아닌가.
반대로 강하늘을 만나 본 사람이라면 그의 연극 선택에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지난여름 영화 '소녀괴담' 인터뷰에서 만난 강하늘은 꼭 하반기 중에 공연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간절히 드러냈었다. 그런 그가 원하던 연극을 하게 됐으니 그 기쁨이 얼마나 컸을까. 내년 1월 9일로 예정된 '해롤드&모드'의 개막을 앞두고 다시 만난 강하늘은 다시 무대에 오른다는 기대감으로 충만해있었다. 비록 몸은 힘들지라도.
"스케줄은 참 방법이 없더라고요. '미생', 연극연습, 무작정 다 하고 있어요(웃음). 더 이상은 공허한 상태로 있을 수 없었어요. 솔직히 말하면, 지금 이 타이밍에 연극을 한다는 건 욕심인데, '이 템포만 쉬고 연극을 하자'는 마음이 들지 않았어요."
"마음의 공허함이 컸어요. 매체 연기를 할 때 순발력이 굉장히 많이 필요해요. 순발력에는 물론 도움이 되는데 근본적으로 100을 할 수 있다면, 더 공부해서 120,130을 하는게 아니라 100에서 점점 떨어지고 있는 느낌이 싫었어요. 전 알거든요. 이 상태로 가면 제 밑천이 드러날 것이라는 걸. 연극을 통해 부족한 것을 메우는 작업을 하는 중이예요."
그렇게 좋아하는 무대를 떠난 브라운관, 스크린으로 활동을 넓힌 것도 사실 무대에서 든 생각들이 일조했다. 자신이 조금 더 알려지면 좋은 작품들을 관객들에게 더 알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매체 연기를 시작한 이유가 있었어요. 주변에 정말 뼈 빠지게 두 달간 연습을 했지만 관객이 7~8명만 들어서 문을 닫는 작품이 너무나 많았어요. 이렇게 말하면 좀 이상할지 모르지만 화가 났어요. 그 좋은 작품을 보여드릴 수가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내가 조금이라도 알려지고, 좋은 작품을 선택해서 나를 보러 온 사람들이 이 작품을 알아가고, 좋은 선후배 배우들을 알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조금 건방질 수 있지만 지금 연극을 하면 이 작품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미생'이 잘 됐으니까(웃음)."
무대에는 대체 무슨 매력이 있기에 강하늘을 비롯한 많은 배우들이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걸까. 강하늘은 '마약'같기도 하다고 표현했다.
"제 인생의 첫 작품이 중학교 2학년 때였어요. 전 그때 배우가 아니라 소품팀이었는데 커튼콜에 다 같이 인사를 하는데 펑펑 울었어요. 무슨 감정인지 지금도 모르겠어요. 그냥 눈물이 막 났어요. 그 감정을 못 잊어서 계속 연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박정자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희열 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느낌은 알죠. 배가 너무 아플 때 화장실에 있는 사람이 안 나올 때, 그런 기분하고 비슷해요(웃음). 간질간질하고, 마약 같기도 한 것 같고."
'해롤드&모드'는 이미 국내에서도 수차례 무대에 오른 작품. 그간 이종혁, 조의진, 이신성 등 배우들이 해롤드를 연기했다. 강하늘이 만들어가고 있는 해롤드는 어떤 모습일까?
"처음부터 이전의 해롤드과 비교에 대한 생각은 없었어요. 저에게는 처음 작품이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조금 더 관객들이 이해하게 만들까하는 고민을 하고 있지, 이전 해롤드는 이랬으니까 나는 다르게 해야지 하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어요. 나중에 정말 제가 하고 싶은 '헤드윅'을 하더라도 그런 생각일 것 같아요."
강하늘은 '해롤드&모드' 출연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로 대선배 박정자와 함께 호흡을 맞춘다는 점을 꼽았다. 강하늘이 가지는 기대가 높은 만큼 박정자, 우현주, 홍원기, 김대진 등 '해롤드&모드' 출연진들이 강하늘에게 가지는 기대도 만만찮다. 박정자는 강하늘 덕에 예매율이 굉장히 높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첫 연극에 도전하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기대감, 부담스럽지는 않을까.
"언젠가 제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제가 연기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은 항상 부담이었다는 것이죠. 부담감이 저를 계속 연기할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에요. 어려서부터 내 능력보다 더 큰 것들을 맡아 왔어요. 그 역할을 해내기 위해서는 실수는 용납되지 않았어요. 잘해야만 했죠. 물론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그걸 어떻게 이겨낼까 하는 고민도 저에게는 다른 의미의 재미예요."
부담감이 원동력이라는 그에게 조금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어봤다. 고등학교 때 오디션을 본 작품에서 덜컥 주인공이 됐을 때도, 대학교 1학년 때 교내 공연 '햄릿'에서 신입생인 강하늘이 오디션에서 햄릿 역을 꿰차 눈총을 받았을 때도 그는 더욱 이를 악물었다.
"피하고 싶은 적도 많았죠. 다른 길로 갈 수 있는데 그러면 얻을 것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못하고, 깨지고, 부서져도 해보자는 마음이었고 지금도 그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익숙해지고 많은 걸 알게 되면 점점 쉬운 길을 택하게 되잖아요. 물론 더 빨리 이루고, 마음도 편하겠지만 얻을 것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어린 나이에도 연기에 대한 강하늘의 주관은 확고하다. 무대에 대한 집념도 일맥상통한다. 주변에 있는 연기를 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나는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라고 느낀 것도 많다. 점점 그 결실을 맺고 있지만, 그는 아직도 당당하게 '배우 강하늘'이라는 말을 하지 못한단다.
"제 꿈은 남들 앞에서 '안녕하세요. 배우 강하늘입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에요. 글을 쓰는 작가님들도 남들에게 자신을 '작가'라고 소개하기 힘든 경우가 많잖아요. 전 아직도 당당하게 배우라고 말을 하지 못해요. 당당하게 말 할 수 있는 때가 오는 것이 꿈이고, 배우고 남고 싶다는 거창한 말보다는 가늘게, 얹혀가면서 하는 게 꿈이에요(웃음)."
올 한해 강하늘에게는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영화를 찍었고, 드라마를 찍었고, 무대에도 올랐다. 개인적인 크고 작은 일들도 물론 있었다. 2015년을 앞둔 지금, 강하늘은 내년도 올해와 같은 마음을 잃지 않길 소망한다.
"연말이 되면 잡생각이 많아져요. 어제였나. 참 고생 많다는 생각을 했어요. '너 참 고생한다'했죠. 다행인건 그 고생 속에서 '미생'이 잘 된 건 물론이고 좋은 일들이 많았다는 거예요. 안 좋은 일들도 물론 있었죠. 그럼에도 크게 휘청거리지 않으면서 웃을 때는 너무 과하게 웃지 않았고, 울 때는 과하게 울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제 주관을 잘 지켜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내년에도 이 생각이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목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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