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이타닉 생존 이후 비참한 삶을 살았던 일본인의 사연이 공개됐다.
5일 MBC '신기한 TV 서프라이즈'에서는 '익스트림 서프라이즈'로 '타이타닉호의 일본인'을 선보였다. '타이타닉 호의 일본인'에서는 1913년 행운의 사나이에서 비난의 대상이 된 한 사나이의 사연을 전했다.
이 사나이는 호소노 마사부미로 그는 러시아 유학 마친 뒤 영국 런던에 갔고, 미국 뉴욕을 거쳐 일본으로 돌아올 예정이었다.
호사노 마사부는 가족과 만남을 기다리며 타이타닉호에 탑승했다 .하지만 출항 후 4일 만에 배는 북대서양 한 가운데에서 빙산에 부딪혀 침몰했고, 2200 승객 중 1500여 명의 승객이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711명만이 목숨을 건지는데, 그 중 한 명이 호소노 마사부미였다.
일본에서는 호소노 마사부미의 생존 소식을 대서특필했다. 호소노 마사부미는 행운의 일본인이었다. 하지만 1년 만에 비겁한 일본인으로 낙인찍혔다.
이는 로렌스 비슬리가 쓴 회고록 때문이었다. 그의 책에는 구조 당시 상황이 상세히 묘사돼 있었다. 타이타닉 구명보트는 20척. 따라서 여자들과 어린이먼저 구명보트에 태웠다. 하지만 "내가 먼저 살겠다"며 사람들을 내몰고 구명보트에 탄 일본인이 있었다고 책에 기술했고, 타이타닉에 탄 일본인은 호사노 마사부미 뿐이었다.
책 발간 이후 그래서 호사노 마사부미는 거리를 걸을 때에도 손가락질을 받을 정도였고, 살해위협은 물론 자살을 종용받기도 했다. 수 십 년간 일해 온 직장에선 좌천되기까지 했다.
결국 평생 비난과 모욕을 받았던 호사노 마사부미는 사망 후에야 '더 가디언스'의 보도로 정당하게 구명보트에 탑승한 사실이 알려졌다.
호소노 마사부미의 손자는 그가 직접 쓴 일기를 발견했고, 일기엔 침몰 당시 상황이 상세히 기록돼 있었다. 일기에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시 볼 수 없을 아내를 그리워했다"고 적혀 있었다. 또 "어떤 남자가 구명보트에 뛰어드는 것을 본 순간 기회라고 생각했고, 주변엔 나 밖에 없어서 본능적으로 뛰어들었다"고 기재돼 있었다.
이와 함께 또 다른 생존자 네샨 크레코리안이 쓴 회고록을 발견됐다. 회고록 내용은 마사부미 일기에 적힌 상황이 일치했고, 일본인과 함께 노를 저었다는 구절까지 적혀있었다. 결국 로렌스 비슬리와 호소노 마사부미가 같은 구명보트에 타지 않았음이 알려졌고, 사망 후 58년이 지나서야 오명을 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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