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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헤밍웨이子, 63세에 성전환 수술한 사연

발행:
공미나 기자
/사진=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방송화면 캡처
/사진=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방송화면 캡처


세계적인 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둘째 아들은 왜 63세 나이에 성전환 수술을 했을까.


2일 오전 방송된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둘째 아들 그레고리 헤밍웨이의 안타까운 삶을 소개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휩쓸며 20세기를 대표하는 대문호로 알려져 있다.


2001년, 헤밍웨이의 딸이라고 주장하는 한 할머니가 나체로 공원을 활보하며 외설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하지만 헤밍웨이에게는 세 아들만 있을 뿐 딸이 있다고 알려지지 않았고, 경찰은 할머니의 말이 거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할머니는 뜻밖에도 헤밍웨이의 둘째 아들인 그레고리 헤밍웨이였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생전 4번의 결혼과 3번의 이혼을 했다. 그의 절친인 작가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는 "헤밍웨이는 큰 책을 하나 내놓을 때마다 새 부인이 필요하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2001년 여성의 모습으로 나타난 그레고리는 1931년 헤밍웨이와 두 번째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늘 아버지의 사랑에 굶주려 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싶었던 그레고리는 아버지를 따라 사격을 즐기고, 글을 쓰기도 했지만 번번이 아버지로부터 상처만 받았다.


그레고리가 8살이 되던 해인 1940년, 헤밍웨이는 아들과 아내를 버리고 집을 나갔다. 이 과정에서 그는 아내와 아들의 생계를 위한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아 법원으로부터 처자유기죄로 양육권을 박탈당했다.


이후 그레고리의 어머니가 암으로 사망하자 헤밍웨이는 그의 죽음을 그레고리의 탓으로 돌렸다. 그러면서 헤밍웨이는 두 번 다시 그레고리를 만나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아버지를 향한 상처와 원망만 커져갔다.


/사진=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방송화면 캡처

그러던 1960년 뜻밖에도 헤밍웨이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 후로도 그레고리는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는 그레고리 자신이 아버지 해밍웨이와 똑같이 닮아있었기 때문이었다. 헤밍웨이가 4번의 결혼을 한 것처럼 그레고리도 4번의 결혼을 했다. 심한 조울증을 앓던 것도 비슷했다.


무엇보다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 점이 닮아 있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로 인해 강제로 여장을 하며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 헤밍웨이는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더욱 남성적인 취미를 갖게 됐다. 그레고리 역시 성 정체성에 많은 혼란을 느꼈다. 일각에 따르면 그레고리가 성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 것은 반대로 너무도 남성적인 아버지의 영향이었다고 한다.


급기아 1995년 그레고리는 63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성전환 수술을 받고 글로리아 헤밍웨이라는 이름으로 살게 됐다. 하지만 그 후로도 우울증이 계속됐고, 이에 2001년 9월 알몸으로 거리를 활보하다 체포됐다. 이후 글로리아는 공판을 받기 직전 10월 2일 여성 교도소에서 심혈관 질환으로 사망했다.


글로리아 헤밍웨이는 사망 1년 전 회고록을 출간, "내가 진정 원했던 것은 헤밍웨이의 영웅이 되는 것이었다"는 고백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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