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김명민(48)이 '하얀거탑' 장준혁, '베토벤 바이러스' 강마에에 이은 또 하나의 레전드 캐릭터를 남겼다. 그가 JTBC 수목드라마 '로스쿨'(극본 서인, 연출 김석윤)에서 선보인 로스쿨 교수 양종훈은 정의가 절실해진 요즘 세상에 시청자를 학생삼아 강의하는 듯한 모습으로 큰 울림을 줬다.
'로스쿨'은 대한민국 최고의 명문 로스쿨 교수 양종훈(김명민 분)과 학생들이 전대미문의 사건에 얽히게 되면서 펼쳐지는 캠퍼스 미스터리. 양종훈이 서병주(안내상 분) 변호사의 살인 혐의로 재판에 서자, 로스쿨 학생 한준휘(김범 분), 강솔A(류혜영 분), 강솔B(이수경 분), 서지호(이다윗 분), 전예슬(고윤정 분), 유승재(현우 분) 등이 스승 양종훈의 혐의를 벗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담으며 예비 법조인들이 법과 정의를 깨닫는 모습을 전했다.
'로스쿨'은 살인, 미성년자 성폭행, 데이트 폭력, 몰카 유포 협박, 논문 표절, 해킹, 배드 파더스, 피의사실 공표죄, 댓글 여론 조작 등 실제 사회적 이슈를 상당수 반영해 메시지를 줬다. 극적인 짜임새, 배우들의 열연, 엔딩 맛집의 연출이 어우러진 '로스쿨'은 시청자들에게 호평 받고 최고 시청률 6.9%를 기록하며 종영했다.
김명민은 극중 검사 출신 형법 교수 양종훈 역을 맡았다. 양종훈은 '소크라테스 문답법'식과 직설화법의 독설, 채찍형의 수업을 해 학생들이 기피하면서도 존경하는 인물. 오로지 '법에 입각한 진실과 정의'를 생각한 그는 자신의 살인 혐의를 벗겨주려는 학생들에게 객관적 질문을 건네고 법리로 악에 정면승부를 하며 참 교수, 참 법조인의 모습을 보여줬다. 양종훈은 빌런인 국회의원 고형수(정원중 분), 진형우 검사(박혁권 분)에게 자신의 무혐의를 입증하며 이들의 범법 행위를 고발, 권선징악의 엔딩을 그렸다.
-'우리가 만난 기적' 이후 3년 만의 복귀작을 마쳤다. 양종훈의 딱딱한 말투와 단호한 행동이 '베토벤 바이러스' 강마에를 연상케 하기도 했다.
▶처음에 이 대본을 봤을 때부터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 캐릭터와 너무 비슷하더라. 일부러 그렇게 썼다고 하더라. 감독님이 "많은 사람들이 10여 년이 지난 작품이지만 '베토벤 바이러스' 같은 김명민의 그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고 하더라. 강마에의 기시감을 극복하려고 노력했지만 말투에서 나오는 것들이 어쩔 수없이 비슷해진 부분도 있었다. 그래도 양종훈 특유의 모습이 보인 것 같아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로스쿨'이 본격 법정물로 처음 접했을 때 어렵진 않았나.
▶작품이 어려웠다. 하나 하나의 사건을 이야기 나누면서 볼지 몰랐다. 내가 관객들에게 이 드라마를 어떻게 어필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처음에 이 드라마의 대본을 읽고 감독님에게 역으로 제안했다. 처음에 김석윤 감독님이 아니었는데, "이걸 소화할 수 있는 김석윤 감독님은 감독님밖에 없습니다"라고 했다. 감독님과 작가님, 제가 최대한 시청자들에게 불편하지 않게 잘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시청자들이 해야 할 몫을 준 게 '로스쿨'의 매력이라 생각한다.
-대사 호흡도 길고 법적 용어가 많았다. 연기하기에도 쉽지 않았을 텐데.
▶힘들고 괴로웠다. 한 페이지 정도의 대사 분량을 똑같이 외워도 시간이 10배 이상 걸렸다. 잠깐 딴 짓하고 나면 까먹는다. 항상 잠꼬대 하듯이 외웠다. 이해가 없이 외울 수 없어서 사전, 판례를 찾아 보고 내가 이해가 됐을 때 관객들에게 전달하려고 했다. 정의를 구현하는 것은 법조인이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고, 독설가의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양종훈이 내면으로는 제자를 생각하는 사람이어서 매력적이었던 것 같다.
-'양크라테스' 양종훈 역을 표현하기 위해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 '개과천선' 김석주 변호사와 또 다른 준비를 했을 텐데.
▶나도 실수하고 싶지 않고 부족한 걸 알기 때문에 양종훈처럼 완벽해지려는 성격이 비슷하다. 김석주 변호사와 양종훈은 맥을 같이 한다. 김석주는 선이었고 양종훈은 악처럼 보이지만 악이 아니다. 양종훈 같은 사람들만 사는 세상이면 행복할 것 같다. 양종훈 같은 삶은 사는 법조인이 계시다면 '로스쿨'을 보고 힘을 얻으셨길 바란다. 양종훈과 나는 어느 정도는 닮은 것 같다. 내가 보면서도 양종훈이 재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재수 없는 사람은 아니다.(웃음)
-강의나 법정신에서 연극처럼 진행된 신이 많았다.
▶법정신에서 가장 주되게 생각한 것은, 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데 시청자들은 오죽하실까 싶었다. 양종훈이 다른 인물들에게 얘기하기 이전에 무조건 시청자들에게 납득을 시켜야겠다고 생각하며 설명했다. 작가님도 양종훈을 대변해 설명하려고 해서 더 알기 쉽게 이해시키는 게 내 몫이었다. 집사람에게도 연습해보면서 '내가 하는 게 이해가 돼?'라고 물으며 반복적으로 연습했다.
-역할 표현을 위해 실제 법조인의 도움을 받기도 했는지.
▶기존 사건들을 찾아봤다. 작가님의 의도를 내가 바로 이해하지 못해서 간극을 좁혀가는 과정에서 몇 개월의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내가 이해를 못하면 이 드라마를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인물들 간의 관계, 수미상관, 앞뒤 과거 교차가 되는 장면이 많아서 그걸 다 정리하고 연기하려고 했다. 준비 과정이 1년 정도는 걸렸다.
-김명민이 생각하는 양종훈은 어떤 사람인가.
▶내가 연기해서인지 양종훈은 사랑스럽다. 조금 밥맛 없고 재수 없지만 잘나서 어쩔 수 없다. 이런 스승에게 배울 수 있다면 그 학생들은 행운인 것 같다. 적이 되면 피곤하겠지만 이런 사람이 내 편이면 얼마나 든든하겠는가. 집에서도 퍼즐을 맞추고 있는데 고형수와 싸우면서 외로움이 컸을 것 같다. 나도 촬영하면서 양종훈에 대해 응원하게 됐다. 양종훈은 나에게 애틋하다.
-김석윤 감독과 법정물로 재회했다. 김명민이 생각하는 김석윤 감독의 매력은?
▶감독님과 영화 '조선명탐정' 코믹 시리즈로 함께했는데 드라마로 함께 하면 어떨까 기대가 있었다. 예상 만큼 좋았는데, 팬데믹 속에서 많은 걸 나누지 못했다. 그 외적으로 사담과 꽁냥꽁냥한 것들 못해서 지금도 한이 남아있다. 실수를 안 하려다 보니 사적인 얘길 더 나누지 못해 속상하다. 감독님은 형, 동생 같고 가족 같았다. 배우가 편한 것이 곧 드라마가 잘 되는 것이라 생각하는 최고의 감독이다. 나는 일단 김석윤 감독을 보면 무한 신뢰가 생기고 나를 힘들게 하지 않을 감독님이라고 생각이 든다. 감독님마다 스타일이 다른데 김석윤 감독님은 콘티를 사전에 철저하게 해오신다. '배우들 앞에서 절지 말자'는 말이 되게 힘이 된다. 쉬는 날에도 리허설 하는 모습을 보고 진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배우들을 힘들게 하지 않고 효율적으로 장면을 끌어내는 분이다. 우리 현장은 김석윤 감독님과 스태프들로 천군만마를 얻었다.
-류혜영, 김범, 이수경, 이다윗, 고윤정 등 '로스쿨즈'와의 호흡, 이정은과 교수로서의 호흡은 어땠나.
▶후배들의 연기를 보면서 정말 로스쿨인 것 같았고 그들의 공기를 해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양종훈에 대한 디렉션이 나올 정도로 너무 좋았다. 누구하나 빠질 것 없이 다 대체할 수 없는 배우였다. 후배들에게 고맙다고 인사 전하고 싶다. 역할에서 정은이 누나는 내가 유일하게 속내를 터놓을 수 있었다. 실제 이정은이란 사람도 그랬다. 나의 과거를 다 얘기하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처음부터 스스럼 없이 '누나'라고 불렀다. 누나가 보양식을 챙겨주기도 해서 더 친누나처럼 가까워졌고 좋았다.
-'로스쿨' 마니아 시청자들이 많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드라마에 시청자들이 목말랐던 것 같다. OTT라는 새로운 문화가 우리들에게 빨리 오면서 자극적이고 편향된 장르물이 많이 나오고 있었다. 그 와중에 우리 드라마는 20여 년 전에 나온 '카이스트'란 드라마처럼 휴머니즘과 법정, 스릴러가 있다. 쉽게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없는 장르여서 이런 장르물을 방송사에서 기피했을 텐데 그래서 시청자들은 더 반가워한 것 같다.
-극중 사회적 이슈가 많이 등장했다. 시청자들에게 '로스쿨'이 어떤 작품으로 남길 바라는지.
▶내가 법조인이 아님에도 법조인의 역할을 한 배우로서 가슴 속에 뜨거움을 느낄 때가 꽤 많았다. 치열함에서 뭔갈 얻으려는 로스쿨 학생들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 사회의 이야기를 투영시키고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나도 배우로서 간접 체감하는 게 컸던 작품이었다. 그래서 여운도 길게 남을 것 같고 살면서 비슷한 사회적 문제가 나오면 '로스쿨' 생각이 간절히 날 것 같다. '로스쿨'은 계속 회자되는 작품으로 남았으면 좋겠고 두고두고 볼 수 있는 작품이 됐으면 좋겠다.
-극중 가장 통쾌했던 장면은?
▶나는 약간 변태인가?(웃음) 사람들이 많을 때 누구 한 명을 면박줄 때 그렇게 기분이 좋더라. 박혁권 씨가 아이러니하게 '하얀거탑' 때부터 나에게 당하는 역할이었다. 박혁권 씨의 연기를 대단하다고 좋다고 느끼는데 혁권 씨가 나와 함께하면 신명이 나는 느낌이다. 전장에 나갈 때 10명의 장수보다 혁권 씨와 나가는 게 더 좋을 정도다. 이번에도 너무 얄밉게 잘 연기해줘서 양 교수가 더 살 수 있었다. 혁권 씨와의 장면에서 쾌감과 사이다가 더 있었다.
-'로스쿨'의 웅장한 세트장도 큰 몰입감을 줬다.
▶정의의 여신상이 있는 세트장 하나만으로 굉장히 웅장해서 놀랐다. 미술 감독님도 고민이 많았고, 양종훈 교수의 방도 표현하기 위해 고민했다. 양종훈은 정의의 여신상을 보면서 항상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김명민에게 '로스쿨'은 어떤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은가.
▶나를 힘들게 한 만큼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종종 양종훈을 떠올릴 것 같다. 내가 살아가고자 하는 지향점과 양종훈이 일맥상통하는 게 있다. 내가 앞으로 배우로서 어떤 자세로 시청자들에게 나아가야겠다는 가치관 정립이 조금 더 된 것 같다.
-'하얀거탑' 장준혁, '베토벤 바이러스' 강마에 등 다양한 전문직을 연기했다. 가장 어려웠던 캐릭터는 무엇인가.
▶매 연기가 어렵다. 그 순간엔 죽기 아니면 살기로 연기한다. 방법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만족스러울 때까지 연기한다. 그냥 될 때까지 한다. 기본적으로 내가 읊고 있는 대사에 대해 이해를 하려고 한다. 의학 용어, 법률 용어 속에서도 시청자들에게 전달을 잘 하려고 한다. 전문직은 늘 어려운 것 같다.
-레전드 캐릭터가 많아 시청자들이 그만큼 기대하는 강렬한 캐릭터를 보여줘야겠다는 부담이 있진 않은지.
▶캐릭터에 대한 고민은 항상 있다. 나를 기억하는 분들에게 기시감을 안 주기 위해 고민한다. 10년에 한 번씩, 잊어버리실 때쯤 하는게 괜찮을 것 같다. 내가 지금 쉰 이니까(웃음) 5년에 한 번 해야 될까. 조금 생각을 해보고 차기작을 해보려 한다.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면서 슬럼프나 매너리즘도 있진 않았는지.
▶슬럼프는 종종 꾸준히 있었다. 그 순간엔 절벽에 있는 것 같다. 꿈속에서도 그 장면이 나온다. 결국 나로부터 시작된 것이기 때문에 해결책도 나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작품을 하고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되면서 나도 조금씩 발전하는 것 같다. 아직 나는 발전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2004년에 연기를 그만두려 했을 때가 제일 큰 슬럼프였고, 작은 슬럼프는 나에게 큰 활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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