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기 팀들 모두 누가 우승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이 과정 자체가 저에게 좋은 발전을 준 것 같아요. 좋은 의미로 저의 신념이 깨지기도 했고요. '나는 이걸 오래 더 할 수 있겠다'라는 점이 엄청 큰 안도가 되면서 엄청 큰 감사가 됐어요."
댄서 리정이 이번에도 매서운 기량으로 자신의 입지를 입증했다. 엠넷 댄스 배틀 예능 '스트릿 우먼 파이터'(이하 '스우파') 시리즈에서 리정은 어느덧 절대 빼놓고 말할 수 없는 존재의 멤버가 됐는데, 이번 '월드 오브 스트릿 우먼 파이터'(WSWF, 이하 '스우파3') 방영과 함께 그가 안무 창작자로 참여한 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가 동시기에 공개되면서 리정은 'K-팝 댄스의 자부심'으로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저는 춤 추는 저를 좋아하는데 사람들에게 그게 티가 많이 나는 것 같아요. 저는 누가 제안했을 때 요만큼의 반박도 못 하게 정말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춤을 너무 사랑해요. '아티스트'란 말을 너무 좋아하는데 결국 내가 좋아하는 타이틀까지도 잠깐 옆으로 두고 온전히 저이고 싶을 정도예요. 저는 항상 솔직하게 춤을 추고 솔직하게 창작을 하고 싶어요."
'스우파3'는 엠넷 메가 히트작 '스트릿 우먼 파이터'의 세 번째 시즌으로, 한국을 포함해 뉴질랜드, 미국, 일본, 호주까지 총 5개국 6크루의 '국가 대항전'을 펼쳤다. 한국 팀인 '범접'(BUMSUP)은 세미파이널에서 최종 탈락하며 고배를 마셨다. '팀 코리아' 범접은 '스우파' 시즌1을 빛낸 리더들과 '왁킹 퀸' 립제이까지 합류해 탄생한 어벤져스 팀이다. 허니제이를 주축으로 가비, 노제, 리정, 리헤이, 립제이, 모니카, 아이키, 효진초이가 모였다.
호주 대표 크루인 에이지 스쿼드(AG SQUAD)는 세계적인 댄스 크루 '로얄 패밀리'의 전성기를 이끈 1세대 핵심 멤버들로 구성된 팀. 메인 트레일러에서 언급된 '빨간 머리 그 언니' 카에아가 리더로 있는 팀으로, 강렬한 카리스마는 물론, 다수의 댄서들이 리스펙트를 표했다. 미국을 대표하는 모티브(MOTIV)는 정통 올드스쿨 힙합 댄서 말리가 리더로 있는 힙합 크루다. 묵직한 무브와 독특한 개성들이 매력 요소로 꼽히는 팀으로, 10대 시절 크루를 결성해 '월드 오브 댄스' 등 세계 무대를 밟으며 성장한 말리 외에 미국 브레이킹 국가대표인 로지스틱스가 소속됐다.
오사카 오죠 갱(OSAKA Ojo Gang)은 힙합과 배틀 문화에 뿌리를 둔 스트릿 신 중심의 오사카 크루로, 세계 유수 댄스 배틀에서 우승을 쓸어 담고 있는 이부키와 쿄카가 중심에 있었다. '왁킹 퀸' 이부키가 립제이와 한판 승부를 벌였다. 알에이치도쿄(RHTokyo)는 오사카 오죠 갱과 나란히 일본 대표로 출격, 도쿄의 상징적 댄서이자 K-POP 신에서도 현역 안무가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리에하타가 리더로 있었다. 멤버 중 레나는 '스우파2'에서도 활약한 이력이 있다.
'스우파3'는 지난 22일 방송에서 막을 내렸다. 에이지 스쿼드, 모티브, 오사카 오죠 갱의 마지막 춤 싸움이 펼쳐졌고, 오사카 오죠 갱이 최후의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에이지 스쿼드, 3위는 모티브가 차지했다. '스우파3'는 1회 0.8%(이하 닐슨 코리아 기준 전국 유료 가구 시청률)로 출발해 지난 8회 1.2%로 상승했으나, 최종회에서 0.7%의 최저 시청률을 기록하며 아쉬운 마무리를 했다. 그러나 화제성 분석 업체 굿데이터코퍼레이션 펀덱스(FUNdex)이 발표한 TV-OTT 비드라마 부문 화제성 순위에서 7주 연속 1위를 수성한 것은 물론, 7월 3주 차 기준 비드라마 출연자 화제성 순위에서도 범접, 오사카 오죠 갱, 쿄카가 1위부터 3위까지 싹쓸이하는 등 화제성에서는 압도적인 결과를 나타냈다.
리정은 미국 힙합 디바 사위티(Saweetie)의 솔로 퍼포먼스 안무를 구성해야 하는 해당 미션에서 아티스트 역할을 맡아 무대의 중심을 잡았고, 동료 댄서들과 함께 완벽한 한 편의 작품을 만들어냈다. 사랑스럽고 통통 튀는 스타일링, 유려한 완급 조절의 퍼포먼스로 이목을 끌어당긴 리정은 시청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으며 미션을 소화했다. 뿐만 아니라 리정은 최근 글로벌 인기를 얻으며 전 세계 음원 차트를 폭격하고 있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안무 제작자로 참여, 극 중 대결 구도를 이루는 걸그룹 헌트릭스와 보이그룹 사자 보이즈의 '칼군무'를 완성하는 등 고품격 K팝을 구현해내며 흥행에 일조했다.
리정은 세계적인 댄스팀 Just Jerk 출신으로 Body Rock, 힛 더 스테이지, 아메리카 갓 탤런트 시즌12, 평창 올림픽 개막식에 참가했고, 2016년 FEEDBACK 2SHOW 듀엣 부문 1위를 했으며, 2019년에는 FEEDBACK COMPETITION 7 대회에 Just Jerk 크루로 참가해 준우승했다. 그는 트와이스, 있지, 효연, 전소미, 청하, 블랙핑크, NCT 태용, 트레저, 스트레이 키즈, 엔하이픈, 미야오, 이즈나, NCT DREAM 등 다양한 아이돌의 안무가로 참여하면서 K-POP 팬들에게 이름을 알렸으며, 2021년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 출전하며 인지도를 높였다. 리정은 2019년 YG엔터테인먼트 소속 안무가 에이전시 YGX의 외부 댄서 혼성 영입팀인 NWX에 합류해 지난해 7월 YGX가 해체될 때까지 해당 팀에서 활동했다.
-'스우파3' 종영 소감은?
▶함께 해서 너무나 영광이었고 행복했고, 힘들기도 했지만 아주 뜻깊었다.
-범접이 우승하지 못한 아쉬움은 없는지.
▶개인적인 아쉬움은 없다. 저는 매순간 최선이었기 때문에. 파이널에 가지 못한 것은 겸허히 받아들였다.
-경연 중 오열한 장면도 있었다.
▶저는 영상 매체로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이 많아서 라이브로 선 적이 잘 없었다. 가족들, 친구들 모두 초대를 해서 춤으로 '내가 여러분 덕분에 제가 여기 있습니다'를 보여주고 싶었다. 패배감 때문에 운 건 아니었다.
-저스트 절크 시절 때 서바이벌에 참여했던 것과는 어떻게 느낌이 달랐는지.
▶그때와 비교하면 문화가 많이 발전했다고 하는데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마음으로 서바이벌에 임했다.
-'스우파3'는 '국가 대항전'이었다. 부담이 많이 됐겠다.
▶부담이 안 됐다면 거짓말이겠다. 내가 이 나라를 대표한 것이지 않냐. 국가를 대표해 보기도 하고, 다른 나라의 대표도 만나면서 울고 웃기도 하는데 이 모든 게 춤으로 이뤄졌다는 게 너무 벅차고 감동스러웠다. '스우파'의 경쟁은 끝났지만 제가 이 나라를 잘 대표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보겠다. 쿄카는 내가 춤을 시작할 때부터 너무 유명했다. 심사를 해도 되는 사람이 참가자로 나오는 게 신기했다. 그녀는 이미 너무 많은 걸 증명해냈는데, 쿄카가 출연한 이유는 문화 발전과 이 직업을 위해서라고 믿는다. 그런 분들을 보면서 저도 엄청난 공부가 됐다.
-'스우파'가 한국 프로그램이어서 당연히 한국팀이 우승해야 하지 않을까란 부담감도 있었겠다.
▶내가 해낸 것이 있지만 그럼에도 증명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부담감 때문에 제가 무언가를 포기한 적은 없었다. 춤을 추는 사람으로서 문화권을 핑계 삼는 건 비겁하다고 생각한다. 그들도 집 떠나와서 한국에 와서 처음부터 K팝 미션을 한 거다. 나도 문화가 어렵다고 생각하면 스스로가 미울 것 같다. K팝 미션이 세상에 처음 공개됐을 때 여러 반응을 보면서 너무 슬펐다. 당시 마주한 내 부족함의 적나라함이 있었고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았다.
-범접이 결국 '스우파3'에서 4위를 했는데.
▶배우 분들이 작품마다 여러 인물이 되듯, 저는 범접의 방식으로 해석한 '스위티'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저는 그 무대를 너무 좋아하고 뜻깊다고 생각한다.
-범접의 메가크루 댄스 영상이 1500만 뷰를 돌파하며 큰 화제를 모았다.
▶총괄을 해준 허니제이 언니 감사하고, 우리 범접 멤버들 모두 감사하다. 공감하고 봐주신 분들도 진심으로 감사하다. 저희는 이 나라를 너무 사랑해서 나라를 대표하는 마음으로 했는데 공감해 주셔서 감사하다. 사람들끼리 많이 토론하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 생각하는데 그런 게 이뤄져서 좋았다. 그 시기만큼은 누구보다 우릴 자랑스러워 해주셔서 좋았다.
-저스트 절크 시절부터 '스우파' 등 서바이벌을 많이 해왔는데, 멘탈 관리는 어떻게 하는 편인가.
▶저는 가장 솔직하고 투명하게 즉각적으로 증명하려고 한다. 자격지심, 질투도 빠르게 인정하고 그 다음에 내가 해야하는 게 무엇인지를 본다. 감정을 너무 이겨내려고만 하지 않고 스스로가 밉다는 상황을 인정한다. 잘 보완하고 멘탈을 잡아야겠다 생각한다. 그런데 저도 사실 울 때도 너무 많다.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에 참여한 사실도 화제가 됐다.
▶'케데헌'은 제가 3년 전 스케치가 나왔을 때부터 오랫동안 함께 했지만 늦게 알렸다. 저보다 권리를 누려야 되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게 내 춤이란 걸 알아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케데헌' 참여 과정은 어떻게 되는지.
▶소니 애니메이션 측에서 안무를 제작해 줬으면 좋겠다고 미팅을 제안했을 때 무조건 해야겠다 생각했다. 더블랙레이블 분들이 하면 무조건 해도 되겠다 싶었다. 왜 이걸 하고 싶은지, 왜 제가 필요한지 들었을 땐 제가 무조건 해야겠다 싶었다. '스우파'를 한 후였는데, 그때의 제 가능성을 봐주셨다고 하더라.
-'케데헌'에는 어떤 특징을 담으려고 했는지.
▶노래를 듣고 스케치를 보고 캐릭터 설명을 들었는데, '이들에게 물리적 한계는 없습니다. 하고 싶은대로 하세요'란 말을 듣고 너무 좋았다. '대박, 감사합니다' 하고 이들이 어떻게 등장할 것인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비행기를 타고 콘서트 현장에 착지할 거다'란 말을 듣고 '되게 준비가 된 것 같다. 너무 좋다. 나도 찢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도 하나의 인격체라 생각해서 너무 말도 안 되는 기술을 넣진 않았다. 굉장히 재미있는 작업이었다.
-'케데헌' 안무를 짤 때 레퍼런스가 된 K-팝 가수가 있나.
▶레퍼런스는 없었다. 저에게 좋은 영감은 음악이다. 음악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말 그대로 꿈을 펼쳤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어깨춤'을 많이 커버했는데, 누가 제일 잘 커버했다고 생각하는지.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안무들이 있는데, 많이 따라해 주셔서 감사하다. 가장 잘 한 것을 떠나서 가장 와 닿았던 분이 차은우님이었다. 진우가 차은우를 레퍼런스했다고 했는데, 진짜 차은우님이 추셔서 '인간 진우' 같았다.
-'케데헌'이 이 정도로 잘 될 줄 예상했나.
▶잘 될 줄 알았다. 준비하신 분들이 너무나 막힘 없이 잘 설명해 주시더라. 줌 화면을 넘어서도 눈빛이 반짝였다. 그런 사람이 보이면 못 해낼 게 없다고 생각한다. 동기부여가 많이 된 분들이었다.
-리정이 '스우파3',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로 K-팝 댄스 창작물이 글로벌화에 많이 기여한 것 같다.
▶꿈만 같다. 창작물을 누가 알아주는 것이 '스우파'를 만나기 전에는 이 정도까지 가능했을까 싶다. 감사함 이상으로 정말 감사하다.
-지난달 갓 전역한 방탄소년단 뷔가 첫 챌린지 영상 상대로 리정과 함께해 화제가 됐다.
▶저희도 춤으로 연결된 사이다. 그분도 저만큼 춤을 사랑하셔서 아주 좋은 시너지가 나는 것 같다. 저에게 진짜 큰 귀감을 주는 사람이다. 저는 춤만이 저의 직업이어서 당연히 목숨을 거는데, 그분에게 춤은 일부일 수 있다. 노래도 해야 하고. 그런데 진짜 저만큼 춤을 좋아하고 많이 찾아본다. 그리고 정말 겸손하고. 그분을 보면 '나에게 타협은 없다' 생각한다. 저에게 엄청난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다.
-리정이 생각하는 자신의 감각이란?
▶저 정말 춤을 너무 많이 사랑하고 있다. 감히 어떤 분야에서 뭘 잘한다고 말하긴 그렇지만, 기술적으로 봤을 때 저의 좋은 점은 1차원적이지만 고차원으로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걸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시는 것 같다.
-댄스의 영감은 어디서 얻는 편인가.
▶아티스트가 가진 아이덴티티와 철학, 곡이 해석하는 의미, 전달하려는 방향 모든 것이 저에게 영감이 된다. 거기서 리정과 공통분모를 찾아서 최대한 뽑아내려고 한다. 왜 이 사람이 나를 찾았는지 생각한다. 내 안무를 창작할 땐 내가 음악을 듣고 어떤 걸 느꼈는지를 본다.
-리정이 질투나 시기심을 느끼는 존재가 있는지.
▶너무 많다. 인정하면 정말 편하다. '아 부럽다', '나도 저렇게 하고 싶구나' 인정하고서 그렇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스우파' 내에서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부러웠고 되고 싶었다. 범접 언니들도 많이 부러웠다. 제가 고집이 세고 자기 신념이 확고한 사람인데, 누군가가 나를 봤을 때는 되게 보수적으로 볼 수 있겠다. 이번에 허니제이 언니를 보면서 나도 많이 포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돌 데뷔를 제안받은 적이 있진 않았나.
▶저는 제 영역을 충분히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제가 원하는 창작을 하고 있고 아티스트와 함께 했을 때 저를 아티스트와 동등하게 대해주셔서 플레이어로서 꿈 같은 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직업 고유의 특성을 유지하면서 라이브를 한다면 해야겠는데, 그러려면 춤을 더 훨씬 잘 춰야겠다. 저는 춤이 데려가주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고 싶다. 도전해보고 싶은 의향은 있지만 제 직업이 가진 고유의 성향을 꼭 갖고가고 싶다.
-창작가로서 춤의 권리를 더 확실히 누려야겠단 생각이 들진 않았는지.
▶'이 안무는 누구에게서 왔는가' 권리를 조금 더 주장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저는 솔직히 말해서 그 권리를 많이 누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저를 많이 알아주셔서 사람들이 인지하고 가끔은 이 안무를 보고 리정 거라고 유추도 해주셔서 감사하다. 문제는 그걸 소수만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저희 선배들께서 엄청나게 권리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업계의 붐을 위해서도 권리를 찾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댄스 창작자의 권리가 많이 향상했다고 느끼는지.
▶네이버 직업란에 '댄서' 표기도 생겼고, 춤을 보고 오리지널 창작자의 버전을 보고 싶어하는 변화가 생겼다. 최근엔 아티스트와의 협업이 기사화되는 걸 봤을 때도 창작자의 권리가 향상됐다고 느꼈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우리가 힘을 합쳐서 지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작권자 ©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