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드컵 우승 국가는 경제적 호황을 경험한다. 도파민이 폭발하는 축제 분위기 속에서 국민들의 소비 심리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월드컵에서 실패를 거둔 국가에서는 소비 심리가 위축되고 축구 관련 산업 매출도 줄어든다.
하지만 이런 월드컵 경제 효과는 매우 단기적인 현상이다. 정작 중요한 부분은 정치다. 정치가 특정 국가의 월드컵 실패를 과도하게 질책하면 국민적 분노를 증폭시킬 뿐 축구 혁신에는 큰 도움이 안 된다.
월드컵 실패에 따른 정치 개입 원조 국가 이탈리아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이탈리아 축구는 북한에 패해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탈리아 선수들은 귀국길에 성난 국민에게 토마토 세례를 받았다. 이탈리아에서는 박두익을 '치과의사'로 불렀다.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그의 결승골은 마치 치과에서 치료받는 것처럼 너무나 뼈아팠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정치인들은 이 분위기를 놓치지 않았다. 이들은 연일 국회에서 썩어빠진 이탈리아 축구를 개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의 먹잇감은 프로팀에서 고액의 연봉을 받지만, 월드컵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이탈리아 선수들이었다.
재정위기에 빠져 있는 이탈리아 프로축구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이탈리아 축구 클럽의 재정위기는 세계적 선수를 영입하는 데 돈을 많이 썼기 때문이다. 이는 정경유착과 부정부패 속에서 흥청망청했던 이탈리아 정치와 경제의 축소판이었다.
축구 클럽의 재정 악화를 줄이기 위해 이탈리아 축구협회는 1966년 월드컵이 펼쳐지기 전부터 한시적으로 외국인 선수 영입을 금지했다. 이 금지 조치는 이탈리아가 1966년 월드컵에서 최악의 결과를 내면서 무기한 연장됐다. 이탈리아 유망주들이 자국 프로 무대에서 뛸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는 이탈리아 정부나 정치인들이 내놓은 방안이 아니었다. 이탈리아 축구계의 현실적 자구책이었다.

월드컵 실패로 원 팀이 된 여야와 선거제도 변경에 올인하는 K-축구 혁신위
2026년 한국은 60년 전 이탈리아와 닮은 꼴이다. "능력보다 네 편 내 편을 더 중시해 무능한 사람을 지휘관으로 선발하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합니다"라는 이재명 대통령의 소셜미디어(SNS) 글이 올라오면서 축구는 핵심 국정과제가 됐다.
대통령의 언급이 있은 뒤 경찰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홍명보 전 감독 선임 및 부당 개입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은 이 사건을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금융범죄수사대로 이관해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여야 정치인들은 축구 덕분에 '원 팀'이 됐다. 서로 싸웠던 이들은 대한축구협회와 홍명보 전 감독에 대한 비난 여론에 편승했다. 국회의원들이 주최하는 축구협회 혁신 토론회도 줄을 잇고 있다. 더욱이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정몽규 전 축구협회장과 홍 전 감독을 증인으로 소환해 오는 22일 청문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도 K-축구 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문체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K-축구 혁신위원회는 "한국 축구 거버넌스, 유소년 선수 육성, 첨단 기술 시스템 도입 등의 과제를 논의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K-축구 혁신위원회는 대한축구협회장 선거 제도 개혁에 '올인'할 가능성이 크다. 축구계 카르텔을 없애기 위해서다.
물론 직선제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이 대한축구협회장 선거에 참여하는 방식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성인 등록 축구 선수만 10만 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직선제는 현실적으로 무리다. 더욱이 축구협회장 선거 방식의 변화가 곧바로 협회 거버넌스의 혁신으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축구협회장 선거인단이 늘어날수록 자칫 잘못하면 '인기 투표'가 될 수 있어서다. 상황에 따라 대중적 이미지는 좋지만 무능한 축구협회장이 선출될 수 있다는 의미다. 축구 강국에서 축구협회장을 간선제로 뽑는 이유다. 그래서 이번 축구협회장 선거에 참여할 선거인단의 숫자와 구성이 중요하다.

축구발전에 백해무익한 청문회
진짜 걱정되는 부분은 국회의 홍명보 청문회다. 22일에 열리게 될 청문회는 홍 전 감독과 축구협회에 대한 성토 대회가 될 가능성이 짙다.
당연히 월드컵 실패와 투명한 행정을 하지 못한 홍 전 감독과 축구협회는 비판받아야 한다. 하지만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청문회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
기본적으로 청문회를 통해 다뤄질 감독 선임과 축구협회 운영 문제 등 대부분의 사안은 이미 문체부의 특별감사와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더욱이 청문회에서 전술, 용인술 등에 있어 실패를 거듭한 홍 전 감독의 무능력에 대해 다룬다면 이는 소모적인 논란만 부추길 뿐이다.
2010년 프랑스 청문회가 그랬다. 프랑스가 감독과 선수들 간의 불화로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1무 2패, 최하위(4위)로 탈락했을 했을 때 프랑스 국회는 비공개 청문회를 열었다. 하지만 청문회에서는 레몽 도메네크 감독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비판만이 난무했고 정작 프랑스 축구에는 별 도움을 주지 못했다. 오직 대표팀이 프랑스의 품격을 떨어뜨렸다는 지적에 따라 프랑스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 컬러가 있는 상의 유니폼을 입었을 뿐이다.
한국 축구와 스포츠에 관심이 많은 한 일본 작가는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한국 축구 아쉬웠습니다. 국민들이 실망하고 화가 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대통령 등 정치인들까지 개입하는 건 외국인으로서 안 좋게 보입니다. 8년 전 아시안게임 때의 야구 선동열의 청문회 사례를 생각하면 한국 축구에 안 좋은 영향이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의 말대로 정치인들의 개입은 한국 축구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정치인 개입의 정점이 될 홍명보 청문회도 마찬가지다. 이류 축구를 바꾸기 위해 국회까지 나서는 건 스스로 삼류 정치를 자처하는 게 아닐까. 1966년 이탈리아와 2010년 프랑스 정치인들이 남긴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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