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일요일 저녁 FC슛돌이들을 보는 일은 즐거웠다. 잘 생긴 골키퍼 지승준, 돌파력이 눈에 띄는 조민호, 득점력이 좋은 김태훈, 골 집착력이 대단한 최성우.. 이들이 유니폼을 입고 녹색 그라운드를 '열심히' 종횡무진할 때면 일주일의 피로가 싹 가시는 듯 했다. 물론 이병진의 재미있는 해설도 귀를 즐겁게 했고.
그러나 이들도 독일월드컵이 끝날 때쯤 되면 더이상 TV에서 볼 수 없을 것 같다. 슛돌이팀 해체 소문과 이에 따른 네티즌들의 '원성'에 대해 해당 프로그램(KBS2 '해피선데이') PD가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날아라 슛돌이' 코너를 연출하고 있는 최재형 PD는 최근 스타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슛돌이들은 연예인이 아니며 그들은 학교도 가야 하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월드컵이 끝나면 프로그램을 정리해갈 것"이라고 말했다.
속상하고 맥빠지는 소식이다. 연예인들의 신변잡기 토크를 비롯해, 힘싸움, 말싸움, 몸싸움, 과거폭로 등으로 연예오락 프로그램이 도배당한 지금, 어린 꼬마들의 해맑은 웃음과 하루하루 성장해가는 축구실력을 더이상 볼 수 없다니. 골을 먹고 나서 어쩔 줄 몰라하던 지승준의 발개진 두 볼과, 골 넣고 펄쩍펄쩍 뛰며 백홈하던 조민호의 펄럭이는 퍼머머리를 얼마 있으면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KBS의 이같은 결정은 한편으로는 든든하다. "슛돌이들은 연예인이 아니다"라는 출연진 성격에 대한 분명한 규정과, "그들은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어른다운 당위론이 생각할수록 가슴을 훈훈케 하는 것이다. 간만에 듣는 한국방송계의 '맏형'다운 KBS의 소신이요 결정이다.
불과 10년전만 해도 KBS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방송의 맏형이었다. KBS PD와 기자들도 이같은 '맏형' 소리를 스스로 했고 자부심을 가졌다. 가장 먼저 생긴 방송사라는 점뿐만 아니라 공영방송으로서 MBC와 SBS에 '모범'과 '선례'를 남겨야 한다는 점에서 '맏형'이었다. 그러나 다매체 다채널 시대가 자리잡고, KBS MBC SBS 등 지상파 방송3사의 시청률 경쟁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어느샌가 'KBS=맏형'이라는 등식은 슬그머니 사라졌다.
하지만 맏형은 살아있었다. 내부사정이야 어찌됐든, 시청률보다 어린 친구들의 일상을 걱정한 건 분명 아름답고 듬직한, 맏형다운 판단이었다. 5.31지방선거 개표방송에서도 확인한 것이지만, MBC가 '이경규가 간다'를 또 울궈먹을 때에도 우직할 정도로 출구조사 결과와 개표현황 등을 스트레이트하게 내보낸 방송사가 바로 KBS였다.
돌이켜보면 슛돌이들을 바라본 일부 어른 시청자들은 얼마나 천박했나. 그 어린 친구들이 마치 직업 프로선수가 된 것처럼 경기를 하면 꼭 이기기를 기원했고, 어이없이 골을 먹는 모습보다는 예쁘게 골 넣고 신나하는 모습을 은연중 바라지 않았나. 지금 우리 눈앞에서 경기를 하는 '슛돌이'만 열심히 응원하고 감격해했지, '지승준' '오지우' '최성우' '이승권' '김태훈' '조민호' '진현우' 그 어린이들의 미래에 대해 조금이라도 염려한 어른이 과연 몇이나 될까. 지승준이 골을 먹는 순간에는 "에이, 좀 더 잘 하지!"라고 투덜거리는 시청자의 모습은 축구 하는 어린 자식을 둔 극성스러운 부모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다.
그렇다. 골을 넣고 서로 격려하며 함께 기뻐하던 그 슛돌이들의 귀여운 모습을 이제 더이상 볼 수 없을지라도, 시청자들은 이제 그들을 보내야 한다. 그들은 연예 프로그램의 주인공 이전에 학교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우리 어른들 모두의 아이들인 것이다. KBS PD의 소신이 결코 흔들림 없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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