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시 '언어의 연금술사' 김수현 작가는 달랐다. 불륜을 소재로 했지만 단순히 불륜 드라마라고 치부할 수 없는 통찰을 보여줬다.
불륜의 틀을 빌어 그가 얘기하고자 한 것은 여성의 우정과 자매애, 독립적인 삶이었다. '여자의, 여자에 의한, 여자를 위한' 드라마로 여성 시청자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이끌어 낸 것은 이 때문이었다.
극 초반부터 대뜸 대학교수 준표(김상중 분)가 아내 지수(배종옥 분)의 절친한 친구 화영(김희애 분)과의 불륜을 터트리더니, 지수와 화영의 심리 변화를 섬세하면서도 도발적인 필치로 교차했다.
평생 가족을 위해서만 살았던 지수는 남편과 친구의 불륜에 호흡곤란을 일으킬 정도로 분개하다가 점차 아이와 함께 독자적인 삶을 살아가며 평안을 찾는다. 반면 흥분하며 천식을 일으킨 지수에게 응급처치를 해줄 정도로 침착하던 화영은 또박또박 자기 사랑의 당위성을 주장하더니 점차 준표에게 지쳐가며 히스테리를 부린다.
그러면서 두 여자는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지점에 이른다. 화영은 지수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이기적인 준표와 싸우지 않고 살아갔는지를 물으며 지수를 이해하고, 지수는 화영을 같은 여자의 입장, 친구의 입장에서 안타까이 생각한다. 그리고 이혼신고후 준표에게 "당신 하나 붙잡자고 별 일을 다 당했는데 화영과 혼인신고를 하라"며 화영을 감싸안고 준표까지 다독이는 온전히 성숙된 모습을 보인다.
19일 마지막회인 24회에서는 그다운 깔끔한 결말을 보여줬다. 대부분의 불륜 드라마가 불륜을 저지른 남편이 회개하고 가정으로 돌아오고, 불륜의 상대 여자는 불행에 빠진다는 도식적인 결말을 택하고 있는 것과 차별된다.
화영은 아이를 낳고 부부로 살기를 원했던 준표의 배신을 맞닥트리고는 그에게 더 이상 기대지 않는다.과감히 그의 곁을 떠나 미국으로 돌아간다. 샌드위치 가게를 차린 지수는 아들 경민을 데리고 혼자 서는 삶을 선택한다. 지수는 자신을 좋아하는 후배 석준(이종원 분)과 재혼을 한다든가, 혹은 준표와 재결합하거나 하지 않는다.
여기에 지수의 일에 자기일처럼 나서는 언니 은수(하유미 분)의 자매애는 또다른 통쾌함을 줬다. 화영과 육탄전을 벌인다던가, 마트에서 만난 준표에게 '눈맞아 가정 파탄시킨 파괴범'이라고 욕설을 퍼붓거나 화영의 머리채를 잡으며 '힘있는' 여자의 모습을 보여줬다.
삶의 정수를 찌르는 듯한 적나라하고 솔직한 대사를 툭툭 던져내는 것도 매력이었다. '바람'잘날 없는 철없어 보이는 남편 달삼(김병세 분)을 제압하며 살아가는 은수는 남자보다 어른스러운 '인간'이다. 달삼이 친구의 자식이라며 데리고 들어온 아정을 넓은 모성애로 감싸 안는 아량도 있다.
반면 준표는 두 여자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하며 그의 우유부단한 이기심의 대가를 받았다. 지식인이라며 논리와 체면에 묶인 그가 화영을 위해 냄비를 들고 해장국을 배달하는 '수모'도 겪고, 빵쪼가리를 뜯으며 초췌한 모습으로 출사를 다니는 모습은 '압권'이었다. 점점 더 초라해져가는 그의 뒤늦은 회개는 얄밉고 뻔뻔해보일 뿐이었다.
한편 '내 남자의 여자'의 고흥식 책임프로듀서는 이 드라마의 성공 요인에 대해 "김수현 작가는 시대에 맞는 코드를 읽는 능력이 탁월하다"며 "불륜드라마라도 애정행각만 주로 보여주는 얄팍한 재미만이 아니라 가족과 사회문제로까지 풍부하게 확장해 보여주며, 인간의 본질적인 외로움까지 파고 들어 공감을 일으켰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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