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거 내가 만든 건데, 잘 봐요.”
그는 TV 앞에 놓여있던 작품 하나를 들어보였다. 사과궤짝인 듯한 나무판 두 개가 나란히 붙여지고, 철사와 화투 한 장이 붙은 작품이었다.
“나무 판때기 두 개를 주워다 그냥 철사 감고 화투를 붙인 거야. 그런데 원가를 따지면 얼마 안하지만 이걸 내가 팔면, 음…, 한 300만 원에 팔 수 있을 걸. 하지만 이거 팔 때 사람들한테 ‘이거 얼마 안 들었으니 5000원만 주쇼’ 할 수 없잖아? 사람들은 이렇듯 까놓고 이야기하지 않고, 예술적 가치를 막 허황되게 설명하고 꾸며대지. 사람들도 작품을 보면서 위대한 것 같으면서도, 또 의심스럽기도 하고 그럴 거야.”
"예술은 어디까지가 사기고 어디까지가 진짜냐?"는 도발적인 질문에 조영남은 그렇게 맞섰다.
예술작품을 삐딱하게 보면 ‘다 그런 것’이었다. 예술작품엔 예술가의 혼이 담겨 있고, 철학과 가치관이 담겨 있지만, 보는 사람이 삐딱하게 보면 그런 것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조영남은 “예술은 50이 사기이고, 50이 사기가 아니다”고 했다.
조영남은 검은색 뿔테 안경에 모자를 쓰고 안방에서 거실로 나왔다. 그의 집을 찾은 것은 지난 1일 오전 11시. 그는 늦잠을 잔 듯 했다. 간밤에 한 언론사 부장과 술을 마셨다 했다. 조영남은 먼저 와 있던 출판사 사람을 보내고 정식으로 악수를 건넸다.
“어서 오슈.”
조영남은 여러 직업을 가졌다. 가수이자 방송인이요, 팝 아티스트이자 작가다. 많은 직업 중에 그를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과 ‘어느날 사랑이’(이상 한길사 발행)를 쓴 작가로 인터뷰하기 위해 그의 집을 찾아갔다.
그는 한강이 훤히 보이는 서울 청담동의 한 고급빌라에 살았다. 거실에 난 창은 넓고 시원했다. 벨을 누르자 조영남이 ‘할머이’라 부르는 노인이 문을 열었다. 그는 할머니와 딸과 함께 살았다. 고3 딸은 학교에 가고 없었다.
조영남과는 첫 만남이었지만 서로 거침없고 솔직했다. 그는 2시간 넘게 이뤄진 인터뷰에서 솔직한 화법으로 자신의 예술관을 설명했다. 인터뷰 중간에는 그의 해장을 돕고 시장기를 면하기 위해 삼선짬뽕을 시켜먹기도 했다. 그는 짬뽕에 자장을 섞어 먹는 독특한 습관이 있었다.
어디까지가 사기냐고? 예술은 50이 사기지
- ‘어느날 사랑이’가 11월 ‘이달의 책’으로 선정(한국출판인회의)된 걸 축하드립니다.
▶ 한국출판인회의에서 평론을 보내줬는데. (그는 A4에 인쇄된 문학평론가 홍기돈의 평론을 읽어줬다) ‘잘 만든 소설이 주는 감동이 과거의 경험을 오랜 세월동안 곱씹어서 내어놓는 경험담보다 더 나을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이번에 깨달았다’
- 픽션이 논픽션의 감동을 따라갈 수 없나 봅니다. 그런데 ‘어느날 사랑이’는 바람 피운 내용을 담은 책인데. 하하.
▶ 그러니까 단순한 연애 고백이 아님을 알려주는 책이지.
- ‘현대인도 못 알아먹는 현대미술’은 최근 머니투데이 편집국의 독서토론 주제로 사용했습니다.
▶사람들도 현대미술에 대해 알고 싶은 호기심을 표출할 방법이 없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주제넘지만 내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간의 미술평론서적을 보면 횡설수설하는 것이 많아요. 어떤 책은 작가 자신도 모르는 것 같더라구. 나도 그런 거 질리더라고. 어렵다는 현대 미술도 사람들이 알아먹게 쓰면 되는구나 느꼈지. 현대미술이 가장 어려운 장르인데, 잘만 쓰면 쓸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이 책으로 나의 작은 소망을 이뤘죠.
- 책을 보니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더군요. 혹시 미술사를 따로 배우셨나요.
▶ 예전에 한 6개월 동안 미술사에 관해 연재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어려운 것들을 공부하고 섭렵했죠. 현대미술 관련 서적이 수십, 수백권 나와 있는데 그 흐름을 역행할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대부분 남의 글을 옮긴 것일 뿐이더라고요.

-백남준은 예술은 사기라고 했는데, 미술은 어디까지가 사기인가요.
▶ 최근 들어 현대미술 붐이 일었는데, 작품이 가짜 같기도 하지만 작가들이 받아내는 액수는 천문학적이죠. (그림값이)수천억원 가죠. 이제는 보석을 사기보다 그림을 사두는 현상이 일어나고, 미술을 모르면 안되는 시대가 왔죠. (미술은)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가짜일까. 나는 미술책을 쓰기도 했지만 미술도 하고 있어요. 나도 미술을 하고 있으니 (그런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은 50이 사기이고, 50이 사기가 아닙니다.
(조영남은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며 설명을 이어갔다.)
이거 원가를 따지면 얼마 안하지만, 내가 팔면 300만원을 팔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것을 얼마 안들었으니 5000원만 달라 할 수 없잖아요? 사람들은 이렇듯 까놓고 이야기하지 않고 예술적 가치를 허황되게 설명하고, 꾸며대죠.
(그는 캔버스를 꺼내 붓으로 큰 점을 하나 찍었다) 이게 바로 이우환 씨의 작품세계야. 그런데 이런 이우환 씨의 작품을 보면서 ‘만원짜리 캔버스에 점 하나 떡 찍어놓은 게 수억원이 가냐. 순 사기 아니냐’고 하는 사람이 있고, ‘무슨 소리냐? 저건 위대한 작품이야’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 그러나 이우환 씨는 사기를 치려는 것이 아니죠. 자신만의 작품세계가 있는 것이지. 피카소는 복잡하게 그려서 자신의 우주를 표현하는 것이고, 이우환 씨는 단순하게 자신의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것이죠. 이런 걸 잘 설명해주면 사람들도 안심을 하는 것이지. 그러니까 사기성은 보는 사람의 관점이야.
사기꾼 고백 못하는 건 자신감 없기 때문
- 맞는 말씀입니다. 예술의 사기성은 전적으로 작가만의 책임이 아니죠. 거기에 상업성이 가세하면서 사기성이 심화되는 거죠.
▶ 그렇지. 자본주의에 살고 있으니까 이런 엄청난 비합리성이 있는 거지. 이우환 씨의 작품이 수억원 가는데, 그 돈이면 아프리카의 수천명을 먹여 살릴 수 있어요. 그런데 이걸 사서 간직해두는 사람이 있지. 이걸 ‘나쁜 행위다’ 규정할 수 있고, ‘이런 작품을 가지는 일이 위대한 일이야, 가치 있는 일이야’ 생각할 수 있지. 이렇게 사기와 비사기가 공존하는 게 자본주의의 구조라는 게 내 생각이란 말이야. 그게 싫으면 공산주의국가에처럼 예술을 규제하든가.
- 중요한 것은 예술가의 자기고백인 것 같아요. 사기성은 사회적인 현상이죠. 어디 예술뿐입니까. 사회전반에 사기성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 작품엔 이런 사기성이 있다’고 고백하는 것이지요. 자기가 사기꾼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치고 진짜 사기꾼은 없지요.
▶ 고백을 못하는 것은 자신감이 없어서인 것 같아요.
- 팝 아트하는 분들은 인간적인 것 같아요. ‘나는 내 작품에 사기성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면 그걸 보는 사람도 편안하게 볼 수 있는 것이죠. 사기성이 있더라도 ‘난 몇 억원 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그건 수억 원짜리 작품이 되지요.
▶ 그렇지. 그런데 우리의 (현대미술에 대한)사고체계가 경직돼 있어. 그러니까 현대미술을 가까이 하기에 구조적으로, 또 관습적으로 힘든 것이죠.
- '현대인도 못알아 먹는 현대미술'에 나오는 백남준의 무관객 공연 얘기는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 백남준 선생을 (높이)칠 수밖에 없는 이유죠. 무관객 공연을 100회 이상 했다는 것에 대해 경외심을 갖고 있어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저한텐 너무 대단한 일이에요. 그런 대단한 일을 보고 있으면 제 삶이 쾌적해져요. 백남준을 모르는 사람과 내가 먹고사는 모습은 같아도 백남준의 위대성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과는 삶의 질이, 격이 다를 겁니다. 사람들은 다 격을 높이려고 하잖아요.
- 저는 구스타프 클림트 작품이 참 예쁘고 좋데요. 편집국 독서토론 때 우리 기자들 사이에서도 클림트가 비교적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 클림트가 가장 보기 좋은 그림을 그렸지요. 그것 때문에 미술사에선 낮게 평가를 받았죠. 그런데 저는 오히려 그런 시각은 구태의연한 시각, 경직된 시각이라고 봐요. 이 시대에는 그렇게 보면 안돼요. 나는 그를 이 시대의 레오나드로 다빈치로 봅니다. ‘북회귀선’의 헨리 밀러를 높이 평가합니다. 사람들은 그 작품이 온통 섹스이야기만 한다고 하지만 그를 이 시대의 세익스피어라 보는 사람도 있어요.
- 그럼 망설이지 말고 클림트를 좋아해도 되겠군요. 클림트를 좋아한다고 하면 대개 사람들은 ‘저 자식, 그림 볼 줄 모르는구나’합니다.
▶ 마음껏 좋아하세요.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에 멈칫멈칫 합니다. 실제론 좋아하면서도 말이에요. 피카소의 어떤 작품과 비교해봐도 클림트가 더 좋다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내 사랑 60%만 고백, 다 했으면 대박 났을 것
- 미술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 사랑이야기 좀 해주시죠. 제 아내는 ‘어느날 사랑이’를 읽고 있으니까 ‘그거 바람피우는 사람 이야기 아니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나는 ‘당신 남편 생각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했습니다. 책을 읽고 난 느낌이 참 깔끔하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바람’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게 아닌가요. 솔직해졌으면 좋겠어요. 술 먹고 아내 몰래 바람피는 남자와 아예 당당하게 바람피는 옥소리나 뭐가 다를까요. 옥소리가 더 솔직한 게 아닌가요.
▶ 박철-옥소리, 이영하 부부 때문에 요즘 내가 대우를 받는 것 같아요. 나는 그저 조용히 끝냈는데. 출판인협회가 이달의 좋은 책으로 선정했을 때 ‘그렇게 안될 책인데’ 생각했는데, 시대적으로 잘 맞았던 같아요. 나는 ‘어느날 사랑이’를 썼다는 것에선 한 점 부끄럼 없어요. 내가 아는 것만, 아는 한도 내에서 썼어요. 그런데 ‘어느날 사랑이’는 사실 가린 게 너무 많아 부끄럽기 짝이 없기도 해. 너무 미안한 일이지. 그래도 40%는 숨긴 것 같아. 만약 내가 내일 죽는다면 나머지 40%일도 쓰겠지. 이 여자와 헤어질 땐 이런 일도 있었고, 또 중간에 추잡스러운 일도 있었다고 그냥 그대로 쓰면 대박이지. 그런데 그걸 어떻게 써.
- 60%라도 고백했다는 게 엄청난 용기 아닙니까. 우리 기자들도 맨날 못된 짓 다 하고도, 하나도 말 못합니다. 그러면서 기사도 쓰고 칼럼도 쓰지 않습니까.
▶ 나는 이 책에서 약 60%만 고백했어도 큰일 했다고 생각해. 사람들은 그런 말 다 말 못해. 꼬투리만 잡혀도, 소문만 나도 잘리는데. 마누라가 아우성치고. 나는 60%만 해도 큰일 했다고 생각해요. 한국 남성들이 남성세계에서 자기가 어떻게 사랑하고, 여자관계를 어떻게 했느냐를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어떻게 헤어지고, 어떻게 살았나를 쓰는 사람이 많지 않다니까. 문학? 개뿔. 시 쓰고 수필 쓰고 해도 실제 어떻게 사랑하고 여자와 어떤 관계를 했는가를 쓴 사람은 없어. 다들 치사한 놈들이야. 그래서 그기에 대한 울분이 있었어.
- 책에선 남자끼리의 사랑도 사랑이라고 했던데.
▶ 한 남자에게는 베르테르와 카사노바가 늘 함께 섞여 있어. 이런 걸 분리해서는 안된다고 했는데, 이런 논조의 글이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어요. 그걸 왜 삽입했냐고? ‘어느날 사랑이’ 가지고는 툭 터놓고 애길 못하는걸 커버 할려니까 궁여지책으로 쓴 거야. 첫째 마누라와 헤어질 때 문제점, 둘째 마누라와 아웅다웅한 거, 그걸 다 쓰려니까 사람들한테 내가 욕먹을 거 뻔하잖아. 그리고 당사자들은 살아있잖아.
섹스는 잠시 지나가는 광풍일뿐
- 사랑은 무엇인가요. 당신 책에선 '마법의 보자기', '약간 위험한 것'이라고 표현했던데.
▶ 좋은 질문이에요. 사랑에 대한 개념을 전면 바꿔야 해요. 사랑은 형태도 실체도 없는 건데. 당신도 나도 모른다니까. 행복이 뭐여? 실체가 뭐야? 뭐 개뿔. 돈 많은 거? 그건 욕심을 채운 것일 뿐 행복이 아냐. 우매한 인간들이 그런 걸 만들어 놓고 스스로 목이 메가지고 거기에 매달려서 헉헉대는 거야. 그냥 살아있다는 게 행복인데, 아침에 눈뜬 그 자체가 행복인데. 그 이상 행복이 어딨어?
근데 몇시에 누굴 만나서 뭐 어쩌고. 그게 행복인가, 사람들은 택도 없는 것을 찾는단 말이여. 제일 이쁜 여자, 왕자 같은 남자 만나서 섹스하는 거? 그건 광기여. 잠시 지나가는 광풍이여. 행복아니여. 사랑이 무슨… 개뿔… 그 느낌 얼마나 간다고. 다 위장 떠는 거지. 개똥같은 소리지. 혼자살기 불편하고 그러니까 그냥 사는 거지. 그냥 사는 것을 우리는 사랑으로 규정하고 행복으로 규정해야 돼. 공중에 뜬 단어를 빨리 없애버려야 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다 불행해져요. 그거에 매달리다보면 세월 다 간다니까. 하루를 살고 누구 만나고 그러는 거, 지금의 일상을 잘 지키는 것, 그것이 사랑이고 행복이야. 최고의 행복이지. 있지도 않은 사랑을, 맨날 개뿔….
- 맞습니다. 허상을 보고 그러다보면 현실이 헷갈리고 그렇죠.
▶ 박국장, 당신에게 여태 이상형이 나타나던가? 개뿔, 개똥같은 소리하고 있는 거야. 그거 광풍이고 광기지. 나는 여자를 좇지 않았어, 그들이 내게 다가왔지. 그들이 와서 ‘오빠 노래 잘해요’라고 하니까 그저 한번 만난 거고 머 그런 거지. 만약 심은하가 내 이상형이라면 그가 내게 올걸 기다리고 있어야 하나? 호프집 아가씨, 슈퍼에서 계산하는 아가씨, 그런 사람들과의 사랑을 위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해야 돼.

- 요즘 중년 부부들이 위기다. 사회 유명인사들의 이혼소식이 잇달아 들려온다. 청와대 실장까지 그렇고, 프랑스 대통령까지 이혼하고 있습니다. 제 아내도 요즘 걱정을 많이 하는 데, 중년들이 ‘사추기’를 어떻게 극복해야할 것인지가 문제인 것 같습니다.
▶ 지난해인가 내가 검색어 순위 1위에 오른 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한 사람과는 살 수 없는 시대가 왔다고 한 적이 있어요. 가령, 한 남자는 침실용, 과시용, 비서용 이렇게 세 여자가 필요하다고 했어요. 여자도 마찬가지. 돈벌어주는 남자, 잠자리 잘하는 남자, 데리고 다니는 남자, 이렇게 세 남자를 거느릴 수 있다고 말한 적 있었어요. 그것도 사추기를 극복하는 한 방법이 될 수도 있겠지요.
그럼 나는 어떻게 사냐고? 나는 혼자 살아도 충분해. 집에는 할머니와 딸이 있어. 그러니까 내 여자친구를 만날 수 있는 거지. 그런데 문제는 한 여자 친구로는 만족할 수 없는 일이 생겨요. 예술성 있는 여자, 같이 데이트하는 여자, 여러 명의 여성 친구들을 같이 만날 수 있어요. 이들 여성친구들끼리도 인사하고 밥을 같이 먹을 수도 있겠죠. 나는 지금 그런 환경을 만들어놨어. 하지만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있어. 이들 중 한 여자와 섹스를 하면 문제가 될 수 있고, 상황이 달라지죠. 그러면 납득을 시키기가 굉장히 힘들어져요. 섹스를 하는 여자는 자신의 비중을 따지게 되죠. 이 시대의 최고의 사랑을 하라면 마구잡이 사랑을 하면 안돼. 고도의 전략이 필요하죠.
- 당신처럼 나이가 들면 성적욕구도 제어할 수 있지만 그게 아무나 되는 건 아니잖아요.
▶ 그렇지. 사랑을 하고 싶으면 미친 듯이 몸부림치라고. 하지만 그로 인해 박살날 것 같으면 참아야 하는 거지 별 수 있겠어.
상대가 싫어지면 억지로 연극해선 안돼
- 어쨌든 요즘 이혼소식이 잦습니다. 당신도 이혼 경험 있지 않습니까. 만남도 중요하지만 이별도 멋있게 해야 합니다. 멋있게 헤어지는 법은 무엇인가요? 선생님은 ‘어느날 사랑이’ 2편으로 ‘어느날 이별이’를 써야하지 않습니까?
▶ 오호, 재밌네. 한번 쓸게요. ‘어느날 사랑이’ 2탄으로 '어느 날 이별이', 그거 쓸만한 가치가 있네. 운동도 그렇고 노래도 그렇고 엔딩을 멋있게 해야되거든. 그걸 잘해야 프로가 되는 거지. 좋은 지적 했어요. 사랑과 행복을 늘 전제로 두기 때문에 모든 이별이 추잡스럽게 됩니다. 아름답게 맺어질 때 축복의 불꽃이 튀죠. 그래서 끄트머리에는 추잡스럽게 됩니다. 사랑은 반드시 변하는 건데, 변할 건 뻔한데, 안변할 것처럼 연극을 하잖아요. 서로 영원할 것처럼. 불꽃이 끝까지 확 탈 수 있나? 꺼지면서 화려했던 만큼 추잡하게 꺼지지. 그건 자연현상인 것 같아요.
여자를 만날 때, 여자와 살 때 그렇게 축복하지 말자구. 그저 악수를 나누고 담백한 사랑을 해보라니까. ‘우리 살다가 어려운 일이 있을텐데’, ‘늙으면 얼굴도 변할텐데 그래도 한번 살아보자’ 그렇게 살다 헤어지면 멋있는 이별이 되는거지. 쿨하게 살면 되지. 사랑을 너무 불꽃처럼, 축제로 올려놓고, 시작을 그렇게 하면 잔치 끝난 집처럼 너저분해진다니까. 잔치가 화려할수록 빈그릇, 쓰레기도 많아. 남녀가 헤어질 때 추잡해지는 것도 자연현상이지. 그저 좋아하는 느낌을 갖고 유지되는 만큼만 해보자. 상대방을 안 좋아하는 느낌이 들 때 억지로 연극하지 말아야 돼. ‘내가 안좋다고 표현을 해도 이해하라’고 말해보는 거야.
-사랑에도 훈련이 필요한 것 같아요.
▶ 훈련을 다시 해봐야 돼. 모든 학문 중에 제일 중요한 사랑학, 행복학이 없어. 대문호, 철학자들도 사랑에 대해선 몰라요. 나는 나 나름의 사랑을 추구해왔어요. 어릴 때부터 다 가르쳐줘야 해. 여자 만나 쓸데없이 여관방이나 가서 ‘니 손에 물 안묻히게 하겠다’ 그런 말 하면 안돼. 며칠 있다가 들통날 걸. 사랑을 하면서 허황된 말을 하지 말아야 돼. ‘너 나 만나면 고생한다. 지금 날 남자처럼 보고 나를 근사하게 보지만 알고 보면 겉껍데기일 뿐이고, 다른 남자랑 차이 없다. 그땐 이해해라’라고 말하는 거야. 솔직해지자구. 바닥에서부터 출발해야지.
- ‘어느날 사랑이’를 쓰게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공교롭게도 유명인들의 이혼 소식이 전해졌는데.
▶ 장영희 교수(서강대 영문과)를 만났을 때가 단초가 됐지. 장교수와 만나는 것을 한길사 김언호 사장이 (파주)해이리 카페에서 우연히 지켜보고 제안을 한거야. 우리가 크게 웃고 떠드는 모습을 기특하게 본 거야. 김언호 사장이 ‘당신 사랑에 대해서 책을 써보지 않겠느냐’ 했지. 그쪽에서는 소재를 왜 사랑을 이야기했냐면, 다년간 출판을 하면서 사랑에 관한 책은 밑지지 않는다는 걸 감으로 알아차린 거지. 모든 사람의 관심사니까. 사랑은 궁극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밑지는 일이 없다고 하더라구.
난 미국에서 신학공부를 했는데, 철학자중에 예수가 가장 사랑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요. 이 책에선 그 때 공부했던 사랑과 내가 경험했던 사랑이 합쳐졌지. 얼마 전에 3쇄가 들어갔는데 내용을 좀 추가했어. 일목요연해지는 장면이 있고, 딸 이야기도 넣었지.
-예술이나 사랑 만이 아니고 당신과 종교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싶고, 궁금한 것도 많은데, 그건 다음에 이야기하도록 하죠.
▶ 좋죠. 꼭 한 번 다시 봐요.
시간이 두 시간을 훌쩍 넘겨 그만 인터뷰를 마쳐야 했다. 보통 ‘다음에 보자’는 인사는 서로 헤어지면서 하는 의례적인 행위지만, 조영남과의 그런 인사는 진심이 우러나왔다.
그는 문 앞에서 배웅하지 않았다.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고, 빌라 현관문까지 따라나왔다. 모자를 대충 눌러쓰고 손은 주머니에 꽂혀 있었지만, 그는 따뜻히 배웅했다. 책을 내고 수많은 인터뷰를 하면서도 자신과 미술과 사랑에 대한 이해가 비슷한 사람은 처음 봤다며 손을 내밀고 잘 가라며 악수를 청했다.
/대담=박종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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